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하고 매력적인 파리에서
아침부터 가방을 앞으로 꽉 동여맨 우리는 버스를 잡겠다고 빵이 든 배가 출렁이도록 뛰고 있었다. 그날은 생트 샤펠, 노트르담, 이렇게 두 성당을 거쳐 셰익스피어 서점도 들렀다가 몽마르트 언덕도 가고 샹젤리제와 개선문도 가는 꽤 긴 하루가 될 예정이었다. 뭔가 파리스러움으로 가득찰 것 같아 신이 났다. 그런데 더 파리다운 게 뭔지 아는가? 버스가 갑자기 오지 않는 거다. 버스 시간이 멋대로 변경되는 건 예사고, 파업으로 인해 버스가 뚝 끊기기도 한다.
파리는 도도하다. 하지만 쉽게 다가오는 것들은 손에 넣었을 때 감동이 덜한 법. 그래서 상당히 불편하게 생겨먹은 파리는 상대적으로 더 매력적이다. 어떻게든 다음 정류장으로 후다닥 뛰어가 겨우 버스를 탔다. 중간에 주황색 띠를 두른 버스표 검표원들이 타기도 했는데 그럴 땐 나비고티켓을 당당히 보여주면 된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얻어터지기 전까진.” 마이크 타이슨의 말이 딱 맞는 하루였다. 나는 그날 저녁 꼬여버린 일정으로 얻어터지기 전까지 파리의 곳곳을 꿈꾸듯 즐기고 다녔다.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생트 샤펠. 고딕양식의 대표적인 유적지다.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많은 13세기 스테인드글라스를 보유한 이곳은 생각보다 작은 성당이었다. 하지만 꽉 찬 스테인드글라스 위로 햇빛이 투과되자 찬란하고 영롱하게 빛나서, 내가 본 그 어떤 성당보다 성스러워 보였다. 그 정교함과 완벽한 외관이 주는 위엄이 있었다. 원래 루이 9세가 모아들인 성물들을 보관하는 창고였고 정치적 의도로 쓰인 곳이라 프랑스혁명 때 많이 훼손되었지만 여러 번의 보수를 통해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왔다. 좁은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면 2층이 나오는데 자세히 보면 15개의 창문에 성경이야기와 중세 프랑스의 크고 작은 사건들이 그려져 있다.
내가 어릴 적 다니던 대구의 성당에도 성경이야기가 벽에 걸려있었다. 나무액자에 부조로 만들어 입체감을 준 투박한 작품들이었는데, 소박한 성당 내부를 감싸듯 두르고 있었다. 내가 처음 영세를 받고 영성체를 받은 곳이었다. 어린 나는 그 성당이 무척 크다고 생각했다. 아마 100년이 다 되어가는 그 고풍스러움을 거대하다고 느꼈던 듯하다.
나는 성당에 앉으면 눈물이 자주 났다. 어린애가 지은 죄가 뭐 그리 컸는지 두 손만 모으면 눈물이 났다. 혼자서 기도를 하다 주위를 둘러보면 벽에 걸린 십자가를 진 예수님 그림에 다시 마음이 무서워져 두 손을 땀이 나도록 꼬옥 모아 쥐었다. 엄마는 그런 나를 기특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엄마에게 성당은 오는 봄이었고 지는 가을이었다. 엄마는 고된 삶 속에서도 성당을 거른 적이 없었다. 엄마는 미국이나 파리는커녕 설악산의 단풍이나 순천의 갈대밭에 가 본 적이 있었을까? 엄마는 지금도 매일 성당에 나간다. 천국에 간 아빠를 위한 기도를 올리고 오빠의 삶이 평화롭기를 매일 기도한다. 웃기는 점은 나에 대한 기도는 입에서 잘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만큼 나는 엄마에게 든든한 존재인거다. 그런 거겠지? 언젠가 꼭 엄마와 함께 생트 샤펠에 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엄마에게 영상을 찍어 보냈다.
노트르담은 프랑스 고딕 건축물 중 최고 걸작이다. 850년에 걸려 지어진 프랑스인의 영혼을 담은 공간이기도 하다. 이곳이 2019년 큰 화재로 불타자 프랑스인들 뿐 아니라 전 세계가 눈물을 흘렸다. 전 세계에서 8억 5천만 유로 이상의 기부금이 모였고, 5년에 걸친 복원 끝에 2024년 12월 재개관을 했다. 나는 운 좋게 두 달 후인 그 날 노트르담에 들어갈 수 있었다.
노트르담은 단순한 종교적 건축물을 넘어 프랑스 역사를 품고 있으며,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의 꼽추’로 문학계, 음악계 등에 큰 영향을 주었다. 나만 해도 뮤지컬을 통해 노트르담을 처음 접했기에 처음 들어설 때 뮤지컬 ‘대성당들의 시대’ 넘버가 울려퍼지는 듯 했다.
노트르담은 재개관 후 하얗고 화려한 느낌으로 탈바꿈했다. 생트 라펠이 고전적인 느낌이었다면 노트르담은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것 같았다. 크기의 웅장함은 말할 것도 없고 끝없는 벽화들, 그랜드 오르간의 위용과 샹들리에는 마치 프랑스인들의 자부심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성당에 나가지 않은 지 꽤 오래 되었다. 몇 십 년을 냉담하고도 발을 들인 나를 노트르담은 편안히 받아주었다. 의자에 앉아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왜 나는 성당을 나가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걸까. 마음에 무엇이 걸려서 이러고 있는 걸까. 엄마는 “너는 걱정이 안 된다.”고 늘 말하지만 그 속에는 “너는 그렇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묻어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잘 살아왔을 테니까. 내가 이곳에 와 있는 게 다 엄마의 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마운 마음으로 노트르담에서 엄마에게 줄 선물을 골랐다. 하늘색 투명한 묵주였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는 엄마를 위해 촛불을 켜고 기도를 했다. 이러다 언젠가 엄마 덕에 성당도 다시 나가게 될 듯하다.
노트르담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이 있다. 나는 파리에 온 이후로 가장 설렜다. 헤밍웨이가 돈이 없어 가난한 시절 책을 무료로 빌려 읽고 대문호들이 살롱처럼 모여들었던 곳. 그들의 발길이 닿았던 곳을 내가 들어가 볼 수 있다니.
서점 안은 카메라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다. 오히려 좋았다. 한 발을 디디자 나무냄새가 가득했다. 목조건물 특유의 아늑하고 오래된 느낌이 났고 나무가 삐걱댔다. 눈을 감았더니 내 머릿속 시계가 초침을 반대방향으로 감았다. 잠시 옛날 문호들이 서서 책을 보는 모습을 상상했다. 눈을 뜨자 자랑스럽게도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진열되어 있었다. 순간 시계가 현실로 돌아왔다. 에코백과 작은 파우치들도 얼마나 예쁜지, 선물용으로 이것저것 집어 들었다. 둘째가 산 엽서는 우리 집 냉장고 옆에 붙어서 지금도 가끔 나를 그 곳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발목이 아픈 나는 2층을 올라가지 않았다. 1층만 실컷 구경하다 나와버렸는데, 2층에 올라갔던 첫째가 내려와서는,
“엄마, 여기 2층에 올라가지 않았던 걸 평생 후회하게 될 거야.”라고 말했다.
세상에, 내가 뭘 또 놓친 거지?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파리의 불편함을 익숙하게 지나쳐버린 대가였다. 그래? 파리에 다시 와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다음엔 2층을 올라가 봐야지.
자, 이쯤 되면 모두들 첫째 딸이 그렇게 극찬하고 빠져든 2층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할 듯 하다.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듣고 상상으로 더듬어보는 게 더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있다. 부디 이 서점에 가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다음 글이 그런 낭만이 되길.
♧ 화장실 tip과 줄서기 tip
1. 생트 샤펠은 화장실이 건물외부에 있다. 파리답게 작고 허름해서 줄을 서서 들어가야 할 정도이다. 노트르담에는 화장실이 아예 없다. 나에게는 버거운 파리다.
2. 노트르담 입장은 무료다. 홈페이지에서 예약하면 되는데 시간 맞춰 하는 게 꽤 어려웠던 것 같다. 대신 입장할 때 시간대를 정확히 보진 않는다. 늦었는데도 무사히 입장!
3. 셰익스피어 서점은 줄이 길기로 유명하다. 운 좋게 그날 우리는 바로 입장했다. 일찍 움직인 탓일까, 혹시나 줄이 길다면 바로 옆 셰익스피어 카페의 달다구리를 사서 입에 물고 기다려 보도록. 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천국이니 꼭 들어가 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