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파리에 와서 에펠탑은 보고 가야지

파리여행의 마지막 날(2)

by 소리글

그날 거기 선 사람들은 모두 다른 곳에서 왔지만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회색 구름을 곧이라도 뚫을 듯 높이 솟은 철탑 하나. 트로카데로 광장 근처에 들어서자 에펠탑은 그 위용도 당당하게 미끈한 자태를 드러냈다. 높은 건물 하나 없는 파리의 시가지에 갑자기 300미터가 넘는 거대한 철탑이 지어졌을 때 파리지앵들은 모두 흉물이라며 싫어했다고 한다. 사실 나 또한 그 어마어마한 크기에 눈앞의 풍경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으니 백여 년 전 사람들에겐 오죽했을까.

1889년에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맞이하여 파리는 만국 박람회를 개최하였고 이 박람회를 상징하는 기념물로 에펠탑을 건축하였다. 석조건물들로 유명한 파리에 갑자기 낯선 철탑을 세운다는 계획에 엄청난 반대들이 휘몰아쳤다. 예술의 도시인 파리의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역겹다는 의견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건축가 구스타브 에펠이 그 탑을 지을 때 막상 가장 신경 쓴 것은 디자인이 아니라 바람의 저항이었다고 한다. 그는 오로지 수학적으로 잘 계산된 튼튼한 탑을 짓기 위해 노력했다. 바깥 모서리가 가진 곡선은 그저 단순한 디자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 그가 이겨낸 건 바람뿐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 또한 프랑스에 와서 이렇게 에펠탑을 구경하기까지 참 힘들게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 표를 끊어놓고도 낫지 않는 몸뚱이에 ‘과연 내가 비행기를 탈수 있을까?’ 걱정을 했고, 결국 끝나지 않는 염증과의 싸움에 발열방석과 온갖 항생제를 쥐고 비행기를 타야 했으며, 그 와중에 장염에 걸린 아이의 간병까지 해야 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이 광장에 서서 나와 함께 에펠탑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이 자리에 함께 서 있는 걸까?’ 하는 답 없는 궁금증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모두들 개개인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파리로 여행을 오기도 했을 것이고, 파리가 그저 너무 좋아 없는 형편에 매달 월급을 꼬깃꼬깃 모아 비행기 표를 끊어 온 직장인도 있을 것이다. 그들 속엔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재수생활을 이겨내고 예비 대학생이 되어 신나게 파리로 떠나온 행복한 내 딸도 있었다. 어떤 사연이든 어떤가. 모두들 한 날 한 시에 에펠탑을 함께 쳐다보며 환호성을 지르고 있는 것이 인생의 묘미가 아닌가.


겨울의 에펠탑은 저녁이 되면 검은 철탑위로 은은한 주황색 불빛을 내뿜기 시작한다. 우리가 도착한 저녁 6시 무렵이 그랬다. 나는 탄성을 내질렀다. 그런데 큰딸이 하는 말이, 7시부터 매 정시에 5분간 에펠탑이 진한 체다치즈 색으로 점멸되는 쇼가 펼쳐진다는 게 아닌가. 유독 치즈를 좋아하는 딸 눈에는 그 색이 너무 예뻤나 보다. “엄마, 파리에 왔으면 반짝이는 에펠탑은 보고가야지!”라며 나를 꼬드겼다. 나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숙소에서 앓고 있을 둘째가 자꾸 눈에 아른거렸다. 에펠탑을 봤으면 됐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사진만 찍고 돌아서려했다. 그 때였다. 내 방광이 신호를 보냈다. 이 광활한 광장에 화장실 하나 없고, 지하철역에도 화장실은 없다는 걸 익히 들었는데 골칫덩이 과민성 방광이 도졌다. 큰일이었다.

파리에서는 화장실이 급하면 가까운 레스토랑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간단한 음료를 시켰다. 나는 뜯지 않은 에비앙을 손에 쥐고 창밖에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았다. 촉촉이 젖은 빗물들은 보도블록을 반짝거리며 채웠다. 나는 흐뭇하게 파리의 밤거리를 구경하다 일어나 화장실을 찾았다. 그러나 통 보이지 않는 화장실. 나는 지나가는 직원을 잡고 물었다. 그런데 그녀가 나를 흘깃 보더니 “Did you order here?”라고 퉁명스레 묻는 게 아닌가. 그 직원이 나의 개인사를 알 리도 없지만 꼭 그렇게 의심하듯 물어야 했을까. 나는 발끈했다. “Of course, I did!” 그러자 어깨를 으쓱하더니, “Downstairs.”한다. 나는 분노에 차서 아래층으로 후다닥 내려갔다. 아픈 발목 따윈 파리의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이미 재활을 끝낸 듯 내 발걸음은 쿵쿵거렸다. 이 불편한 파리, 이 퉁명스러운 파리같으니라고! 아픈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기에는 그들도 바쁘고 여유가 없었겠지. 그렇게 생각은 했지만 관광지에서 이방인이 화장실을 찾는데 의심하듯 아래위로 훑어볼 일이냔 말이다.


바깥으로 나오자 자연스레 7시가 되었고 나는 우여곡절 끝에 결국 반짝이는 에펠탑을 만나고야 말았다. 운명이 별건가. 나는 거대한 체다치즈색 에펠탑 앞에서 퉁명스러운 파리를 잊고 그만 활짝 웃고 말았다. 브이를 그리며 사진을 찍고, 버스킹을 하는 젊은이들의 노랫소리에 가슴이 설레고 있었다.

파리는 그런 곳이었다. 파리는 사랑스런 곳이었다. 그 시각 나와 함께 그 장소에 서서 그 순간을 즐기는 옆 사람들에게 인사를 나누고 싶었다. 사는 게 힘들진 않았냐고.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들 이곳까지 오느라 수고가 많았다고. 그래도 우리 오늘 밤은 이 사랑스러운 밤을 같이 즐기자고. 아무리 아파도 참 살만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웃기는 말로 ‘나 참 잘 살았네.’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그 반짝이는 불빛에 추위도 잊고 지난 몇 년 간의 투병에 마음까지 아팠던 여러 기억들을 태워버렸다. 그 정도로 에펠탑은 지난 시간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되다.

반짝이는 에펠탑


어디 나 뿐이었을까. 그 곳에 모인 전 세계 사람들도 온 마음을 담아 뭔가 기도하지 않았을까. 그 마음을 모아 하늘에 대신 기도하듯 은 에펠탑. 사실 에펠탑은 지난한 역사의 흐름을 거치며 파리의 명물이 되었다. 재밌는 예로 1940년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당했을 때 프랑스군이 승강기의 케이블을 끊어버리는 바람에 히틀러는 에펠탑을 걸어 올라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결국 땅에서 승전을 선포했던 독일. ‘프랑스는 점령했으나 에펠탑은 점령하지 못했다’는 말이 나왔다. 에펠탑은 점점 그렇게 프랑스인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갔다. 예전 에펠탑의 낯선 모습을 흉물스럽다고 말한 이들은 이 탑이 온갖 로맨틱한 영화의 배경이 되고 영국, 미국, 일본 등 다른 나라에서도 에펠탑 모양에서 영감을 입은 탑들이 생겨날 줄 상상이나 했을까. 인생은 그런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것. 나도 최선을 다해 살다보면 또 어느 날 이렇게 선물 같은 풍경이 다가와주지 않을까. 그래서 아픈 몸으로도 나는 여행을 멈추지 않는다. 언젠가 좋아지겠지. 내 건강은 ‘좋아졌다 나빴다’를 반복할 것이고 상황 따위는 중요치 않다. 어떻게 그날 내가 에펠탑 아래에 섰는지 떠올리면서 오늘도 나는 이 봄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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