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 걸린 기억
선물에 대한 기억 중
하나는
내 목회사역의 흑역사다.
목에 걸려
넘어가지는 않았지만
삼켜지지도 않아
오래 남아 있는 기억이다.
우리 주일학교 여교사 중
한 분은 집사였다.
성격상 부끄럼이 없고,
초등학교 남매의 엄마였다.
율동을 맡아
아이들 앞에 서는 일을 잘했다.
그 집은 늘 바빴다.
소를 키우고,
인삼농사와 과일농사를 지었다.
남편은 고급 기술을 가진 목수라
신축 현장마다 불려 다녔고,
농사일은 주로 아내 몫이었다.
그래서
주일학교엔 늘 늦었다.
분반 수업에야
들어오는 날이 많았다.
나는
주일학교 전반을 맡은 교감이었다.
어느 주일,
시어머님이 집에 와 계셨고
그날 예배 사회는
그 집사님의 순서였다.
예상대로
아이들은 먼저 와
예배당 안을 뛰어다녔고
사회자는 보이지 않았다.
다른 교사를
갑자기 세울 수도 없었다.
그럴 때마다
순서가 없는 내가
예배를 인도했다.
‘좀 맡은 순서만이라도
지켜주지…
다들 바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다고…’
아쉬운 마음으로
1부 예배를 마치고
나는 사택으로 내려왔다.
어머님을 모시고
어른 예배를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현관에 들어서자
양동이 하나가 놓여 있었다.
들여다보니
거뭇거뭇 색이 변하고
물기가 흥건한
복숭아가 가득했다.
“이게 웬 거예요?”
“조 집사님이 가져왔어.
어머님 드시라고.”
그 순간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걸 가져오느라
주일학교 사회도 못 지키고
지각했다는 생각,
교육관 앞에 두면
내가 가져올 텐데
굳이 사택까지 와
주일 아침의 긴장을
흔들었다는 생각.
대체
무엇이 우선인 걸까.
그날 예배를 마치고
사택으로 돌아와
나는 결국
악한 감정의 노예가 되고 말았다.
현관에 있던 양동이를
마당으로 던져버렸다.
이미 물컹하던 복숭아는
으깨져
사방으로 흩어졌다.
뒤늦게
차를 몰고 가던 그 집사님이
그 장면을
보고 말았다.
남편은
어머니 보실까 봐
급히 정리했다.
다음 날
우리는 집사님을 찾아가
사과했다.
나는
복숭아가 아니라
집사님이
우선해야 할 것을
모르는 것 같아서
화가 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동안 쌓였던
여러 불만이
한꺼번에 터진 것이었다.
집사님은
담담히 받아주셨다.
그러면서 말했다.
“사모님,
우리 복숭아는 원래
물이 많은 품종이에요.
가족 먹으려고
약도 안 치고 키워서
벌레 먹은 게 많지만
어제저녁에 따 두었다가
성한 것만 골라온 거예요.”
할 말이 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다짐했다.
어떤 선물이든
그 물건보다
먼저
마음을 보자고.
그 후로
그분의 어떤 애경사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분은 권사가 되었고
재정을 맡아 섬겼다.
우리는
퇴임하고 떠날 때까지
속을 다 내놓는
막역한 교우로 지냈고,
지금도
서로 소식을 전하며
기도를 부탁하는 사이다.
그래서다.
내가 지금
이 교회에서
교역자들을 섬길 때마다
나는
그때 받았던
그 선물의 마음을
뼈에 새기며
선물을 고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