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쯤은 창작이 메인이고 싶었습니다
️ 서울 3일, 인제 4일
강원도 인제에 오면서 알게 된 단어가 바로 <3도 4촌>입니다. 보통은 은퇴를 목전에 둔 사람들이 기존의 삶과 새로운 삶 사이에서 전환기를 가질 때 쓰는 용어라고 하는데요. 은퇴하기엔 너무 이르고, 청춘이라기 하기엔 결코 가볍지 않은 나이인 제가 모아둔 돈도 없이 (어떻게, 감히, 덥썩) 시골에서 살아보겠다는 선택을 했을까요?
온전히 창작자로 살아 보겠다고 결심한 지 2년이 되었습니다. 햇수로 따지면 20년도 넘게 붙잡은 꿈이지만, 늘 생계를 위해 하는 일은 따로 있었고 창작은 부차적으로 해왔습니다. 불안정한 프리랜서 일과 불확실한 작업 활동 사이에서 아슬 아슬하게 양다리를 걸치고 산 지 20년이 넘었다는 소리입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이 정도 세월이 지났으면 한 번쯤 작품에 사활을 걸어볼 법도 하건만 제 삶의 패턴엔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미대를 졸업 후, 입시 미술 학원에서 미술을 가르치며 번 돈으로 또 다른 화실을 돈 내고 등록하는 기이한 소비를 시작했습니다. 작업실이 없었고, 계속 창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으니까요. 그로부터 몇 년 뒤, 나이가 점점 차면서 이대로 파트 타임 강사 일만 하는 것은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은 화실을 차려서 돈도 벌고 작업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 사업자 대출을 받았습니다. 그마저도 코로나를 맞이하며 2년 만에 산산조각 나 버리고 말았지만요. 사업자 대출금을 갚기 위해 방문 미술을 하게 되면서부터는 과연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것인지 점점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그저 나의 작업실에서 창작이 하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삶의 방향은 어째 점점 다른 쪽으로 향해 가는 것 같았습니다. 빼곡한 아파트 단지들을 다람쥐처럼 빙글 빙글 돌면서 종일 애들과 놀아주고, 녹초가 되어서야 월급의 삼 분의 일을 쏟아부은 작업실에 겨우 몸을 앉히곤 했습니다. 그러나 너무 피곤해서 그저 멍만 때리다가 야식을 배달 시켜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더욱 더 기이한 소비를 하며 살게 된 것입니다.
작업실을 유지 하자니 물 속에서 겨우 코만 내놓고 사는 것 같이 허덕이게 되고, 이대로 작업을 포기 하자니 그렇게 까지 살아야 하나 싶어 모든 게 다 허무해져서 애초에 무엇을 위해 벌었는지도 모르게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좀 다르게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유지하기 위해 돈을 벌고 그 허무함을 다른 것으로 메꾸며 사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하고 싶었던 창작을 중심에 두고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여태껏 살아보지 않았던 곳에 나를 데려다 놓는 선택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