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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랍 Jun 30. 2022

사탄이 아니야

“이건 누구 잘못이라 생각해?”

인간관계 혹은 일터에서 마주하는 이 질문에는 항상 많은 고민이 뒤따른다. 처음에는 정말 잘못한 사람이 누구인지 판단하는 것에서 어느 순간 내가 정말 이 문제의 잘잘못을 분류할 수 있을 정도의 사람인가 되묻는 상황에 이르곤 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실시간으로 판사가 되곤 한다. 뉴스에서 어떤 사건을 보고 혀를 찰 때, 드라마를 보다 주인공이 악역에게 시련을 겪을 때, 친구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사람을 판단할 때 등등...


 


결국 우리는 하나의 결론을 내리곤 한다. 조금이라도 나와 거리가 먼 상대는 죄인이 되고, 나와 가까운 사람에게 해를 끼치고 뉘우칠 줄 모르는 악당이 된다. 그러면서 우리는 “세상엔 나쁜 놈이 너무 많아”라는 말을 반복한다.


 


반대로 우리가 보이지 않는 법원에 오르는 피고인이 될 때도 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놓여 대중교통이 늦어져 지각했을 때, 내 말의 의도를 오해한 상대에게 본뜻은 그게 아니었음을 설명할 때, 내가 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 남에게 설명할 때는 판사의 자리에서 내려와 무죄를 호소하는 억울한 피고인이 된다.


 


그러나 대개 피고인의 호소는 판사에게 먹히지 않고, 오히려 “도둑이 제발 저린다”와 같은 말을 듣고 항변하길 멈춘다.결국 우린 유죄판결을 받아 ‘매일 늦는 사람’, ‘말 이상하게 하는 사람’, ‘이상한 사람’ 등의 꼬리표를 달게 된다.


 


꼬리표를 받아든 순간 우리는 레미제라블에 나온 장 발장이 이런 기분이었을지 상상해보지만, 이 법정에서는 항소할 방법이 없기에 억울함을 뒤로 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죄인으로 남는다.


 


인간관계 속에서 이와 같은 법정에 출두하거나 판사가 되는 일의 반복은 뉴스에 나오는 정치인과 기업인을 판단할 때도 벌어진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과 대립하는 당의 구성원은 나라를 악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으려는 사람이 되곤 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기업과 경쟁하는 회사는 어떻게든 사람들에게 비합리적인 소비를 부추겨 돈을 버는 존재로 남는다.


 


이처럼 판사의 법복을 입었다가 죄인의 수형복으로 갈아입기를 반복하던 것에 지쳐갈 때 즈음 생각의 뿌리를 바꾸게 해준 문장을 만났다.


 


“우리는 선한 약자를 위해 약한 강자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시시한 약자를 위해 시시한 강자와 싸우는 것입니다.”


 


최규석 작가의 웹툰 ‘송곳’에는 위와 같은 대사가 나온다. 이 말은 노무사로서 기업의 부당한 해고에 저항하는 구고신이라는 캐릭터가 도덕적인 문제를 고민하던 주인공에게 던지는 일침이다.


 


선과 악의 대립이 아닌 시시한 두 주체들의 싸움이라는 것. 이것이 상대는 사탄이 아닌 시시한 사람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이 생각이 머릿속에 뿌리를 내린 뒤에야 나는 일상의 법정에서 판사와 죄인이 되는 일의 반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일상의 법정이 꾸려지면 변호사의 자리에 서기 시작했다.


 


“어쩜 쟤는 저럴 수 있을까? 생각이란 게 없을까?”라는 판사의 질문에 나는 “한 번만 더 생각해봐 지금 쟤는 사탄이 아니라 사람이야”라는 말로 판결을 미루고 조금 더 생각해보도록 재판을 질질 끌곤 한다.


 


물론 세상에 나쁜 사람은 정말 많다. 남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도 정말 많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남의 고통을 이용하는 악인들도 매일 같이 늘고 있다. 이들은 정말 현실의 법정에 서서 글로 쓰인 법으로 처벌받아 마땅하다.


 


그렇지만 우리가 일상 속 법정에 세우는 이들은 조금은 시시한 사람들일 것이다. 단순히 잠을 못 자서 혹은 예상치 못한 소비에 허전해진 통장 잔액으로 살아야 할 날이 많아서 등등의 이유가 법정에 선 피고인의 행동의 원인일 수 있다.


 


반대로 일상 법정의 판사 또한 어제 본 드라마의 악역이 미워서, 나에게 미운 짓을 했던 그 사람이 생각나서, 나였다면 안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에 빠져서 법정 최고형을 피고인에게 선고할 수 있다.


 


우리는 시시한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너그럽게 함께 가야 한다. 법정에서 마주하는 모든 이들에게 법정 최고형인 관계 단절형을 내린다면 어느 순간 우리는 더 이상 함께할 사람이 없는 외로운 존재들이 될 테니까.


 


조금만 더 우리가 상대에게 자비로워진다면, 외로운 생일 대신 기프티콘이라도 하나 더 받을 수 있으리라는 시시한 결론을 내려본다. 오늘의 판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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