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OO였고 파리는 OO였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3대 사과는 무엇일까? 미술 비평가 모리스 드니는 인류의 역사를 바꾼 세 개의 사과를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 그리고 세잔의 사과라고 했다. (물론 4대 사과는 잡스의 애플!) 세잔은 “나는 사과 하나로 파리를 놀라게 하겠다.”라며 평생 사과를 그리는데 40년을 바쳤다고 한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그 세잔의 사과 그림들을 만났다. 아빠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딸, 그림은 사실적인 묘사가 아니라고 했지? 사과 이거 곧 굴러 떨어질 것 같이 보이지? 원근법을 무시한 것 같지만 사과라는 본질로 봐봐. 색이랑 모양이 딱 사과잖아. 어디에서 보고 있건 그 시점을 한 그림 속에 다 담은 거야.”
“어우, 알지, 아빠가 화실에서 설명해 줬잖아. 기억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아빠의 말대로 원근법을 깡그리 무시한 이 사과가 불편해 보이는 이유를 생각 중이었다. 내가 미술관에 가면 제일 놀라는 점이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유화나 수채화에 색이 많이 덧대어져 있다는 것이다. 정말 입체적이다. 작가가 그림 한 장에 들이는 노력, 다양한 삶의 경험 등을 생각해보았다. 그림이란 그 복잡한 관념들의 총집합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세잔도 그 많은 고뇌를 다 담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는 사물의 변하지 않는 측면, 객관적 진실을 표현하고자 그렇게 원근법을 무시한 구도를 선택했다고 한다. 이 사과는 정면에서 본 모습, 저 사과는 정면과 측면을 동시에 본 모습,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런 파격적인 행보로 인해 세잔은 오랫동안 평단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스스로 자책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몹시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모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붓을 집어던지기도 예사여서 부인과 아들이 모델을 해 주어야 할 정도였다고. 나는 아빠의 해설을 들으며 사과 한 알, 오렌지 한 알을 꼼꼼히 쳐다보았다.
나는 평생 아빠의 그림을 보며 컸다. 시장의 장사꾼이었던 아빠는 마음 한 구석에 늘 미술에 대한 배고픔이 있었다. 어릴 적 지지리도 가난해 물에 불린 밥에 맨 된장을 먹어야 했던 때에도 첨성대를 그려 용돈을 벌었다. 먹고 살기 위해 아빠는 본격적으로 시장에서 뛰어들어 돈을 벌었다. 대구의 푹푹 찌는 여름, 시장 건너편 아스팔트 위에 뜨거운 아지랑이가 올라오면 그걸 그리고 싶어 더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 나이가 들고 아빠는 마침내 아마추어 화가가 되었다. 세잔의 사과도, 고흐의 해바라기나 고갱의 타히티의 연인들도 따라 그려보며 아빠는 물감 값 걱정 없이 마음껏 그림을 그렸다, 특히 아빠의 고향 경주는 오랫동안 아빠의 화폭에서 봄여름가을겨울을 맞이했다.
아빠는 성격이 잘 벼린 칼날 같았다. 화가 나면 상처 주는 말도 곧잘 했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건 굽히지 않았다. 막연히 아빠의 예민함은 예술가적 기질에서 왔다고 생각했다. 그냥 미술 하는 사람들이 그런가보다 생각했다. 예술가들의 삶은 그들의 작품만큼이나 예사롭지 않았던 경우가 많았으니까.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 1920년대로 돌아간 주인공이 그 시절 예술가들을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꼬장꼬장한 성격의 헤밍웨이나 드가, 피카소, 피츠제럴드 등이 논쟁을 하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딱 아빠를 닮았다 싶었다. 그들의 예민함이 없었다면 그렇게 완벽한 작품들이 나오긴 힘들었을 터이니, 그들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아빠의 삶도 예술의 한 조각으로 보아주지 뭐, 싶었다. 이제 나도 사는 게 고되었던 아빠를 이해할 나이니까.
어쨌든, 그런 예술가들이 그린 그림들 수천점이 걸린 미술관이라는 걸 루브르에서 뼈아프게 배웠으니 이번에는 좀 더 시간을 들여 보기로 했다. 게다가 오르세는 1848년부터 1914년까지의 작품들, 특히 사람들이 가장 익숙해하는 인상주의나 후기 인상주의 그림들이 가득하다. 모네, 마네, 르누아르, 고흐, 고갱, 세잔, 드가 등, 낯익은 이름은 만리타국에서 만난 아는 사람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마네의 화풍에 새롭게 면을 좀 더 튼 것이 내 경우엔 참 반갑기도 했다.
서 있는 마네의 친구들 간의 관계가 단절된 듯 보인다. 의도적으로 마치 정물 속 사물처럼 그린 것이라고 한다. 서로 쳐다보지도 않는 표정들의 묘사가 놀라웠다.
드가의 그림 속 발레리나 소녀들은 또 얼마나 귀여운지. 그러다 고흐의 작품전이 열리는 방에 들어왔다. 붓터치가 마치 튀어나올 것처럼 보이는 <오베르 교회>, <별이 빛나는 밤에>를 지나 <자화상>에 이르자, 너무 반가운 마음에 아빠에게 얘기하려고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빠가 여기 있을 리가 없지.
작년 여름, 아빠는 내 곁을 떠났다. 아빠가 좋아한 고갱이 타히티로 떠났듯 아빠는 이제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났다. 엄마는 ‘달과 6펜스’ 책을 좋아했던 아빠가 고갱의 삶을 동경했던 것 같고 화풍은 고흐를 좋아했던 것 같다고 기억했다. 사실 이 글을 쓰며 아빠가 좋아했던 화가가 고흐였는지, 고갱이였는지 헷갈려서 엄마에게 방에 있는 아빠 사진 앞에 가서 물어보라고 했다. 엄마와 얘기하다보면 이젠 깔깔 웃으며 아빠 이야기를 하게 된다. 고갱이면 어떻고 고흐면 어떤가, 아빠도 붓을 잡고 화구 앞에 앉아서 마음껏 꿈을 펼치다 갔다는 게 중요하지. 나는 아빠가 많이 그리워서 오르세의 그날처럼 가끔 아빠 목소리가 들리고 따뜻한 손길도 느껴지곤 했다. 아니, 사실 그날 당연히 아빠의 부재를 알고 있었지만 아빠가 내 곁에 같이 관람을 하고 있는 것 같이 잠시 믿고 싶었다.
"여기 머물면 여기가 현재가 돼요. 그럼 또 다른 시대를 동경하겠죠. 상상 속의 황금시대. 현재란 그런 거예요. 늘 불만스럽죠. 삶이 원래 그러니까."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영화 속 수많은 예술가들이 살았던 삶과 시절을 우리는 동경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들 또한 앞선 시대를 선망했다. 아빠를 그리워하며 아빠와 살았던 시간으로 돌아가더라도 그 시절에 도착한 나에게 그 시간은 현재가 되어버린다. 그러면 또 그 앞 시대를 동경하겠지. 나는 그날 아빠를 정말 놓아 주어야겠다 생각했다.
아빠는 세잔처럼 두 눈으로 세상을 보았다. 아빠는 생전에 함께 미술관을 가면, 그림을 설명해주며 나에게 세상의 많은 이치를 한꺼번에 가르쳐주고 싶어 했다. 늘 예민했고 불면증에 시달렸던 아빠, 타히티로 훌쩍 떠나버릴 수 있었던 고갱을 동경했던 아빠는, 말년에 뇌졸중을 앓은 후 잘 자고 잘 웃다가 거짓말처럼 우리 곁을 떠나갔다. 아니다, 아빠 없이 오르세에 왔던 그날 아빠는 이 수많은 미술가들과 함께 내 곁에 있었다. 이런 혼란스러운 나를 아빠도 이해한 걸까. 아빠는 늘 그랬듯 그저 빙긋이 웃고는 뒷짐을 지고 인파 사이로 사라졌다.
오르세를 나오자 밤공기 속에 젖은 비내음이 느껴졌다. 비오는 파리의 밤거리는 한층 고즈넉하고 아름다웠다. 군밤을 파는 상인들, 노점책방이 늘어선 도로, 바게트를 사서 퇴근하는 사람들. 아빠는 추억이고 파리는 현재였다. 파리는 내게 아빠와 함께 한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했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그날의 파리를 기억하기 위해 나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헤밍웨이의 ‘파리는 날마다 축제(A Moveable Feast)’ 책을 사 읽었다.
“아직도 파리에 다녀오지 않은 분이 있다면 이렇게 조언하고 싶군요. 만약 당신에게 충분한 행운이 따라 주어서 젊은 시절 한때를 파리에서 보낼 수 있다면, 파리는 마치 ‘움직이는 축제(A Moveable Feast)’처럼 남은 일생에 당신이 어딜 가든 늘 당신 곁에 머무를 거라고. 바로 내게 그랬던 것처럼.” ㅡ1950년, 헤밍웨이와 어느 기자와의 인터뷰
☑오르세 미술관에서 기억하세요.
1. 루브르에서 오르세까지 걸어서 몇 분이나 걸릴까? 즐기기 나름이다. 뛸리히 정원에서 풍경을 감상하다 다리를 바로 건너도 좋고 콩코드 광장까지 쭉 걸어 발 닿는 거리 어디든 돌아가도 좋다. 다음 날 가면 어떠리. 어쨌든 그렇게 오르세 미술관에 도착하면 갑자기 시공간이 뒤바뀌는 느낌이 들 것이다. 원래 이 곳은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를 위해 지어진 기차역이었다는데 1986년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해서 개관했다고 한다. 루브르에서는 모나리자를 보러 제일 먼저 뛰어간다면, 이곳에서는 다들 가장 유명한 시계탑 앞에서 사진을 남기러 5층으로 직행한다.
2. 오르세의 화장실은 입구 쪽이나 6층에만 있는 듯하다. 5층 시계탑에서 전시관방향으로 관람하고 나오면 또 같은 시계탑이 있는 식당이 나온다. 그 식당을 지나가면 6층 화장실로 향하는 계단이 있다. 유레카! 다시 5층, 화장실 방향의 반대편으로 쭉 가면 에스컬레이터가 있다. 적어도 2층까지는 탈 수 있으니 거기서 다시 계단을 내려가면 고풍스러운 기차역 풍경이 펼쳐진다.
3. 오디오 가이드가 좋은 편. 그렇지만, 파리의 미술관들은 오디오 가이드가 전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 게 아니라 사실 좀 아쉽다. 설명을 듣고 싶은 그림들이 너무 많았다. 원한다면 미리 가이드와 동반하거나 돈을 주고 사설 오디오를 구입하길. 사춘기 둘째 딸도 설명을 듣고 싶은 것마다 없다며 본인의 안목이 이상한 거냐며 투덜거렸다는! (니 말이 맞을 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