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X의 헌신>을 읽고
0과 1. 진법의 세계인 수학. 수학에서 1과 0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없다. 0과 1의 이분법은 자연 세계를 연구하는 과학에서도 자주 사용된다. 기다, 아니다로 결론짓는 이분법적인 논리가 필요한 학문에서 0과 1은 늘 명쾌하게 딱 떨어지는 값을 준다.
하지만 논리의 영역 너머, 감정의 영역에 있는 명제는 0과 1로 설명이 불가능하다. 특히 여러 감정 중, 사랑이라는 방정식은 옳고 그름만을 논하는 이분법으로 풀 수 없다. 수많은 철학자부터 현대의 연애 상담 전문가들도 사랑에 대한 단 하나의 정답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볼 수도 없고, 만져지지도 않는 이 추상적인 형태의 감정은 비논리적이며, 사람을 비논리적으로 만든다.
이 책에는 0과 1의 세계에 사는 천재 수학자와 물리학자가 등장한다. 하지만 0과 1의 정반대 지점에 있는 사랑이라는 감정 때문에 수학자는 살인을 은폐하는 방정식을 만들고, 물리학자는 그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아이러니에 빠진다. 천재 수학자 ‘이시가미’는 옆집에 사는 ‘야스코’의 살인을 덮어주기 위해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든다. 삶의 의미를 잃고 죽음만을 생각하던 그에게 야스코는 그가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 주는 사랑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정말 깨끗하고 아름다운 눈을 한 모녀였다. 그때까지 그는 어떤 아름다움에도 눈을 빼앗기거나 감동한 적이 없었다. 예술의 의미도 몰랐다. 그러나 그 순간, 모든 것을 이해했다. 수학의 문제가 풀려서 느끼는 아름다움과 본질적으로 같은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중략) 하나오카 모녀를 만난 후로 이시가미의 생활은 완전히 바뀌었다. 자살충동은 사라지고 살아가는 기쁨이 일었다. 두 사람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세계라는 좌표에 야스코와 미사토라는 두 개의 점이 존재한다. 그에게는 그것이 기적처럼 여겨졌다.” (p.392)
그녀의 불행을 바라지 않는 이시가미는 그녀를 위해 헌신한다. 책의 제목인 용의자 X의 ‘헌신’은 그의 사랑을 치환한 값이다. 이시가미가 만든 알리바이를 파헤치는 물리학자(유가와)는 이 값을 찾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는 논리를 통해 사물을 판단하는 물리학적인 방법으로 사건을 접근한다. 하지만 그는 쉽사리 이시가미가 만든 알리바이를 깨질 못한다. 천재 수학자 이시가미가 만들어놓은 수학 공식 같은 알리바이에는 0과 1이 아닌 다른 것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수학적이지 않은 요소인 변수 X, 그 X는 바로 사랑이다. 논리의 영역 너머 감정의 영역에 이분법을 적용하려 들면 그것은 늘 우리를 오도하거나 배반한다. 논리적으로는 증명할 수 없던 알리바이가 ‘사랑’이라는 X값을 넣자 완벽하게 증명이 된다. 유가와가 이시가미의 감정을 눈치채자 사건의 진실은 점점 가까워진다.
논리적, 이성적 판단을 잘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학문인 수학. 그 학문을 업으로 삼은 남자가 사랑에 빠져 감정적인 판단을 한다.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희생’과 ‘헌신’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것마저도 그에게는 하나의 수학 공식처럼 당연한 것이었다. 그의 차갑고도 뜨거운 감정은 추리소설을 가슴 절절한 멜로로 외양을 확장시킨다. 천재 수학자가 만든 세상에서 가장 비논리적인 수학 공식을 당신도 만나보길.
* 반디앤루니스 서평단 펜벗 10기 활동의 일환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글은 링크를 통해 확인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