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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는MK Mar 03. 2021

첫 술의 기억

 






수학여행 전 날, 프링글스 통 속에 레몬소주를 몰래 넣어갔던 기억이 난다.


들킬까봐 하루 종일 마음이 두근두근 거렸다. 여행지에 도착하자마자 마지막으로 자수의 시간을 주겠다고 협박하는 담임의 말에 심장은 더 빨리 뛰었다.


돌멩이처럼 단단하게 생긴 조교는 날라리 친구의 이름을 또박 또박 부르더니 본보기로 가방을 수색하여 술을 수거해갔고, 이번에도 안 나오면 즉시 귀가조치 시키겠다며 고도의 심리전을 펼쳤다. 겁먹은 친구들은 자진하여 숨겨온 술을 주섬주섬 꺼내었다. 결국 우리가 지켜낸 술은 고작 소주 2병과 맥주 3캔뿐이었다.








깊은 산 속의 밤 12시. 우리는 어둠 속에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서툴게 술판을 차리기 시작했다. 버스에서 남겨두었던 과자 몇 봉지, 오늘을 위해 일부러 사둔 오징어,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싸온 땅콩까지. 온갖 협박을 버텨낸 용자들은 자랑스러운 얼굴로 술을 꺼내들었다. 거기엔 범생이 친구도 있었고, 선생님의 신임을 받는 반장도 있었다. 공범이 된 우리들은 웃음 섞인 목소리로 소곤거리며 겨우 한 모금도 안 되는 소주를 배급 받았다.



때마침 얄미운 날라리 친구들이 술 한 잔을 구걸하러 다니다가 우리 방에 들어왔다. 평소 같았으면 무례하게 굴었을 그 애도 범생이 앞에서 순한 양처럼 굴었다. 나도 한 잔만 주라, 치근덕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술의 힘은 대단한 거구나.’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북두칠성이 보이던 밤하늘. 새벽 한 시의 산 속 공기. 알콜 냄새가 나는 종이컵. 밤에 먹는 과자. 잠옷 입은 친구들과 소곤거리며 나눈 비밀 이야기. 이러고 있을 아이들을 다 알면서 짐짓 모르는 척 자신들의 숙소에서 술판을 벌였던 선생님들. 평소에는 온갖 못된 말로 톡톡 쏘아붙이더니, 술에 취하니까 어린애처럼 풀밭을 뛰어다니며 함박웃음을 짓던 날라리까지.



그 모든 것이 달콤 쌉싸름한 첫 술의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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