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서랍 Sep 06. 2022

진짜 이야기

스스로를 내려놓지만, 보잘것없게 하지 않는 이야기

약 2주 정도 완성된 글을 하나도 쓰지 못했다. 너무 피곤한 날들의 연속이었고 업무가 많아 하루하루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는 둥 핑계가 수없이 이어지면서 어떠한 글도 다 쓰지 못했다. 그러자 어제는 내 글을 올리는 플랫폼에서 알림 메시지가 왔다. “꾸준함이 재능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작가님의 시선이 담긴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세요.”     


메시지를 받아든 순간 누군가에게 독촉을 들을 정도로 글을 오랫동안 쓰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편은 쓰겠다는 다짐은 벌써 잃어버린 게 아닐까 하는 자책감도 들었다. 그저 일정 기간 안에 글을 올리지 않은 이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일 테지만, 누군가에게 꾸준하지 못했다는 책망을 듣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사실 나는 글을 쓰고 있었다. 하루에도 어떤 글을 써볼지 여러 생각을 했다. 그리고 온종일 머릿속을 떠돌던 생각을 모아 글자들로 정리하려 애를 쓰기 시작했지만, 마침표를 찍지 못한 공허한 단어들의 연속으로 남았다. 그렇게 남은 문장들은 여러 개였지만, 이 문장들은 결국 모두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사라졌다.  

    

글쓰기가 너무 어려웠다. 세상에는 이미 좋은 글이 끝없이 많은데, 나는 왜 단어들을 엮어 문장을 만들고 어떤 이야길 하고 싶은 것인지 스스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글을 쓰다가도 단어들 사이에서 길을 잃어 끝으로 향하지 못했다. 해법이 필요했다.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다른 사람이 써둔 글을 읽는 것이었다. 소설 태백산맥을 쓴 조정래 작가는 “잘 쓰려면 잘 읽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렇기에 나는 예전에 읽었지만 잘 기억나지 않았던 책들을 하나씩 꺼내 다시 문장들을 읽었다. 내가 과연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 찾기 위해서.     


아주 오랜만에 읽은 책은 공지영 작가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나영과 강동원이 나왔던 영화의 원작 소설이다. 세 번이나 자살 시도를 한 유정과 사형수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윤수가 만나 얘기를 나눈 시간을 정리한 이야기다. 몇 년 만에 다시 펼친 이 책에서 눈길이 간 것은 두 주인공이 ‘진짜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이었다.     


사실 유정과 윤수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서로에 대한 선입견으로 으르렁대기 바빴다. 어색한 시간을 지나오던 중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연 두 사람은 각자의 진짜 이야기를 꺼내며 서로에게 조금 더 가까워진다. 왜 자살 시도를 하게 된 것인지, 왜 감옥에 오게 된 것인지와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말이다. 상황이 만든 가면이 아닌 진짜 자신을 보여주는 이야기를 시작하자 두 사람은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기 시작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내가 글을 끝맺지 못하는 이유는 진짜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고 있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어떤 주제를 정했지만, 그 주제를 가지고 글의 결론을 내야 할 시점이 오면 어느샌가 나는 자꾸만 어떤 의미를 주거나 억지로 울림을 만들려고 드는 모습을 보면서 이건 진짜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문장을 쓰곤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훈계할 정도로 훌륭한 사람이 아니다. 어떤 가르침 혹은 깨달음을 주기 위해 글을 쓰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내게 글을 쓰는 일은 나의 진짜 이야기를 끌어내면서도 조금은 재밌고, 읽을만한 문장들을 엮는 작업이었다. 그렇기에 글을 완성하지 못했던 시간은 진짜 이야기를 끌어내는 데 실패한 순간들로 정리할 수 있다.     


진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내가 시시한 사람임을 계속해서 인정해야 한다. 내가 나름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어느새 “괜찮은 내가 생각하기에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이렇게 해야만 해”라고 가르치려 들곤 하기 때문이다. 그저 조금 더 예민하고, 이따금 불면증이 찾아와 밤에 깨어있는 시간이 많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을 상기하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그러고 나면 조금은 어깨에 힘을 빼고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남에게 할 수 있다. 모든 일에서 일방적인 악인은 없다는 점이라든지, 이별은 너무나 힘들다는 이야기 같은 것들 말이다. 그리고 글이 맘에 들었다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조금은 진짜 이야기를 하는 일에 성공했다는 뿌듯함을 느낄 뿐이다.     


자신을 많이 내려놓지만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만들지 않으며 하는 진짜 이야기는 너무나 어렵지만, 꾸준히 노력해보려 한다. 부디 이 글을 읽고 나의 진짜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기대하는 사람이 있길 작게 소망해본다. 

이전 12화 미결(未決)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