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온 선물
요즘 나는 아침마다 문을 열어젖히며
새 공기를 들인다.
베란다 난간에 걸린 햇살은
늘 처음 본 얼굴처럼 상큼하고,
화분의 화초들도 하루 만에
자란 것처럼 싱그럽다.
오늘도 살아 있네?”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다가 혼자 웃는다.
이 정도면 꽤 건강한 농담 아닌가.
이제야 비로소 알겠다.
삶은 나를 기다려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웃어주길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어릴 적, 해 질 녘의 골목은 우리의 작은 우주였다.
숨바꼭질은 그 우주를 흔들어 놓는 가장 짜릿한 놀이였고
어둠이 골목 끝에서 스멀스멀 올라오기 전까지
우리는 생명이 달린 것처럼 숨고 찾았다.
누군가는 담장 뒤로 숨어들고,
누군가는 계단 밑에 코를 묻고 숨죽였다.
그런데 한 아이는 집으로 들어가 숨었는데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술래는 그 아이 하나를 찾지 못해 동네를 세 바퀴는 돌고, 마침내 지쳐 외쳤다.
“못 찾겠다, 꾀꼬리!”
그 외침은 어린 시절의 웃음으로만
남아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그 말은 내 가슴 가장 깊은 곳에서
비로소 신음처럼 터져 나왔다.
⸻
남편이 먼저 떠난 날부터
내 삶은 누군가 갑자기 전등 스위치를 꺼버린 방 안 같았다.
길었던 목회의 동행이 멈추고,
남편이 있던 자리에 울컥 솟는 빈자리,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데
결국 닿지 않는 그 허공…
나는 무덤 앞에서 혼자 남겨진 사람처럼
하루하루를 걸었다.
삶은 느닷없는 빈자리를 내게 남겨두었다.
내가 기댈 곳이 사라지니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흔들렸다.
나는 인생의 술래가 된 줄 알고
부지런히, 또 부지런히 찾아다녔다.
의미를 찾고,
앞날을 찾고,
건강을 찾고,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몸도 예전 같지 않고,
앞날은 자꾸 안개처럼 밀려오고,
나를 필요로 하는 자리도 줄어들었다.
살아야 할 의미를 찾는 일이
어쩌다 이렇게 어려워졌을까.
나는 그 답을 찾겠다고
혼자서 술래처럼 뛰어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들은 한 설교가
내 숨어 있던 마음을 깨웠다.
목사님이 단상에서 갑자기 이러셨다.
“사람은 자기 힘으로 무엇이든 해보겠다고
인본주의에 빠져 허우적거립니다.
그러니 길을 못 찾지요.”
나는 순간 움찔했다.
어, 내 얘긴데요?
속으로 대답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목사님은 천천히 말씀을 잇는다.
“신본주의로 돌아오십시오.
하나님께 고백하십시오.
‘못 찾겠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그러면서 덧붙이셨다.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도다”
(시 34:10)
이 성구가
마치 오랫동안 잠겨 있던 내 마음의 문고리에
살포시 걸쇠를 여는 소리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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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들으며
문득 떠오른 장면이 있다.
친정아버지가 생전에 종종 하시던 말.
“길을 잃으면, 지도책을 펴지 말고
일단 멈춰라.
멈추면 길이 보인다.”
그땐 몰랐다.
아버지가 말씀하신 ‘지도책’이
바로 내 힘, 내 지혜, 내 계획이었음을.
서둘러 펼치는 지도책보다
멈춰 서는 용기가
더 정확한 방향을 알려줄 때가 있다는 것을.
나는 그제야 알았다.
‘아, 내 방황은
초점이 흐려서가 아니라
너무 열심히 찾느라 생긴 문제였구나.’
⸻
사실 나는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이었기보다
‘덤의 생’을
조금이라도 의미 있게 살고 싶었다.
오늘이라는 하루를
값지게 쓰고 싶었고,
누군가에게 작게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그 마음이 깊을수록
현실을 향한 기대도 커져
자꾸 실망과 부담이 찾아왔다.
술래잡기에 지친 아이처럼 소리치고 ,
주저앉고 싶었다.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하늘만 응시하던
그 옛날처럼.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엎드렸다.
"못 찾겠어요 하나님!
어디가 길인지,
무얼 해야 이 소중한 시간을
가장 잘 사는 건지,
어떻게 살아야 잘살았다고
주님이 기뻐하실지."
그 고백을 드린 후,
불안은 조금씩 걷히고
걱정은 힘을 잃고
내 마음에는 오랜만에
잔잔한 평온이 찾아왔다.
이 고백은 마치
세차게 불던 바람이 잦아들고
잔잔한 호수 위에
햇살이 내려앉는 순간처럼
내 마음을 차분하고 환하게 만들었다.
폭풍우 어둠은 걷혔다.
생명과 기한은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길 되신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물 흐르듯 따라 걷기로 했다.
⸻
그리고 놀랍게도
삶이 조금씩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새싹 돋는 모습을 보며
괜히 흐뭇해지는 내 모습,
성경 한 구절에
가슴이 따뜻해지는 내 마음,
그리고 어느새
젊은 날처럼 입가에 번지는 미소.
피천득 선생의 말처럼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라고 말할 수 있는 마음이
나에게도 다시 생겼다.
가벼워졌다.
살 만해졌다.
아니, 살고 싶어졌다.
⸻
오늘도 창가의 햇살과 화초의 웃음,
그리고 맑은 공기와 아침을 맞이하며
주님께 속삭인다.
“주님,
이제는 압니다.
못 찾겠다 꾀꼬리 - 외치는 순간,
주님 먼저 뛰어오신다는 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