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푸근하고 친절했던 파리

셰익스피어 서점에서 숙소까지 삼만리

by 소리글
그 무렵 무척 가난했던 나는 오데옹 거리 12번지에 있는 실비아 비치의 대여점 셰익스피어&컴퍼니에서 책을 빌리곤 했다. 겨울이 되면 찬바람이 휘몰아치는 쌀쌀한 거리에 있는 그 서점에서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위해 입구에 커다란 난로를 피워 놓았다. 따뜻하고, 쾌적하고, 멋진 곳이었다. 실내에는 탁자들이 놓여 있고, 선반에는 책들이 가득 차 있었으며, 유리 진열장에는 신간 서적들을 전시해 놓았다.
- ‘파리는 날마다 축제(A Moveable Feast)’, 어니스트 헤밍웨이, p32.

1920년대 헤밍웨이나 피츠제럴드, 에즈라 파운드 같은 작가들이 문학적 교류를 나누던 곳. 돈 없는 헤밍웨이에게 마음껏 책을 빌려준 책 대여점. 영화 ‘미드 나잇 인 파리’의 촬영지. 영화 ‘비포 선 셋’에서 남자주인공 제시가 9년 만에 나타난 셀린을 만나는 공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독립서점. 이 모두가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Shakespeare and Company) 서점을 수식하는 말이다.

나무로 선반을 툭툭 연결해 지은 듯 낡고 오래된 서점 안은 책 향기로 꽉꽉 들어차있었다. 1층만 돌아보고 성급히 나와 버린 나와는 다르게 큰 아이는 좁은 계단을 올라가 보았다. 오른쪽으로 포스트잇이 가득 붙은 벽이 있었고, 인생명언들이 세계 각국의 언어로 그 곳을 채우고 있었다고 한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쓴 예쁜 글귀들이었다.

실내는 사진촬영 금지라 구글에서 검색

정면에는 책장. 왼쪽으로는 만화 속 트리하우스에 나올 법한 난간이 있는데 거기선 1층이 내려다 보였다. 복도에 타자기, 전화기 등의 오브제를 지나면 독서실책상처럼 아늑하고 독립된 책 읽는 공간이 나타났다. 더 가면 소파들이 있었는데 편안히 누워 책 읽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시간이 멈춘 듯, 동화적이면서도 편안한 공간이 그 곳에 펼쳐져 있었나보다. 이걸 내 생눈으로 못 보았다니, 난 결국 파리에 다시 와야 할 운명... (이번 브런치북에 이 소릴 몇 번째 하는지 모르겠다!)


“Be not inhospitable to strangers lest they be angels in disguise. 낯선 이를 홀대하지 마라. 그들은 변장한 천사일지도 모르니. - 조지 휘트먼

예전에도 그랬지만 여전히 이곳에선 하룻밤 숙박이 가능하다고 한다. 숙박을 위해선 저소득 소외계층을 위한 작은 봉사활동을 돕고 그 곳의 책들을 읽은 후 한 장정도의 자기 이야기를 쓰면 된다. 3대 사장인 실비아 휘트먼은 서점 한 귀퉁이에 아버지의 말을 새겨두었다. 그리고 이곳을 방문하는 모든 이들에게 서점을 마음껏 향유할 기회를 나눠주고 있었다. 헤밍웨이가 말한 따뜻하고 마음씨 넉넉한 서점의 모습 그대로였다.


“만약 당신이 그저 책으로 가득한 벽을 본다면 그것이 전부라면 다시 찾아가진 않겠죠. 그냥 인터넷으로 책을 사면되니까요. 서점은...책을 둘러싼 이야기, 공간, 느낌, 경험, 당신이 믿는 것에 관한 것을 제공하잖아요...(서점에 오면) 책을 읽고 싶고 이야기를 알고 싶은 유혹에 빠지는 마음이 더 강해질 겁니다.” - tvn ‘책의 운명’ 다큐에서, 다비드 들라네(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공동대표)

영어로 된 책들이라 읽어낼 자신이 없어 사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곳에서 펴보았던 책들의 질감도 글귀도 기억이 난다. 이제 나에게 서점에 가는 행위는 책을 읽기 전, 책에 가까이 다가가는 의미있는 위이며, 이 모두가 그 책에 대한 추억이 될 것이다. 셰익스피어 서점을 방문하고 돌아온 뒤 나는 책을 더 좋아하게 되었고, 다시 그 곳을 방문하고 싶어졌다. 책에 대한 나의 생각까지 흔들어 놓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머리의 양식은 채웠으나, 아침 일찍부터 나왔던 탓에 배가 고파왔다. 우리는 ‘핑크마마’에 가서 트러플을 몇 병은 쏟아 부은 것 같은 파스타와 피자를 먹었다. 맛은 있었다. 하지만 피클은 없는 것 같았다. 거기까지는 그래도 행복했다. 문제는 나였다. 화장실 가는 빈도가 점점 잦아지고 있었다. 통증까지 왔다. 바로 걸어서 몽마르트 언덕을 올라갈 수 있는 거리였음에도 나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둘째아이와 나는 먼저 샹젤리제로 가 있기로 했다. 파리에서는 볼트라는 택시 앱을 주로 이용했기에 불렀는데 이 택시가 감감무소식이다. 혼자 취소되고 입을 싹 닦는다. 채팅기능도 없다. 결국 근처 택시 정류장에 가서 택시를 잡아탔다. 볼트보다 싼 가격으로 이용을 했으니 그리 억울하진 않았다. 그 사이 시누와 큰 아이는 기차를 타고 몽마르트 언덕도 올라가보고 프랑스판 성심당에서 미사도 구경했다.

몽마르트 언덕과 샤크레괴르(성심당) 성당


샹젤리제에서 유명하다는 조르쥬쌍끄(Geroge V) 디저트 카페에서 크림 브륄레와 티라미슈를 먹으며 휴식을 취해보았다. 여기도 맛은 정말 좋았다. 하지만 꾸벅꾸벅 조는 둘째 아이와 도무지 회복되지 않는 방광통증에 샹젤리제 거리를 포기해야 했다. 개선문을 코앞에 두고 그 몇 백 미터를 못 걸어 사진만 찍고 돌아서야 했다. 우리는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택시를 타러갔다.

이 곳에서 여행을 잠깐 멈추어야 했다. 쓸모없는 방광같으니

이번엔 내가 카카오 택시를 불렀다. 그런데 이상하다. 택시는 왔다고 하는데 도무지 차량을 찾을 수가 없었다. 여기도 채팅기능이 없으니 연락을 해 볼 수도 없다. 채팅이나 전화번호 표시해주면 내가 뭐 작업이라도 건다니? 제발 연락할 방법을 좀 줬으면 좋겠는데, 비 맞은 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택시를 찾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엄마, 저 맞은 편 택시 아니야?”

둘째가 디저트먹은 값을 해냈다. 그러고 보니 거대한 루이비통 건물 앞에 작은 택시가 아까부터 서 있다. 어머, 정말 그 번호다. 횡단보도를 건너가서 너 왜 여기 있냐고 물으니 아뿔싸....영어를 못한다. 내 이름을 대니, 자기 폰 화면을 보여준다. 내가 자기 승객이 아니란다. 그 화면에 내 이름이 선명히 찍혀있는데도. 프랑스어 발음으로 자꾸 내 이름을 말한다. 한참 실랑이를 한 끝에 택시기사는 시동을 걸었다. 프랑스어 못하는 관광객에게 비 내리는 파리는 이토록 서글픈 거였다. 한참을 돌아돌아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택시는 숙소 앞에 다다랐다.


그때 시누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번엔 진짜 큰일이다. 숙소 열쇠를 시누가 가지고 있단다.

sticker sticker

그러고 보니 아침에 숙소를 나설 때 시누의 가방 안에 열쇠를 쏙 넣던 게 기억이 났다. 시누와 큰 아이는 열심히 개선문을 올라가고 있었다. 개선문 위에서 파리 야경을 보려는 건데 중간에 내려올 수도 없고 우리는 집에 들어갈 수도 없게 된 거다.

둘이라도 개선문야경 보고와서 다행이다♡

일단 택시에서 내렸다. 아무 곳에라도 들어가 저녁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밥을 다 먹으면 지체 없이 계산서를 내밀던 식당들이 생각나 벌써 식은땀이 났다. 그때 숙소 바로 앞 식당, ‘Cafe Grand Albert’가 눈에 들어왔다.


들어가자마자 일단 발열방석을 켜고 오래 앉아있을 준비를 했다. 식당 안은 바 쪽에 지인인 듯한 사람들 몇 명을 제외하고는 비어있었다. 주인아저씨가 반갑게 눈인사를 했다. 메뉴판을 주고 갔는데 프랑스어 까막눈은 읽을 수도 없었다. 동공지진이 난 나를 본 아저씨는 다시 다가와서 벽 쪽을 가리키며 저걸 먹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소위 ‘오늘의 요리’였다. 쿠스쿠스를 아냐고 묻는데 나는 처음 들어봤다. 나중에 보니, 밀가루로 만든 좁쌀 맛이 나는 파스타 같은 거였다. 주로 중동음식에 쓰이는 재료였다. 뭐 스테이크가 가득 담긴 사진도 보여주었다. 나는 무조건 달라고 하고 시저 샐러드를 추가로 시켰다. 뭐라도 많이 시켜서 오래 앉아 있어야 했다.


잠시 후 마녀스프처럼 뭉근히 끓인 토마토 맛이 살짝 나는 따뜻한 야채스프와 쿠스쿠스가 한 대접 나왔다. 거기다 닭다리, 양고기, 소고기를 직화스테이크로 구워 한가득 함께 나왔다. 이러고 15유로라고? 한국으로 치자면 시골인심인가? 이 아저씨 어디 시골 출신인가? 둘째와 나는 지쳐서 입맛이 없는데도 음식이 맛있어 계속 먹었다. 몸이 녹으니 긴장이 좀 풀렸다. 아저씨가 계속 우리를 쳐다보며 웃는다. 무안해진 나는 열쇠 이야기를 하며 오늘은 정말 힘든 하루였다고 하소연을 했다. 그러자 이 아저씨가 다가와 윙크를 하며 어깨를 두드린다. 그리고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을 해주었다.

“얼마든지 기다리고 있어도 괜찮으니 편안히 쉬었다 가.”


아오, 코가 매워 눈물이 나올 뻔 했다. 나이 오십 다 되어서 발열방석 켜놓고 울 뻔 했다. 울었음 아파서 운다고 하려 했다. 이 얼마나 고마운 친절인가. 메뉴판에 적힌 리차드가 이름인지, 알버트가 이름인지 지금까지 알 순 없지만, 그 주인아저씨는 그날 내게 셰익스피어 서점의 실비아 사장님이었다. 그 서점의 넉넉한 나눔 정신이 파리 어느 식당까지 흐르는 건지도 모르겠다. 몇 시간 뒤, 열쇠를 흔들며 시누와 큰 아이가 돌아왔다. 시누가 유창한 프랑스어로 감사하다고 인사하자, 그 아저씨는 으쓱하며 “노 프라블럼”을 외친다. 꼭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지키진 못했다. 그러니까 다시 한 번 더 말하지만, 또 가야 한다고. 그날 밤 서글픈 관광객에게 그토록 푸근하고 친절했던 파리에.





구글에는 안 나오는 장소가 없단 말이지. 땡큐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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