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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는MK Feb 23. 2021

몸치는 오늘도 뚠뚠

 



 







데카르트는 말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엠케이 식으로 바꿔 말해 보겠다.

"나는 만화를 그린다. 고로, 나는 앉아있다.”







그렇다. 이렇게 앉아있기를 좋아하는데 어찌 운동을 좋아할 수 있겠는가. 존재론적으로 접근하지 않아도 너무나 확실한 진실이었다. 그래서인지 아이러니하게도 먹을 것 다음으로 돈을 많이 쓴 것은 바로 운동이었다.


학창시절부터 싹이 뚠뚠했던 나는 앉아서 낙서하기를 좋아했다. 그런 주제에 키는 크고, 하필 컷트머리를 하고 있어서 누가 봐도 스포티한 학생처럼 보였다. 수업 시간에 꾸벅 꾸벅 졸고 있으면 선생님들은 내가 체육특기생 인 줄 알고 깨우지 않을 정도였다. 이렇듯 피지컬은 운동하기 참 좋게 생겼는데 몸뚱이를 쓸 줄 모르다 보니, 항상 마음의 숙제처럼 남아있었다. ‘아, 나도 운동 잘하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늘 앉아있었다는 게 문제였지만.


이십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여러 운동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헬스부터 시작해서 한강 달리기, 요가, 30분 순환 운동, 1:1 PT, 복싱, 플라잉 요가.... 리스트만 화려하다. 뭔가를 도전한다고 해서 잘하게 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 사실을 뼈아프게 깨닫게 해준 운동이 바로, 복싱과 플라잉 요가 되겠다.



몇 년 전, 배우 이시영처럼 단단하고 멋진 몸이 가지고 싶어서 복싱을 등록 한 적이 있었다. 일주일에 3번 체육관에 가서 내가 한 일은 다름 아닌 줄넘기였는데, 겨우 일주일 하고서 발목이 나갔다. 관장님도 아리송한 얼굴을 한 채 가만히 중얼 거렸다. 아니, 줄넘기만 했는데 발목이 어떻게 이렇게 부었지? 일주일을 쉬고 다시 나갔더니, 관장님께서 줄넘기는 하지 말고 샌드백을 써보자고 하셨다. 그 날 나는 내가 친 샌드백에 얼굴을 정통으로 부딪쳐 뒤로 넘어졌다. 뇌진탕에 걸릴 뻔 한 뒤로 복싱은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 흑역사를 만들고도 정신을 못 차린 나는 플라잉 요가에 또 도전하고 말았다. 아니, 이건 도전이라기보다 카운터에 수줍게 요가에 대해 물어봤다가 말 잘하는 실장 언니의 화술에 넘어가 6개월 치 플라잉 요가를 등록해 버렸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겠다. 그런 슬픈 사연을 가슴에 안고 시작하게 된 플라잉 요가는, 정말이지.... 끔찍했다.


가장 힘든 것은 웃음을 참는 일이었다. 미간 사이에 점을 찍은 요가 선생님의 얼굴과 마주치면 나도 모르게 코평수가 넓어졌다. 그녀가 재미있게 생긴 것도 아니고, 오히려 웃음 포인트가 전혀 없는 진지한 얼굴이었는데도 숙연한 분위기 속에 있으면 괜히 웃음이 터지는 고약한 버릇 탓이었다. 나는 웃지 않으려고 혀를 깨물며 요가를 했다. 또한 ‘옴~~~’ 하는 소리를 내면서 단전에 주전자 물 끓이듯 소리를 퍼트려 보라고 하셨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해석하는 것도 힘들었다. 다리 사이에 얼굴을 넣고 뒷사람에게 야차 같은 내 얼굴을 보여주는 것도 힘들었고, 천을 잡아당기며 항문에 힘주는 연습을 하는 것도 힘들었다.


아아. 플라잉 요가, 이것은 어쩜 이렇게 동작 하나 하나가 다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더냐...!



최고의 정점은 ‘피터팬’ 자세였다. 그것은 실험용 개구리처럼 공중에 거꾸로 매달려 양 다리를 쫘악 벌린 채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가, 항문에 힘을 주면서 영차! 하고 단번에 일어나 공중에 매달리는 동작이었다. 남들은 다 영차! 하고 일어나 피터팬처럼 우아하게 공중에 매달려 있는데, 나만 거꾸로 매달린 채 거미처럼 허우적댔다. 결국 보다 못한 선생님이 나의 무거운 엉덩이를 억지로 밀어 올려서 간신히 공중에 띄워주셨다. 공중으로 올라간 나는 양 허벅지를 조여오는 끈이 너무 아파서 나도 모르게 곡소리를 내면서 울었다.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조선시대의 고문 중 하나인 주리를 트는 것 같았다.


허벅지에 시퍼렇게 들었던 멍과 퉁퉁 부었던 발목, 아작 난 카드값 등등, 운동에 대한 도전은 내게 상처뿐인 영광만을 남겼다. 그런데도 여전히 나는 몸치이고, 계속 앉아있으며, 아직도 운동을 잘하고 싶어 한다.


최근엔 스피닝과 필라테스 전단지를 호시탐탐 노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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