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에펠탑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이번 여행 이야기는 끝을 내려고 했다. 진짜다. 사실 기껏해야 일주일간의 파리 여행이야기를 두 달 넘게 읽어줄 독자들이 있을까 걱정하며 연재를 시작했는데 그 때보다 구독자가 두 배도 넘게 늘었다. 정말 감사할 일이다. 그래서 또 한 번 이야기를 치즈처럼 쭉 늘여 집으로 가던 날에 대해 한번 써보려 한다.
장염에 걸린 둘째는 어느 정도 회복은 했지만 벌써 며칠을 굶은 터라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일단 우리 둘째로 이야기하자면 동네에서 먹성 좋기로 유명한 아이다. 돌에 거봉 두 송이를 먹어치우더니, 대여섯 살 쯤엔 남자친구 집에 놀러갔는데 사과를 너무 많이 먹어서 “그 집 엄마가 사과를 정신없이 깎아주다 보니 6개를 깎았다더라.”는 이야기가 들렸다. 크리스마스 때 교회에 한 번 데려간 또 다른 친구엄마는 예배 시작할 때 귤 한 개 까줬다가 예배 보는 내내, “또, 또, 또...”를 반복하는 아이 덕에 귤 까느라 예배 끝날 때까지 손을 못 모아 기도를 못했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도 들려왔다. 실화들이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상기시키자면 ‘딸’이다. 어쨌든 그런 아이가 며칠을 굶었으니 가방 들 힘도 없는 거다. 그나마 탈수를 예방한다는 핑계로 마셔댔던 오랑지나(프랑스 환타)가 그녀에겐 링거였으리라.
큰 택시를 불러 공항으로 갔다. 남편은 학회 일행들과 같은 비행기를 타야 해서 먼저 떠났고, 시누이와 우리 세 모녀가 함께 택시로 이동을 했다. 막상 파리를 떠나려니 많이 아쉬웠다. 숙소 건너편 알버트 카페 사장님에게 인사도 해야 할 것 같았고, 싱싱한 과일을 사러 로컬 시장도 가보고 싶었고, 샹젤리제 거리도 걸어보고 싶었다. 개선문도 제대로 못 봤다. 더 들르고 싶었던 곳들이 줄줄이 떠올랐다. 그래도 이만큼 보고 가는 게 어딘가 싶어 아픈 몸으로도 이 정도 여행을 마무리한 나 자신을 칭찬했다. 순간순간 통증으로 고통스러울 때도 있었고 화장실이 급해 당황한 적도 많았지만 잘 버텼다.
남편이 마일리지로 끊어준 비즈니스석 덕에 나만 편안히 한국을 올 계획이었다. 나머지 가족들은 비행기표를 못 구해 이코노미석에 앉아 와야 했다. 긴 해외여행에서 내가 누리는 단 한 가지 호사였다. 방광상황이나 발목통증이 비행시간을 견디기엔 좀 버거웠던 탓이다. 그래도 늘 다른 가족들에게 미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특히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그래, “너희는 아직 살아갈 날이 많으니 언제든 비즈니스석을 타거라.”하며 농담으로 넘기는 수밖에.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둘째가 공항에 도착해서부터 급격히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일단 에어프랑스 창구에서 짐을 부치는 것부터 비즈니스석은 편리하고 빠르게 수속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이코노미석은 셀프로 모든 걸 해결해야 했다. 자의는 아니었지만 나는 안내하는 대로 걸어가다 보니 벌써 출국 수속까지 끝나버린 상황. 시누이와 큰 딸은 어떻게든 해본다고 했지만 서있기도 힘들어하는 둘째를 데리고 짐을 부치고 모든 수속을 밟고 안으로 들어오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나는 불안해졌다. ‘이런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엄마라니.’ 자책했다.
나중에 들었지만 큰 딸은 다시 열이 오르는 둘째에게 일단 롱 패딩을 벗으라 했다. 그리고 패딩과 가방을 다 들었다. 무거운 짐들은 가냘픈 언니가 다 들고 튼실한 동생은 겨우겨우 걸음만 뗐다. 시누이가 길을 찾고. 그렇게 세 명이 겨우겨우 내가 있는 곳으로 왔다. 이제 남은 것은 보안 수속이다. 수속줄은 늘 길고 뭔가 답답하다. 옷도 다 벗어야지, 짐도 다 풀어서 분리해야지, 뭐 그리 할 게 많은지. 둘째가 그 시간을 서서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둘째를 끌고 비즈니스 수속 줄로 갔다.
"미성년자인 이 아이가 너무 아픈데 혼자 이코노미석이다." 얼마나 내가 이기적으로 보일까 부끄러웠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얘 좀 데리고 내가 이쪽으로 나갈 수 있겠느냐?” 블라블라 열심히 손짓 발짓 설명하니 알겠다며 얼른 데리고 나가란다. 누가 봐도 석고상처럼 허옇게 핏기 없는 아이가 곧 쓰러질 것 같았나보다. 빠른 길을 안내해준다. 아, 친절한 파리. 누가 퉁명스러운 파리라 했는가. 취소다. 나는 그 곳에서 사랑스러운 파리를 또 보았다. 그런데 이번엔 보안 수속대에서 나를 붙잡는다. 손을 뻗으라 한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손을 뻗으니 검색봉으로 내 손바닥 손등을 막 훑는다. 짐도 뒤진다. 옆에 한국말 하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그게 마약 감지하는 거라는데, 내가 마약하는 사람으로 보였나? 또 기분이 이상했다. 아마 내 짐에 약 통이 너무 많아서였을까. 둘째는 그 상황이 재밌는지 그래도 의자에 앉아서 신기해했다.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니 바람이 좀 불고 시원해서 애가 정신이 든 것 같았다. 면세점 구역으로 들어와 일단 먹을 것을 좀 사서 손에 쥐어줬다. 망고를 좋아하는 아이가 망고를 보더니 그제야 웃는다.
나도 좀 정신이 들었다. 이미 방광통증은 10분마다 화장실을 불러대고 있고, 내 몸도 땀으로 흠뻑 젖었지만 아이가 웃으니 다 괜찮았다. 그렇게 비행기를 탔다. 나는 이제 음식도 못 먹을 것 같았다. 밥도 안 먹히고 빵은 더 질렸다. 목이 따끔따끔한 게 감기까지 오는 듯 했다. 그래서 따뜻한 물만 마시며 한국까지 왔다. 승무원들은 내게 차나 따뜻한 음료를 계속 갖다주며 끝까지 친절했다. 참 고마웠다. 내 떨어진 입맛까지 관심을 가져주다니...누가 프랑스인들이 불친절하다고 했는가! 여하튼 드라마, 영화 덕후인 나는 프랑스로 갈 때도 10편짜리 드라마를 정주행하며 갔고 올 때도 영화 4편을 내리 보았다. 아무리 힘들어도 나는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긴 하는 편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내가 다니는 대학병원의 비뇨의학과 교수와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내 병에 대한 진단이 서로 달라 팽팽히 맞서곤 한다. 나는 중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양쪽 약을 다 먹다가 보니 최근에는 스테로이드를 한 달 내내 먹어 퉁퉁 붓고 우울해졌다. 스테로이드를 많이 먹으면 잠도 못 잔다. 나도 이런 해결할 수 없는 일들에는 버겁고 힘들다. 프랑스에서 한국 도착한 후에는 내가 둘째로부터 장염이 옮아 열이 39도를 넘어가고 아주 토사곽란에 시달렸다. 여전히 나는 여행하기에 지극히 부적합하고 불완전한 인간이다. 그렇지만 내가 집에만 있다고 뭐가 달라지는가. 의사 선생님들도 해결 못하는데.
얼마 전 나는 제주로 1박 2일의 벚꽃 여행을 다녀왔다. 나는 항생제를 가득 들고 떠났지만 하나로 마트에서 꽝꽝 얼려 공수해온 갑오징어와 오픈런이 필요했던 치즈케이크, 천리까지 향이 퍼지는 신선한 천혜향을 가득 쥐고 돌아왔다. 웃느라 배가 아팠다. 그거 아는가. 통증에는 약보다 웃음이 더 기가 막히도록 효과가 좋았다는 사실을! 내가 지치지않고 여행을 하는 이유이다. 나와 함께 여행 가주는 친구들에게 오늘도 내일도 사랑한다고 말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