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도 엄마손은 약손이지

베르사유 궁전도 에펠탑도 못 봤지만

by 소리글

“여보세요?”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보세요.”, “안녕?” 등으로 답한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내가 “여보세요?”하면, “어디 아파?”, “무슨 일이야?”, “그래서 안 됐구나.”, “뭐 필요해?” 융단폭격을 퍼붓는다. 딸의 목소리에 묻은 상황부터 감지하려 한다. 나는 황당하다. 대부분 엄마촉은 똥촉이다. 자다 깼거나, 목이 잠겼거나, 밖이라서 정신없이 전화를 받은 경우는 더 심각하다. 엄마는 내가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생각에 “쉬어라.”며 전화를 먼저 끊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화를 낸다. 다시 걸어 “아니, 말 좀 들으라고!” 소리 지른다. 남한테는 화 한번 못 내면서 엄마의 촉에는 유독 발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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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둘째딸과 나는 한 침대를 썼다. 알버트 카페에서 숙소로 돌아온 그날 밤, 둘째는 자면서 유달리 뒤척댔다. 나는 계속 깼다. 그러다 동이 터올 무렵 아이가 “엄마...”부르자마자 벌떡 일어나며 “어디 아프지, 너?” 묻고 있었다. 이런, 엄마의 촉을 가지고 뭐라 하면서 나도 엄마가 되니 촉밖에 믿을 게 없었나보다. 예상대로 아이는 열이 펄펄 나고 있었다. 39도를 넘어가는 고열이었다. 감기? 독감? 아니면 장염? 셋 중 하나임에 틀림없었다. 비상약 가방을 열고 일단 장염약을 꺼냈다. 속이 울렁이고 설사가 심한 걸 보니 장염 쪽이 가까워보였다.


아침부터 베르사유 궁전을 갔다가 달팽이 요리도 먹고 쇼핑도 하고 바토무슈(센강 유람선)를 타며 에펠탑을 구경하기로 한 날이었다. 일단 둘째가 아프니 나는 꼼짝없이 숙소에 같이 있어야 했다. 학회 스케줄이 끝난 남편이 합류해서 시누와 큰 딸까지 셋이서 일정을 소화하기로 해서 다행이었다. 아쉽진 않았다. 잘 먹고 잘 자는 아이지만, 한 번 아프면 많이 아픈 둘째라서 내 손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다른 걸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아이는 약을 먹고 종일 잤다. 화장실가서 끙끙거리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계속 잤다. 나는 딱히 할 일이 없어 숙소 청소를 했다. 화장실도 박박 밀고, 설거지도 하고, 특이하게 생긴 쓰레기통 비닐도 교환해가며 여기저기 쓸고 닦았다. 그래도 시간은 느리게 갔다.


큰 딸이 실시간으로 사진을 보내주었다. 베르사유 궁전은 나가지가 앙상한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한껏 화려한 기개를 뽐내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거울의 방은 압권이었다. 벽과 천장 전체가 거울로 이루어진 73미터의 방이라고 하는데 1차 세계대전 때 베르사유 조약이 이 방에서 이루어졌다고 했다. 그들은 달팽이 요리가 정말 맛있다며 와인까지 들이키며 파리의 겨울을 즐기고 있었다.

왕실 소성당. 루이 16세와 마리 앙뚜와네뜨의 결혼식이 거행되었던 곳
베르사유 시내에 있는 Brasserie Voltaire. 정말 맛있었다는데 이건 좀 아쉽다

나는 틈만 나면 방문을 살짝 열어보았다. 발갛게 열이 오른 얼굴로 아이가 계속 자고 있었다. 고등학교 올라가는 나이인데도 내 눈에는 아직 아기다. 유달리 예민하고 요구가 많았던 첫째에 비해, 둘째는 태어나서부터 순했다. 신생아시기에도 우유만 태워주면 밤새 혼자 잤다. 아침에 문을 열어보면 혼자서 방실거리며 천장을 보고 웃고 있었다. 동네 어느 집에 맡겨놔도 먹을 것만 주면 엄마를 찾지 않고 생글거리며 놀았다. 덕분에 큰 아이가 아파 병원에 갈 때도 수월하게 다녀올 수 있었다. 아이는 내가 웃으면 따라 웃고, 내가 울면 빤히 쳐다보다가 또 웃어주었다. 내 생에 선물 같은 아이였다.

아이가 커갈 때도 여전히 순하다는 프레임을 씌워놓고 아이의 욕구를 들어주는 데는 늘 뒷전이었던 것 같다. ‘얘는 잘 먹으니까’, ‘잘 자니까’, ‘안 우니까’ 그냥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꽤 고집은 있어서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뒤집어지게 울었다. 그때 알았어야 했는데. 아이는 자기 의견이 확고한 아이였다. 영화를 전공한다면서 굳이 자사고를 가야겠다는 아이. 그걸 반대하는 나 몰래 지원해서 들어간 아이였다. 이제 와서 아이가 하는 말에 귀기울이다보면 아이가 삭힌 것들이 참 많았겠구나 싶다. 잠든 둘째의 이마에 손을 짚으며 파리에 오기 싫다고, 일주일이나 학원 빠지면 어떻게 진도를 따라 가냐고 투덜대던 아이의 마음을 생각해보았다. 너무 억지로 데려와서 파리의 감상을 강요한 게 아닌지 반성도 해보았다. 그래서 아픈 걸까?(과연......)


사실 나 또한 순하기로는 동네에서 유명한 아이였다. 일 년 열두 달 배가 고프지 않으면 잠만 자서, 자는 애가 숨은 쉬고 있나 코 밑에 손가락을 대 보곤 했다고 한다. 자라면서 나는 욕망이 많은 아이로 자랐지만, 부모님과 갈등이 많았던 오빠를 보며 부모님께 좋은 모습만 보이려 애썼다. 그래서 부모님은 나 때문에 속 썩어본 적이 거의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사실 순한 것과 순진한 것은 다른 것이어서, 나는 몰래몰래 요망하게도 하고 싶은 일은 다 도전하고 이루어가며 살았다. 그 뒤에는 항상 똥촉인 엄마가 있었다.

한국에 있는 엄마까지 떠올리며 나는 어떤 엄마인가 생각하고 있을 때 내가 부탁한 해열제를 사들고 남편, 시누, 큰딸이 돌아왔다. 프랑스에는 ‘돌리프란(Dolipran)’이라는 약이 있다. 약국가면 쉽게 구할 수 있는 타이레놀과 같은 성분의 약으로, 처방전 없이도 살 수 있다. 장염약과 돌리프란을 같이 먹으니 열이 훨씬 쉽게 떨어졌다. 셋은 바토무슈를 타러 옷을 단단히 껴입고 다시 나갔다.


배를 문질러주다 등도 긁어달란다. 슬슬 온 몸을 만져주니 이제 좀 괜찮아졌다고 둘째가 웃었다. 그럴 것 같았다. 엄마손은 약손이래잖아. 생각해보면 울 엄마도 약손이었다. 내가 아프면 가게가 바빠도 손을 잡고 병원에 같이 갔다. 그 두툼한 손을 잡고 가다보면 어느새 병원 문턱에서도 나은 것 같았었다. 이제와 고백하건데 사실 엄마의 촉도 완전 똥촉은 아니었다. 엄마는 내 말투에 묻어있는 1그램의 어두움도 감지했다. 1도씨의 서러움도 눈치 챘으며, 1미리의 고단함도 놓치지 않았다. 평생 시장에서 장사하느라 바쁜 엄마의 신경은 온통 집으로 향해 있었다. 그리고 뒤에서 늘 푹신한 모래사장이 되어주었다. 딸이 뭘 하더라도 넘어졌을 때 아프지 않게.

그런 엄마와의 전화는 항상 내 속을 다 들킨 것만 같아서 도리어 큰 소리를 뻥뻥 쳤던 것 같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뒤통수에도 눈이 달려야 엄마하는 거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나는 안다. 드라마 속 엄마 애순이의 마음을 모르는 척 했던 걸 딸이 후회하듯이 나는 요즘 엄마한테 대차게 대들던 나를 후회한다, 엄마가 되어보니 나 또한 내 딸들 뒤에서 촉을 세우고 열심히 헛다리를 짚어가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속이 상하면 엄마에게 막 대들고 소리 지르곤 한다. 왜 내 맘을 몰라 주냐고. 엄마의 모래사장은 너무 푹신해서 살다가 지칠 때면 그냥 뒤도 안 보고 드러눕는 거다. 도대체 언제 철이 들지 모르겠다. 그런데 내 딸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배를 문질러주면서도 음식을 가려먹거나 꼭꼭 씹어 먹지 않고 손도 잘 안 씻어서 장염에 걸리는 거라고 아픈 아이에게 타박을 했다. 엄마라면서 난 뭐 이리 뾰족뾰족한지 모르겠다. 그때 아프다고 울어도 괜찮다고 말해줄걸. 그냥 좀 휙 토라지며 짜증을 내도 될 나이인데. 그저 내 품에 안겨 빙긋이 웃는 둘째다. 나보다 마음이 넓.


이런 아이가 있어서 나는 바토무슈를 못 타도, 에펠탑을 못 봐도, 달팽이 요리를 못 먹어도 괜찮았다. 파리에 와서 하루 쉬어갔어도 괜찮았다. 어차피 방광염 환자에게는 휴식도 여행의 한 과정이다. 아이 배를 문질러주며 멋진 에펠탑사진을 보다 잠이 들었다. 그날 밤은 둘째가 열나지 않기를 바라며. 그리고 한국에 있는 엄마에게 아이스크림처럼 좀 더 부드러운 딸이 되겠노라고 다짐하며. 파리에서의 5일째는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 사진으로 보는 오늘의 관광팁!

프랑스의 국민해열제. 아세트아미노펜 성분. 아이용부터 어른용까지 골라살 수 있어요
비르아켐 다리에서 본 핑크하늘에 걸쳐진 에펠탑, 센강에서 본 에펠탑. 몹시 춥다고 하니 머플러 둥둥 패션 추천합니다.
센강 산책로에서 본 에펠탑. 사진 잘 나오는 스팟이더라구요.
바토무슈에서 에펠탑. 루브르, 오르세, 퐁네프, 노트르담까지 싹 다 볼수 있대요. 그리고 내 옷까지 겹쳐입고 간 큰 딸. 겨울엔 강바람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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