드디어 내 병에 이름이 생겼다

by 소리글

나는 잔병치레의 아이콘이다.

지금껏 개근상을 구경해본 적이 없다.

대신 과민성대장군이나 디스크처럼

현대인의 필수 지병을 놓치는 법도 없었다.

수학공부 하라는 소리에 한 달 화장실을 못 가

응급실에 실려 가기까지 해봤다.

이를 악물고 퀘스트를 완수하듯 골골거리며 병을 겪어냈다.

족저근막염이나 석회성건염같은 변형문제도 다 정복했다.

보상은 없었다. 심지어 이렇게 자주 아픈 원인도 알 수 없었다.

사주에 내가 큰물이라서 힐링을 뜻하고,

병원이랑 인연이 있다는 얘기를 믿어야 할 판이었다.

차라리 의사나 될 걸 그랬다.

다 수학때문이다.

30대까지 매일 속이 아팠다. 그래서 맘먹고 위내시경을 하면, 의사가 결과지를 보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대박. 오늘 본 환자 중에 제일 깨끗하신데요?”


functional disorder. 의사는 입을 크게 벌리고 혀를 굴렸다. 영어로 그 의미를 콕 집어 말했다. 기능성 위장장애. 한 마디로 ‘신경성’이란 소리다. 여러 이유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뿐, 위장 자체는 멀쩡하다는 말씀. 그렇다. 모두가 내 병들의 원인이 예민해서라고 했다.



그런데 그 진료실에서 의사가 이야기한 ‘강직성 척추염’이란 병은 그런 잔병치레 수준이 아니었다. 신경성도 아니었다. 면역이 제멋대로 날뛰어 외부에서 공격을 하지 않았는데도 혼자 가드를 올리는 자가면역질환이었다. 지금껏 내가 왜 온 몸이 이유 없이 돌아가며 아프고 낫다가 갑자기 또 다른 곳이 아팠는지,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다.


이 병은 주로 척추 쪽을 침범하는 만성 염증성 질환으로 천장관절의 염증상태를 보고 판단한다. HLA-B27유전자와 연관이 높고 환자의 약 90%에서 이 유전자가 발견된다. 이 유전자가 있다고 다 아픈 건 아니고, 감염이나 외상 같은 환경적 요인도 발병에 영향을 미치는 걸로 알려져 있다. 계속 진행되면 척추와 천장관절이 굳으며 대나무처럼 유합되어 움직임에 제한이 생기기도 한다. 주로 밤사이 몸이 굳어져 있다가 아침에 움직이면 완화되는 특징이 있다. 말초관절염을 흔하게 일으키는데, 심하면 온몸의 장기를 침범할 수도 있다. 희귀 난치성 질환으로 산정특례 대상이다. 세법상 장애인으로 등록도 가능하다.


어떤 사람들은 이 병을 가지고도 그다지 아프지 않고 살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등이 굽어 땅만 보고 살아가기도 한다. 증상도, 진행속도도 사람에 따라 다르기에, 정확한 확진을 받기가 쉽지 않다. 확진까지 평균 5년이 걸린다는 이야기도 있다. 환자들은 온갖 병원을 헤매고 다니며 여기 치료를 받고 나면 저기가 아프고, 저기를 낫고 나면 다시 새로운 곳이 고개를 드는 상황에 좌절한다. 내가 사고로 발목 수술을 두 번이나 해도 잘 낫지 않았던 이유가 발목 신경염 때문이 아니라 강직성 척추염 때문이라는 합리적 추론이 성립되는 순간이었다.


그 당시는 방송작가 교육원 전문반을 마치고 난 직후였다. 연수반 담임이었던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혹시 같이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다. 처음에는 많이 놀랐고, 다음으로는 혼란스러웠다. 주변에서는 찬성과 반대가 반반이었다.


- 언제 네가 제작사와 계약서를 쓰고 보조작가도 아닌 메인작가를 해 보겠어? 못 먹어도 고!

- 아니야, 차라리 공모전을 준비해. 건강도 챙겨야지.


나는 언제나 사람이 우선이었다. 불러준 선생님에게 감사하기도 했기에 계약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알고 보니 연락을 받은 사람들이 더 있었다. 각 기수 중 1, 2명을 뽑아 연락을 한 것이었다. 우리는 공동작가 시스템으로 가게 됐다. 선생님은 크리에이터. 장르는 로코. 큰 줄거리는 함께 정하고 각자 몇 편씩을 맡아 써오기로 했다. 그런 시스템은 장점과 단점이 확실히 갈렸다. 공동작가라는 말 속에 전제되는 것이 있다. 모두가 자기만의 개성으로 글을 쓰고 싶어 한다는 것. 그걸 한 가지 톤으로 뭉치는 게 쉽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2년여를 구르다 끝났다. 아니 망했다. PD가 붙는다고도 했고, 방송사 채널도 거의 정해졌다 했지만, 그 뒤로 감감 무소식. 3년이면 계약은 끝나는 것이었다. 3년이 되자, 매 명절마다 제작사로부터 배달오던 보리굴비가 끊어졌다. 내 마음이 문제가 아니었다. 매일 새벽까지 수정의 늪에서 꼿꼿이 허리를 세우고 있는 사이 몸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정확히 확진을 받은 날이 언제였는지는 모르겠다. 처음엔 이 병원, 저 병원 전전하다 강직성 척추염 명의가 있다는 대학병원을 찾아갔다. 병에 대해 까다롭게 진단하고, 확진을 잘 주지 않기로 유명한 의사였다. 동글동글하고 사람좋게 생긴 의사는 처음부터 강직성 척추염이 아니라고 딱 잘라 말했다. 엑스레이 상 천장관절에 크게 염증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증상은 의심이 갔지만 그걸로 확진을 줄 수는 없다고 했다.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몰라 내 얼굴은 하회탈이 됐다. 감정을 숨기고 눈웃음을 지었다. 차라리 확진을 받고 싶기도 했고, 정상이고 싶기도 했다. 시키는 대로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면역 억제 효과가 있는 약과 소염진통제. 하지만 염증 수치는 크게 줄어들지 않았고 나는 처음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긍정적인 마인드? 개뿔. 통증앞에선 그 무엇도 소용이 없었다.


발목은 얼음을 갖다 대고 양말을 신고 있는 것처럼 시렸다. 혹은 칼로 찌르듯이 아팠다. 그 어떤 약으로도 나아지지 않았다. 어떤 의사는 커다란 밴드를 붙이고 살면 괜찮을 거라 했다. 신경을 다친 거라 덮어두면 그 부위가 따뜻해지기 때문이라고. 거짓말처럼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영원히 살 순 없었다. 등이 굳어 잠을 잘 수 없는 날엔 앉아서 밤새 내 삶을 저주했다.


결국 담당 의사는 내게 면역억제주사를 맞아볼 것을 권했다. 그 주사가 효과가 있다면 확진을 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내가 기다려온 순간이었다. 그 주사를 맞으면 다 나을 것 같았다. 일단 산정특례를 못 받았으니, 주사 하나에 몇 십 만원을 지불해야 했다. 피같은 돈을 내고 주사를 맞았다.


드라마틱했다.

그 주사를 맞고부터 발목이 시리지 않았다.

등도 거짓말처럼 아프지 않았다.

잠을 잘 수 있었다. 염증 수치도 0으로 떨어졌다.

의사는 강직성 척추염 코드를 넣고

산정특례를 선사했다.

암이나 희귀 난치성 환자가 치료비의 10%만 내는 제도.

그것이 내게는 가장 큰 선물이었다.

무병장수의 꿈은 날아갔지만

나는 강직성 척추염을 확진 받고 가슴이 뛰었다.

남들은 울어야 할 일에 나는 웃었다.

내 병에도 이름이 생겼다는 게 복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