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마칩니다
여행이라고는 거의 해 본 적 없던 25살의 여자와 세계일주하는 게 꿈인 29살의 남자, 그들이 어느 날 결혼을 했다. 지금과 비교하자면 결혼하기에 정말 어린 나이였다. 게다가 둘은 아직 학생. 제일 심각한 점은, 둘이 몇 번 만나지도 않고 결혼했다는 거다. 조선시대도 아니고 운명적으로 첫 눈에 반한 것도 아닌데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다. 남자는 유학생이었고, 여자는 발목을 심하게 다쳐 집에 누워있던 대학원생. 외로운 두 사람은 친구의 소개로 이메일을 주고받기 시작했고 통화를 하다 답답해져 결국 만났다. 몇 번 만나지 않은 상태에서 남자는 여자 쪽 부모님을 만나게 되고, “자네, 내 딸이랑 결혼생각 있나?” “네! 있습니다!” 이 말 한 마디에 결혼은 바로 진행되었다.
홀린 듯 결혼식을 올리고 남자가 살고 있는 미국으로 떠나간 여자는 국문과를 나왔지만 전공을 바꾼 좀 어색한 유학생이 되었고 그 때부터 쉴 새 없이 남자 손을 잡고 여행을 다니게 된다. 모든 게 낯설었다. 2000년대 초반이었으니 내비게이션도 없었다. 발목이 아픈 여자 대신 남자는 운전을 했고 여자는 멀미가 나도록 지도를 읽어야 했다. 캠핑장이나 rest area를 만나면 버너와 코펠을 꺼내 우동을 끓여먹고 허름한 호텔에서 잠을 청했으며 다음 날 또 어딘가를 향해 떠나는 날들이었다. 남자는 많이 걷지 못하는 여자가 쉽게 다닐 수 있도록 매번 경로를 다시 탐색했고, 여자는 가이드 없는 자유여행을 좋아하는 남자의 취향을 맞추느라 탐험정신을 배워갔다. 윷판에서 윷가락을 두 개 엎쳐 함께 가듯 어딜 가든 꼭 붙어 다닐 운명이었고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할 인생여정의 시작이었다.
뭐 다들 예상했겠지만 나와 남편의 이야기다. 나는 여행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었다. 지도를 읽을 줄도 몰라서 매번 고속도로 엑시트를 지나치기 일쑤였다. 길을 잃으면 나는 사람을 붙잡고 길을 묻자고 했고, 남편은 지도를 다시 보자고 했다. 성격이 많이 다르다는 걸 결혼해 살면서 알아갔다. 많이 다투기도 했지만 만리타국에서 의지할 데는 서로 밖에 없었다. 그렇게 살다보니 남편은 혼자 모든 걸 해결하던 스타일에서 수시로 나에게 의견을 물어보는 아내바라기가 되었고, 나는 여차하면 “여행가자!”를 외치는 여행러버가 되었다. 20년이 넘도록 남편과 돌아다니다보니 요즘처럼 몸이 아파도 엉덩이는 들썩들썩 한다. 역마살이 꽉 찬 남편의 최근 비행마일리지는 50만이었다. 남편 옆에 살면서 어디든 따라붙으면 그 곳은 여행지가 되었다.
이번 파리 여행도 남편의 학회 일정을 따라나선 길이었다. 일정의 절반은 남편과 따로 다녀야 했지만 함께 파리로 떠났다. 이만하면 많이 독립적인 사람이 된 듯하다. 파리를 다녀온 사람들의 감상은 반반으로 나뉜다. 어떤 사람들은 지저분하고 소매치기 많은 파리가 실망스러웠다고 하고, 나 같은 사람들은 예술적이고 고전적인 파리의 감성에 푹 빠져 다시 가고 싶어 한다. 내가 얼마나 파리에 대해 찬양을 했으면 최근 이 브런치북을 구독한 한 언니가 평소 뉴욕에 가는 게 꿈이었는데, 파리로 목적지를 바꾸었다고 했다. 얼마나 영광인가. 어쭙잖은 내 글들을 읽고 한 명이라도 파리에 가고 싶어진다면 그걸로 보람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 첫 브런치북, ‘퉁명스러운 파리, 사랑스러운 파리’는 앞으로 이어질 내 글쓰기 여행의 시작점이다. 여행이 어설펐던 25살이 살아가며 여행의 참 재미를 배워갔듯이 앞으로 또 다른 브런치북을 하나하나 발간하면서 나는 다양한 도전을 해보려고 한다. 이번에는 두 개의 브런치북을 한 주 동안 연재해보고자 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다. 나에게는 좌절도 실패도 하나의 글감일 뿐이다. 중간 중간 몸이 아프면 연재를 쉬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글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 할 생각이다. 내 파리 여행이 그랬듯 쉼이라는 건 또 다시 걷다보면 어느 새 그동안의 풍경을 담는 여유로 남을 것이니 두려워말고 도전해보려 한다. 고작 파리여행 5박 7일에도 작은 이야기책이 한 권 나오지 않았는가. 그렇게 나의 글쓰기 여행은 이미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