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영원으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라는 사진작가가 한 말 중 아마도 가장 유명할 문장을 처음 마주했을 때 막연히 멋지다고 생각했었다. 사진을 통해서 흘러가 버리는 순간을 영원의 영역으로 옮겨갈 수 있다는 말이라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저 문장을 본 뒤 나는 정말 오래오래 남기고 싶은 그 무엇을 사진으로 남기려는 버릇이 생겼다. 많은 눈이 내리는 겨울밤과 봄볕에 반짝이는 벚꽃을 마주하는 순간이면 나는 집에서 카메라를 들고 나가곤 했다.
그렇게 영원의 영역으로 보낸 순간들은 때론 그날의 공기와 지나가던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를 불러올 수 있도록 하는 도구가 되곤 했다. 순간을 영원하게 붙잡아 둘 수 있다는 매력에 빠져든 나는 자주 사진을 찍곤 했다. 하지만 사진 속 영원함은 사실 시간의 박제일 뿐, 결국 그 무엇도 영원의 영역으로 보내지 못했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다.
우연히 클라우드를 정리하던 중 스쳐 간 수많은 사람과 함께 찍은 단체 사진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사진 속 사람들은 모두 웃고 있었지만, 이제는 다시는 보지 않을 정도로 크게 싸운 사람과 어떻게 살고 있는지조차도 더 이상 알 수 없는 이들도 있었다. 분명 그 사진을 찍을 때는 “10년 뒤에 이 사진을 보면 뭉클할 거 같아”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결국 함께 사진을 보며 어떠한 회상을 하는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 됐다.
더 이상 단체가 아닌 단체 사진을 본 뒤 사진은 어쩌면 시간을 박제해두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살아 숨 쉬는 그 무언가가 아닌 단지 한순간에 멈춰서 더 이상 과거도 미래도 없는 정지한 한 대상과 같았으니까. 이어 늘 가지고 있던 영원에 대한 욕심이 어쩌면 집안 가득 박제한 동물들을 채워 넣은 사람의 마음과 같다는 생각으로 번졌다. 그리고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말은 어쩌면 ‘(현재와 미래에도 영향을 줄)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말이 아니었을지 보이지 않는 괄호 속을 채워보곤 했다.
영원한 것이 없다면 지금까지 가졌던 욕심이 다 헛된 무언가였다면 지금 마주하는 행복함은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하곤 했다. 영원하지 않지만, 잠시라도 행복함을 붙잡아 두고 싶은 욕심은 모든 이의 것일 테니 말이다. 순간을 박제하지 않고 나중에 꺼내어 볼 수 있게 보관할 방법은 없을지 궁금했다. 그렇게 난 미술관에서 마주한 한 그림을 보고 해답이 될 수 있을 무언가를 찾았다.
심사정의 ‘삼일포’라는 그림이 있다. 심사정이라는 조선시대 화가가 금강산을 사는 동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방문한 뒤 그린 그림이다. 그림 속 금강산은 마치 신선의 세계 같았다. 그리고 그림에 찍힌 하얀 점들은 마치 눈이 내리고 있는 금강산을 표현한 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 그림이 처음 완성됐을 때는 하얀 점은 없었다. 그림에 남겨진 수많은 하얀 점은 바로 벌레가 그림을 조금씩 갉아 먹어 남긴 흔적이었다. 신기하게 그림을 보던 중 큐레이터의 설명이 들렸다.
“이 그림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벌레가 갉아먹은 자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전문가들은 세월의 흔적 또한 삼일포의 일부로 두기로 했습니다.”
큐레이터의 짧은 설명은 계속 머리를 맴돌았다. 아름다운 그 무엇을 잡아두는 일은 박제가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도록 내버려 두는 일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나의 일상은 미술품이 아니기에 복원할 수는 없지만, 남기고 싶었던 그 무언가는 지키면서도 시간의 흐름과 함께해야만 더 아름답다는 말 같았다.
시간의 흐름 속에 붙잡고 싶은 그 무언가를 지키려면 결국 ‘좋은 안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 순간을 잘 마쳐야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가져갈 아름다움이 남으니 말이다. 마지막이 악몽으로 남는다면 시간의 흐름 속에서 기억은 숙성이 아닌 부패할 테니까.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자주 잊어버리지만, 가끔 떠오르는 날이면 지금 내가 소중히 여기는 그 무엇들을 어떻게 시간의 흐름 속에 더 아름답게 남도록 맡길 수 있을지 고민한다. 꺼내어 볼 때마다 나를 울게 하는 기억이 아닌 가슴 벅찬 선물로 남길 바라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소중히 여기는 것들과 어떻게 좋은 안녕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 찾지 못했다. 그저 가늠해보는 방법은 안녕의 순간이 찾아오면 눈물을 흘리지 않고 조금은 무덤덤하게 맞이하거나 아니면 떠나가는 그 무엇의 행복을 빌며 내 삶 속 소중한 것의 한 챕터가 끝났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한 번 더 솔직히 글을 더 쓰자면, 영원에 대한 욕심은 버리고 있지만 오래오래 소중한 것을 지키고 싶은 마음은 그대로 남아있다. 아직도 내가 가진 어느 것도 떠나지 않길 바라며 안녕의 조짐이 보이면 불안해하는 마음도 그대로 남았다. 아마도 좋은 안녕을 할 방법을 찾는 일은 나의 평생 숙제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