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만 시킬게 아니라
우리도 해보는 거 어때?
한번 해보자.
그냥 한번 해보는 거지 뭐.
아이 놀이방을 정리하고 벽 한편에 책장을 들여두기로 했습니다. 빈 책장이 어느새 알록달록 알사탕을 진열한 것처럼 트로피컬 한 책들로 빼곡해졌습니다. 손쉽게 집어들 수 있는 아래 세 칸은 아이책으로, 맨 위칸과 그 아래는 엄마책과 아빠책들을 반듯하고도 가지런하게 세워두고 보니 제법 서재라 불릴 만 해 졌네요.
내 집에 이렇게나 책이 많았던가, 싶으면서 다시금 읽고픈 책과 읽다만 책 그리고 아직 펼쳐보지도 못한 책을 천천히 구분해 보았습니다. 읽을거리가 많아져 오늘 점심은 건너뛰어도 될 정도입니다.
책 정리를 하다 보니, 구석에 차곡히 쌓인 얇은 영어원서들이 눈길을 보내옵니다. 주변 지인들에게 받아둔 문고판 시리즈인데요. 앞으로 서너 해는 그대로 일 듯합니다. 그대로 둬야 하나 한쪽으로 치워두어야 하나 싶던 중 꿈틀꿈틀 생각의 줄기가 움트어 올라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스쳤던 생각을 조금 더 구체화시켜 볼 기회가 생겼지 말입니다.
초등학생이 된 아들이 교문을 들어서고 나면, 창밖으로 벚꽃나무가 울창하게 내다보이는 동네도서관으로 발걸음을 향하고 있는데요. 여느 때와 같이 언제나의 자리에서 책을 보던 중 아이친구 엄마를 만났고 함께 커피를 한잔 하게 되었지요. 대뜸 물었습니다. "우리 영어공부 해볼래?" 하고 말이지요.
생각해 둔 구체적인 공부방법을 설명했고, 아이 입학과 동시에 친분이 형성된 지인들을 모아 다 같이 해보자 했네요. 나름 단체톡방도 만들고 어린이 원서책도 심혈을 기울여 선택했답니다.
그리하여 시작된 우리들만의 '영어클럽'이 오픈되었습니다.
아이들 영어학원 알아보고, 픽업 다니며 공부하라는 말만 했지 직접 영어책을 손에 쥐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하며 낯선 현실을 부정하듯 마주 보며 한바탕 웃는 것도 잠시. 아직 식지 않은 커피를 옆에 두고 손바닥만 한 종이책을 들춰보는 세명의 여자들입니다. 틈새전략 공부를 표방하며 하루암기 단어를 최소 3개로 정하고, 일주일에 21개, 한 달이면 적어도 84개가 된다며 머릿속에 들어올 알파벳 단어들을 맞이하려고 해요.
'공부해라'라는 한마디 말보다 엄마가 묵묵히 책을 펼치자는 취지로 시작하게 된 동네 엄마들의 영어클럽. 우리들의 30일간의 영단어 암기 프로젝트는 어느새 일주일을 넘기고 오늘로 이주차에 접어듭니다. 틈날 때마다 단어장을 펼치고 고개 끄덕이며 외우고, 가볍디 가벼운 책도 가방에 넣어 다니며 아이의 방과 후 수업을 기다리며 동시에 가져온 책을 꺼내 들릴락 말락 한 소리로 읽어도 봅니다.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이 이리도 기쁘다니. 다름 아닌 공부인데도 얼마만의 공부인지 모르겠어서 양쪽 어깨마저 들썩이지 말입니다. 거리마다 초록빛 한가득인 4월, 가방 속 라푼젤을 들여다보며 미소 짓게 되는 한낮의 오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