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탕달 신드롬’이라는 말이 있다. 정말 뛰어난 예술 작품을 접했을 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몸이 흔들리는 증상을 설명하는 단어다. 처음 이 단어를 마주했을 때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예술 작품이 감동적이거나 슬퍼서가 아닌 단순히 아름다워서 어지럽고 감정의 동요가 온다는 말은 와닿지 않았었다. 그러나 거짓말처럼 아름다운 것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순간이 찾아오고 나서야 스탕달 신드롬이라는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나의 첫 직장은 연예기획사였다. 스물여섯 살에 처음 맡았던 일은 A&R이었다. A&R은 담당한 아티스트가 만들어 온 음악 이외의 것들을 모든 맡아 하는 직업이다. 그렇기에 나의 주된 업무는 아티스트가 만들어온 음악을 포장해 더욱 빛나게 하는 일이었다.
이런 일을 하며 첫 직장에서 1년을 보내고 난 뒤, 나는 도망치듯 퇴사를 결정했다. 그리고 2년이나 되는 쉬는 기간 동안 나는 퇴사를 했던 것을 끝없이 후회했다. 문자 그대로 도망치듯 나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동안은 좋아했던 밴드의 공연도 보지 못했었다. 공연장에 있는 모든 것들이 나에게 도망자가 부끄럽지도 않냐고 묻는 듯했기 때문이다.
긴 공백 이후 나는 다른 일을 시작했고, 조금은 떳떳해진 마음으로 공연장을 다시 찾았다. 그리고 공연장에서 나는 시작부터 앵콜까지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사람들 모두가 소리치며 손뼉 치는 신나는 곡에도 눈물이 글썽이는 자신에게 되물었다. “너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울었던 이유는 모르겠다. 다만 너무나 고통스럽고 어지러웠던 것만이 기억에 남았다.
그렇게 고통스럽게 눈물을 쏟아냈던 이유를 알고 싶어 마음속을 끝없이 들여다봤다. 어쩌면 마음 한구석에 여전히 자리한 미련이 만들어 낸 눈물이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도망치듯 떠나온 것에 대한 미련이 아직도 나를 뒤흔들고 있다면, 서른 살을 넘어선 지금의 내가 스물일곱 살에 퇴사를 결정하던 나에게 이제는 괜찮다고 말해줘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내가 공연장에서 끝없이 눈물을 쏟던 것은 무대 위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아름다움이 뿜어내는 빛에 태양을 마주한 뱀파이어처럼 타들어 가는 기분이 이었기에 나는 어지럽고, 가슴이 아팠다. 이 감정을 마주하고서야 나는 사전에서만 봤던 스탕달 신드롬이라는 단어를 체감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사람을 뒤흔들고 울릴 정도로 아름다운 것은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 사전적 정의를 내릴 수 없겠지만, 아마도 강렬한 햇살 같은 그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낮 동안 태양이 뿜어낸 빛을 담아두었다가 어두운 밤에 사람들에게 다시 이를 전달하는 존재가 별(Star)이고, 이 말이 대중에게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이를 지칭하게 된 것은 그저 우연이나 말장난은 아닐 것이다.
다시 돌아가서 아름다운 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던 때는 묘한 공통점들이 있었다. 그건 바로 내가 스스로 빛나지 못하고 길을 잃고 있다고 생각했던 때였다. 일을 하던 중 돌아가는 톱니바퀴가 된 기분이 들거나 당장 내년의 내가 있을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둠 속에 있을 때 나는 아름다운 그 무엇을 보고 끝없이 울었다. 아마도 이건 망망대해에서 등대를 마주한 선원이 느낀 감정이 아니었을까 가늠해보곤 한다.
아니면 첫 직장에서 고군분투했던 내 모습, 신곡 데모를 처음 들어보며 가슴 설레던 나의 모습이 이제는 다시 닿을 수 없는 아름다운 무엇이었음을 깨닫기에 흔들렸던 게 아닐까. 빛나는 이들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갔고, 함께했던 순간이 이제는 돌아올 수 없으니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내게 아름다운 사람들은 늘 길잡이 별처럼 나를 이끌어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무대 위의 별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따뜻한 온도와 빛으로 나를 이끄는 수많은 아름다운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다시 작은 욕심을 부려본다.
부디 내가 누군가에게는 작은 별 하나가 될 수 있기를, 그 사람에게는 나도 아름답고 빛나는 존재이기를 잠시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