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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롱 Feb 07. 2023

오늘 사직서 냈습니다.

오늘 사직서 냈습니다. 갑작스런 결정에 미안합니다. 그간 협조에 고맙습니다.

금일 오전 10시 반 경. 회사 내 우리 팀 단톡방에 하나의 글이 올라왔다. 갑작스러운 퇴사통보였다. 그는 작년 11월 경에 우리 회사의 관리직 팀장으로 입사하였다. 2년짜리 계약직이었다. 첫인상부터 사람 좋은 인상을 풍겼기에 좋은 사람이라 여겨졌다. 내가 사람 보는 눈 하나는 기가 막히기에 그럴 것이라 믿었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다만, 불통의 대마왕일 뿐.




그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으며, 술은 입에도 대지 않으며, 착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부활절이나 성탄절에는 직원들에게 삶은 달걀과 먹거리를 곤 했다. 그렇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 본인이 무언가인지한 시점부터는 룰과 원칙, 법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으며(나와 트러블이 끊이질 않았다.) 본인이 꽂힌 것 하나는 끝장을 보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그가 본인이 꽂힌 것을 끝장 보기엔 우리 회사에는 무조건 YES를 말하는 직원보다, 아닌 건 NO라고 말하는 직원이 더 많았다. 나를 포함해서.


그는 모순적인 사람이었다. 인성적으로 사람들과의 불화를 나타내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의 업무처리 방식이나, 결재 및 책임의 미숙함은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직원들의 업무량을 가중시키고 업무시간에 의견충돌을 일으켰으며, 그건 사람들이 그에게 신뢰를 잃게 만드는 주된 요소였다. 사람이 싫어지는 데는 이유 따윈 없었다.


이미 결재가 완료된 문서를 다시 들고 내려 와 자기가 놓친 게 있다고  수정하라고 하거나, 아래 기안자가 올린 문서를 전결단계에서 마음대로 수정해 버려 기안자는 내용도 모르정 반대의 결론을 가진 문서가 생겨버린다거나(보통은 반려를 시킨 후 문서를 수정하라 지시한다.), 회의 때 전달받은 내용과 상이한 정보를 전달한다거나 하는 점, 책임질 것 같은 일이 생기면 슬며시 손을 빼며, 아랫직원에게 떠넘겨 버리는 점이나 모두가 틀렸다고 하는 데도 불구하고, 자기는 양보 못한다며 끝까지 우기기 등은 정말이지 능력 없는 상사의 표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부구청장에게 반려된 문서를 까지고도 끝까지 추진하려 한 사람이 그였다.




그는 유독 자신이 통과시킨 문서들에 대해 기억하지 못했다. 자신이 결재한 아랫직원의 휴가나 출장 등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으며, 자신에게 피해가 오지 않아야 했기에 공사가 제대로 되었는지 여부는 중요치 않았다. 어찌나 집착을 해대는지 공사기간 내내 나만 보이면 작업자들을 안전하게 감독하라고 노래를 불러댔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 후로 그의 법과 원칙 준수는 더욱 심해졌다.(다만, 자신이 주장하는 내용에 대한 법과 원칙은 지키고 그 외의 것은 지키지 않은 게 그의 모순이었다.)


그도 분명 관리자 팀장으로서,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받아왔을 것이다. 본인은 열심히 하려고 했지만, 고지식한 발상 덕에 아랫 직원들의 업무 협조는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았고, 관리자지만 책임지지 않으려는 성격 덕에 아랫직원들의 원성만 다. 사람 좋은 인상+민원에 취약점은 민원인들이 늘 팀장 찾는 원인이 되었고, 자기들의 불만을 어필하기 위해 팀장 불러오라고 아우성쳤다. 그런 그도 지쳤 것이다. 아니 지쳐야 정상이다. 우리 회사뿐 아니라 구청 공무원이라던가 타 회사, 임대매장 사람들도 그와 대화를 꺼려했다.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았으니까.


그런 그가, 갑자기 단톡방에 사표를 던졌다. 그와 함께 1년여 생활을 했지만, 남은 10여 개월을 더 버텨야 한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받아가며, 연차까지 내며 쉬었던 나인데, 그의 퇴사소식은 나의 입꼬리가 광대에 걸치게 만들었다. 마스크가 아니었다면, 사람들은 나에게 로또라도 당첨되었냐고 물었을 것이 분명하다. 아직도 웃음이 난다. 그가 일찍 떠남으로써 우리 회사는 점점 좋아지고 있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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