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박물관 두 곳은 무리입니다만

루브르에서 시작하다니 딱 좋았지

by 소리글

파리의 아침은 일찍부터 빵 굽는 냄새로 가득 찼다. 시누는 새벽부터 부지런히 나가 갓 구운 따끈한 뺑오 쇼콜라와 크로와상, 바게트를 사왔다. 게다가 5일 이상 파리의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할 것을 대비해 가까운 지하철역에 들러 나비고 패스도 4명 어치를 사 왔다. 나비고 패스는 한 번 사면 매주 월요일에서 일요일까지 일주일을 무제한으로 쓸 수 있는 교통카드이다. 나는 파리에 머무는 동안 버스를 애용했다. 파리 지하철은 계단이 많아 오르락내리락 해야 하므로 발목신경통으로 많이 걷지 못하는 내게는 버스가 훨씬 편했다.

파리는 빵이 정말 맛있었다. 우리는 매일 아침 동네 빵집들을 투어하며 아침 식사를 해결했다. 길에서 바게트 뜯어먹으며 걷는 게 로망이었던 큰 딸은 딱딱하고 기다란 바게트를 통으로 뜯어먹으며 다니다 입술에서 피를 질질 흘리곤 했다. 그래도 버스에서 트렌치코트에 허리를 졸라매고 에코백에 바게트를 꽂은 채 퇴근하는 아저씨들을 보면 그게 얼마나 멋있어 보이던지! 우리도 파리의 소매치기가 무서워 배 쪽으로 단단히 여며 맨 가방 속에 빵을 소울 푸드처럼 넣고 첫 날을 시작했다. 첫 번째 코스는 루브르 박물관이었다.


루브르 박물관으로 건너가는 예술교의 양쪽 난간에는 자물쇠들이 그렇게 많이 달려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소원을 빌고 난 후 열쇠를 센 강에 던졌다. 계속 덧달아진 자물쇠들로 인해 예술교는 점점 무거워졌고 결국 난간이 무너져 다시 보수를 해야 했다. 사람은 누구나 가슴 속에 소원이 있고 그 소원은 으레 참 간절한 편이다. 그래서 여전히 파리에 철로 된 난간만 보이면 사람들은 그렇게 자물쇠를 단다고 한다. 몽마르뜨 언덕이든 어디든 그 소원을 들어줄 진짜 열쇠들은 센 강 바닥처럼 닿지 않는 누군가의 마음 속 깊이 자리하고 있을 텐데 말이다.

간절한 소원의 무게 (노트르담 성당 근처)

사람들은 그렇게 꽤 간절한 마음으로 여행을 떠난다. “이번 여행에서 ㅇㅇ을 보고 오고싶다.”, “이번엔 꼭 힐링을 하고 오리라.” 등등... 내 경우엔 이번 여행은 철저히 ‘보상을 위한’ 여행이었다. 지금까지 애 하나 대학 보내고 성인 만드느라 고생했으니 그 좋다는 파리 구경 한번 해보자. 딱 그 정도 생각이었다. 그래서 큰 딸이 열심히 여행 일정을 짜고 박물관 예매를 할 때도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너무 후회가 된다. 루브르와 오르세 박물관을 하루에 다 돌았는데, 그 자체도 무리였지만 이왕이면 5박7일의 일정 속에 박물관은 하루에 하나씩 넉넉하게 시간을 두고 넣었으면 좋을 뻔 했다. 그만큼 볼거리가 풍부했고 예술 감상에는 감동할 시간과 여유가 필요했다.

(루브르 공식 홈페이지 https://www.louvre.fr/en)

일단 루브르는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한 작품 당 3초씩만 봐도 3일에서 5일은 봐야 한다는데, 몇 시간 안에 루브르를 본다는 건 사실상 수박 겉핥기다. 아니 수박조차 원근법으로 저 멀리에서 보는 기분이다. 어차피 이렇게 된 게 초스피드로 주요 작품만 보고 나와야 했다. 학교 다닐 때 예습이라곤 안 했던 습관이 이제 와서 그리 후회될 수가 없었다. 공식사이트에서 예약한 시간 맞춰 도착해 1층에서 오디오 가이드 받은 걸로 재빨리 주요 작품 리스트를 뽑아 보았다. 그도 잘 모르겠다 싶을 때에는 초록창에 검색을 했다.

모나리자는 작아서 군중 속에서 더 고독할지도^^

일단 ‘모나리자’부터 찾아보았다. 전 세계인이 이 작은 사이즈의 작품을 보러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냥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을 찾으면 ‘모나리자’ 앞이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내가 한참 시간을 보낸 곳은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었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830년 7월 28일, 프랑스 혁명의 둘째 날을 그린 그림인데, 그림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계층의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얼마나 모든 계층들의 지지를 받은 혁명이었는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요즘 우리나라의 상황을 떠올려서일까 한참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 외에도 루브르에서 가장 큰 그림, ‘가나의 혼인잔치’ 앞에 옹기종기 앉은 프랑스 초등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그들의 문화유산들이 부럽다는 생각도 했고, 다비드의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을 시작으로 다비드의 작품들도 하나씩 감상할 기회를 가졌다. 정말 아름다웠던 사모트라케의 ‘니케’나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비너스상’, ‘스핑크스’ 등도 생눈으로 본 것 자체가 정말 감동적이었다.

주로 본 작품들이 어쩌다보니 그러하기도 했지만,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 ‘잔 다르크’ 등 개인적으로 뭔가 정치적, 사회적 부조리에 반기를 드는 그림들에 마음이 웅장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루브르는 한 나절 보기에도 짧다. 너무 준비 없이 온 터라 몇 시간 뒤 나는 나의 게으름을 심각하게 후회하며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내겐 파리에 다시 와야 할 이유 중 아주 큰 이유가 루브르를 제대로 못 봤다는 것이 되어버렸다.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 바로 아직 사춘기를 벗어나지 못한, 갓 중학교를 졸업한 둘째와 함께 왔다는 것이다. 이 아이는 일단 만사가 힘들다. 걷기도 힘들고, 목도 자주 마르고, 걷기 시작부터 지쳐있다. 눈치껏 우리는 네 명이 모두 흩어져서 감상하기로 했다. 각자의 취향과 박자에 맞춰 보고 싶은 작품을 보고 다시 만나기로 했는데, 결론적으로 잘 한 결정이었던 것 같다. 십대인 둘째는 명화 속 인물들보다는 현실에 집중했다. 티모시 샬라메 닮은 청년이 옆 자리에 앉아서 쉬고 있어서 마냥 흐뭇했는데 그가 일어나서 떠나자 전성기 디카프리오 두 명이 와서 앉더라는 그저 행복에 겨운 눈호강으로 루브르를 마감했고, 첫째는 한참 기운 좋은 이십 대답게 최대한 많이 보고 여러 군데 돌아다니는 걸 목표로 했다. 프랑스 유튜브를 운영하는 시누이는 동영상도 찍어가며 알차게 즐기고 있었고 나는 무엇보다 여러 층을 돌아다니기에는 구석에 있는 엘리베이터 찾기도 쉽지 않아 막판엔 모나리자가 있는 층을 집중공략하며 양보다는 질에 치중하는 관람을 했다. 그리고 만나기로 한 약속시간에 1층 오디오가이드 반납대쪽에는 와이파이나 데이터가 전혀 터지지 않는 관계로 의사소통이 잘 안 되어 일찍 퇴관을 하고 말았다.


미술관은 ‘어떤 작품을 품고 있느냐’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누가 어떻게 관람하느냐’가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미리 준비를 하고 온 만큼 더 많이 얻어갈 수 있다는 건 뼈저리게 배웠지만, 각자의 상황에 맞춰 최대한 즐겼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좋은 관람이었던 것 같다.

사실 드라마와 영화를 사랑하는 내 입장에서는 파리의 곳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장면들을 마주하는 게 정말 짜릿하게 좋았다. 프랑스 드라마 <뤼팽>속에는 첫 장면부터 야밤의 유리 피라미드가 등장하며 루브르에 침입해 마리 앙뜨와네트의 목걸이를 훔치는 이야기가 나온다. 가 본 적도 없는 루브르가 그 때 그렇게도 멋있었다. 그래서 그 장소에 내가 선 것만 해도 나는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루브르 1층에 있는 카페 마를리(le cafe Marly)에 들어서자, “어? <에밀리 파리에 가다>에 나온 식당이랑 똑같이 생겼는데?” 소리가 절로 나왔다. 시누가 웃으며 맞다고 했다. 우와, 그 야외식당이 여기라고? 너무 반가웠다. 그러나 파리의 야외식당은 비둘기와 겸상을 해야 하는 이슈가 있어서 우리는 기겁을 하고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파리의 비둘기는 바닥에 떨어지는 빵조각을 먹느라 우리 종아리 옆에 자리를 잡기 때문이다.

카페 마를리

파리의 식당에 대한 내 첫인상은 직원들이 불친절하다는 것이었다. 혹시 이것이 인종차별인가 생각도 했는데, 시누의 설명에 따르면 그럴 수도 있지만 대개 직원들이 많이 지쳐있다고 했다. 한국처럼 엄청난 친절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또 주문을 할 때는 메뉴판을 덮고 웨이터와 눈이 마주치도록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계산할 때도 마찬가지. 손을 번쩍 들거나 부르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했다. 세상에, 나는 처음부터 아무 생각 없이 손을 번쩍 들었으니! 그래서 약간 퉁명스러웠나? 진짜 그렇다면 귀여운 퉁퉁거림이네. 쏴리!어쨌거나 음식 맛은 좋았고, 다 먹었느냐 치워도 되느냐는 말도 없이 그릇을 치우기 시작하는 프랑스 스타일에 낯설어하며 루브르와의 짧은 한나절을 끝냈다.


프랑스는 겨울이 우기이다. 비도 자주 내리고 하늘도 흐리다. 우리가 머문 날들도 대부분이 회색 하늘이었다. 파리의 건물지붕이 회색인 이유가 이런 회색 하늘과 잘 어울리도록 만든 거라고 하는데, 그저 지나가는 말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난 진심 동감했다. 맑은 하늘의 파리도 예뻤겠지만, 우울하게 흐린 하늘에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왜 그리 잘 어울리던지. 감탄을 하며 오르세 미술관으로 건너가는 동안 뛸르히 정원을 잠시 산책했다, 회색 하늘과 옛 건물 위로 비눗방울을 크게 불어대는 상인의 모습이 어우러지며 마치 내가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내가 나오는 영화라니. 맑아야만 행복한 건 아니었다. 흐려도 아파도 엉망진창이어도 그 회색 파리 속에 내가 들어있다면 이번 생은 꽤 괜찮은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유롭게 앙젤리나(Angelina) 카페에서 핫초코 한 잔 하고 다리를 건넌 후 다음 글에서 오르세 미술관으로 건너가 보려 한다. 왜 하루를 한 편에 다 쓰지 않았냐고? 후훗. 그래서 내가 처음부터 이야기했지 않은가. 하루에 박물관 두 곳은 무리라고.





☑환자의 여행에 도움이 될 만한 tip들

1. 발열방석. 휴대용 배터리로 충전이 되는 정사각형 모양. 크기도 납작해서 가방에 쏙 들어감. 방광염이나 장염 앓는 여행객에게는 아주 강력 추천템. 10편의 드라마를 이륙과 함께 시작해서 착륙까지 14시간동안 꼬박 정주행하는 동안 큰 몫을 함. ‘엉뜨’ 효과는 대단했음. 긴 비행에도 엉덩이가 뜨뜻하니 몸이 버틸 만했음. 중년엔 뭐니 뭐니 해도 혈액순환.
2. 4명이상이라면 공항 앞 택시 정류장에서 큰 택시 잡아타기. 65유로. 파리는 택시 조수석에 사람을 잘 태우지 않는데 공항택시들은 짐도 다 실어주고 앞좌석에도 앉을 수 있게 해 줌.
3. 숙소는 교통과 안전을 우선. 우리 경우엔 남편 학회에서 잡아준 호텔 근처로 잡다보니 13구, 차이나타운 근처이긴 했지만 북적이는 식당가에서는 약간 떨어진 안전한 주택가였음. 보통 파리의 숙소들은 좁고 엘리베이터 없는 계단식 건물. 석회질 때문에 샤워필터도 필수. 우리 숙소는 에어비앤비. 1층이라 계단X. 화장실도 두 개. 새 건물이라 샤워필터 색깔 하나 변하지 않았을 정도로 깨끗. 라지에이터로 난방, 건조함은 감수. 그래도 이 정도면 훌륭.
4. 파리에는 동네마다 규모가 작고 생필품 위주의 프랑프리(franprix)와 고급마트격인 모노프리(monoprix)가 있음. 도착하면 가까운 마트 검색해서 장보기. 도착하니 밤이었지만 고풍스러운 건물들을 구경하며 걸으니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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