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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래블러 Jan 22. 2023

새로운 시작, 까미노와의 첫 만남 #7

Ep7.│시작점인 생장에서 첫 부엔 까미노를 외치다.


밤을 지새워 달린 버스는

어느덧 오전 8시를 조금 지나 바욘에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오는 동안 버스가 정차하여 짐칸을 열 때마다

혹시 누군가 가방을 훔쳐가진 않을까 하는 걱정에 잠을 설쳤다. 

몽롱한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고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무사히 짐을 찾아 어깨에 둘러맸다.


이제 바욘에서 생장으로 가는 떼제베를 타야 한다.

기차 출발 시간은 11시 30분.

3시간가량이 남아있던 우리는 여유롭게

바욘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고자

먼저 근처 생트마리 드 바욘 대성당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의 마을은 따스한 햇살이 포근히 내려앉아

잔잔하고 상쾌한 아침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덕분에 몽롱했던 나의 정신은 금방 또렷해졌다.


다리를 건너고 시청을 지나 골목에 들어서니

골목 사이로 바욘 대성당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반한 우리는

마치 내기라도 한 듯이 빠르게 성당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생트마리 드 바욘 대성당으로 가는 길

아쉽게도 성당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근처를 방황하던 우리는 다시 중심가로 걸어 나왔다.


그러다 목적지를 찾지 못해 방황하던 우리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한 공원이 눈에 들어왔고 단숨에 그곳으로 향했다.

보랏빛으로 가득했던 공원은 다정해 보였다.

아침 햇살이 내려앉은 벤치에 앉아 충분히 햇빛을 머금은 우리는

아름다운 꽃들과 분수를 쳐다보며 실컷 여유를 만끽했다.


보랏빛으로 가득했던 아름다운 정원

그렇게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역에 도착하니 우리처럼 배낭을 메고

생장으로 가기 위해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이 나와 같은 길을 걸어갈까 생각하며 구경하던 중

옆에 있던 성당에서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의 까미노 영화가 시작되었고

그 분위기에 한껏 심취하기 시작했다.


시간은 어느새 훌쩍 지나가 드디어 기차가

천천히 역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기차가 너무 작았다.

순간 당황한 우리는 "저거 맞나? 아닌 것 같은데?"하며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빠르게 역무원에게 달려가 물어보니

이 기차가 맞으니 얼른 타라고 말했다.

재빨리 기차에 몸을 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지 얼마나 지나지 않아

기차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우리는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유난히 바깥 풍경의 계곡을 좋아하시던 한 아주머니께서

우리의 맞은편으로 다가와 앉으시더니 자연스레 말을 거셨다.


- "창밖 풍경이 너무 예쁘다. 너희는 어디서 왔니?"

- "저희는 한국에서 왔어요."

- "우와, 정말? 나 한국 가봤었어. 제주도랑 부산 다녀왔거든."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나신 아주머니는

어릴 적 공부를 위해 프랑스로 오셨다.

그렇게 살다 보니 자연스레 그곳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뒤 아이를 위해 살다 보니

벌써 5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고 했다.


아이의 뒷바라지를 다 하고 나니

이제는 자신을 위해 기차를 타고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오로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내가 생각한 멋진 어른이었다.


아주머니와 우리는 마치 10여 년을 알고 지내다가 오랜만에 만난 동창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이야기 꽃을 피웠고

함께 넋을 놓고 지나가는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았다.


생장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만난 아주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


그렇게 30여분을 달려 생장에 도착했다.


- "그럼 너희는 내일부터 까미노를 걷기 시작하는 거니?"

- "맞아요, 오늘은 좀 쉬고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려고 해요.

   아주머니도 내일 출발하세요?"


아쉽게도 다리가 아프신 아주머니는

까미노를 걷지 못한다며

좋은 여행이 되길 바란다는 아주머니의 마지막 인사와 함께

아쉬운 작별인사를 남기고

생장의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각자의 길을 떠났다.


까미노의 시작점인 생장 피에 드 포흐(Saint-Jean-Pied-de-Port)

기차역에서 내린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순례자의 여권이라 불리는 크레덴시알을 발급받는 일이었다.


순례자들이 까미노를 걸으며 마을에 있는 숙소인

알베르게에 하루를 묵기 위해서는

무조건 크레덴시알에 도장인 쎄요를 찍어야 하고

마지막 산티아고에 도착했을 때 이 길을 걸었다는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다.


그 외에도 까미노 길 위의 식당이나 카페에서도

쎄요를 찍을 수 있기 때문에

크레덴시알에 쎄요를 채워나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렇게 지도를 켜 순례자 사무실을 향해 걸어가는 도중

옆에서 익숙한 한국말이 들렸다.


- "좋은 길 되세요."


바욘 역에서 보았던 한국인 부부였다.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좋은 길이 되라는 의미의 "Buen Camino"를

서로에게 인사처럼 나눈다. 


그제야 진짜 우리가 까미노에 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긍정적인 기운이 솟구쳤다.

덕분에 이 길을 무사히 걷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감사합니다! 좋은 길 되세요, 부엔 까미노!(Buen Camino!)"

까미노 여정에서의 첫 부엔 까미노였다.

왠지 모를 설렘으로 가슴이 뜨거워지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무사히 순례자 사무실에 도착해 바닥에 앉아

잠시 쉬며 엄마와 영상통화를 마쳤다.

어느덧 점심시간이 지나 드디어 순례자 사무실의 문이 열렸다.

우리는 English로 적힌 자리에 앉아 설명을 듣고

2유로를 낸 뒤 크레덴시알을 발급받았다.

우리에게 설명을 해주신 직원분은 내일 걸을 길이

까미노 길 중 가장 높고 힘들 것이라고 예고했다. 


10킬로가 넘는 짐을 동키 서비스로 보낼까도 생각했지만

혹시나 짐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과 첫날인데

그래도 제대로 걸어야지라는 생각에

호기롭게 배낭을 메고 걸어가기로 했다. 

이후 그 결정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했는지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생장에서 가장 많이 묵는 숙소인 

55번 알베르게로 향했다.

벌써 알베르게 입구에는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순례자들이 줄을 지어 있었다.


혹여 자리가 없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다행히 알베르게의 베드는 넉넉했고

우리는 각각 101,102번 베드를 배정받았다.

가볍게 짐을 풀고 샤워를 마친 우리는

생장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마을은 순례자들과 관광객들로 활기를 더하고 있었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연신 감탄을 내뿜었다.


마을 구석구석 구경을 마치고는

식당에서 빵과 커피를 마시며

내일 길을 걸을 때 마실 물을 샀다.


노곤함이 밀려올 때쯤 다시 알베르게로 올라오자

뒷산의 산책로가 눈에 들어왔다.

초록의 울창한 나무들로 둘러싸인 계단을 어느 정도 올라갔을까.

마을의 풍경이 한눈에 보였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한참동안 사진을 찍고 조금 더 올라가자

이미 나무그늘 아래 자리 잡고 계신

한 어르신이 눈에 들어왔다.

어르신은 들고 있던 책 한 문장을 읽고 앞에 펼쳐진 숲을 바라보고,

또다시 책을 읽고 풍경을 바라보고를 반복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들떠있던 마음에는

어느새 고요함과 평화로움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다음 여행에는 꼭 책을 챙겨가리라 다짐한 나는

구경을 마치고 알베르게로 돌아와 낮잠을 청했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해

파란 하늘이 보랏빛으로 물들어갈 무렵

손에 공책과 볼펜을 챙겨 아까 그 뒷산으로 향했다.


마을이 한눈에 잘 내려다보이는 벤치에 앉아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건 일상생활에서 뿐만 아니라

여행을 와서도 필요했다.


아름다운 경치와 건축물을 보며 힐링하고

벅찬 감동을 느끼기도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무엇보다도 차분하게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했다.


나는 그렇게 내일부터 펼쳐질 나의 여정에서 일어날 일들과

마주칠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설렘을 가득 써 내려갔다.



말에는 힘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하루 평균 20km 정도를 걷는 힘든 여정 속에서

서로를 응원하는 말 하다디는 정말로 힘이 났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오늘 하루 설렘과 행복한 일들로 가득 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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