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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득 Apr 02. 2021

환기

 어느 날 바람이 공손하게 창문을 두들겼다. ‘잠시 안으로 들어가도 될까요.’ 그렇게 말하는듯했다. 단지 맑은 공기를 맞이하기 위해서 요구에 응했다. 방 안 못지않은 후덥지근한 바람이 온몸을 에워쌌다. 유난히도 달짝지근한 시골의 밤이었다. 그날따라 개구리도 목청 놓아 울고 있었다.


 창문을 열면 바로 눈앞에 비옥한 논이 펼쳐졌다. 낮에는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벼의 모습을 구경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밤에는 밀림에 온 것처럼 으슥한 느낌을 주었다. 그 안 어딘가에서 울려 퍼지는 합창 소리가 창문을 타고 들어왔다. 비 오는 날도 아닌데 참으로 우렁찼다. 개구리 왕국에 초대된 느낌이었다. 마치 여기서 이방인은 나인 것처럼.


 혹부리 영감을 연상시키는 노래 주머니에서 끊임없이 곡조를 뽑아댔다. ‘나를 좀 봐줘요.’ 구애의 노래는 해가 뜰 때까지 계속되었다. 지휘자가 누구인지 쉴 틈 없이 연습을 시키는듯했다. 결국 잠결에 뒤척이다가 창문을 닫아버렸다. 이유는 충분했다. 방 안에는 맑은 공기로 가득했다.


 서울은 올챙이 시절과 달랐다. 원룸에서 창문을 열면 바로 눈앞에 건너편 창문으로 좁혀졌다. 때문에 저녁이 되어서야 조심스레 바람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때마다 오토바이 소리가 무례하게 쳐들어왔다. 결국 채 한 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창문을 닫아 버렸다. 이유는 불충분했다. 방 안에는 탁한 공기로 가득했다.


 유난히도 들척지근한 서울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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