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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롱 Feb 21. 2023

가끔은 생각이 없어야 한다.

그것이 추억이 되고, 에피소드가 된다.

장롱 : 그 때는 정말 청춘이었죠.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런게 다 추억이더라구요.




우리 셋의 관계는 특이했다. 이들과 나의 인연은 인터넷에서 시작되었다. 지금이야 대나무숲이나 에타같은 시스템이 많이 발달해서, 교내 다른 학과의 학우들끼리의 교류가 원만하지만, 우리가 대학생 때는 그렇지 않았다.(07'-10') 하지만 우리가 만난 곳은 어딘가의 커뮤니티였고, 온라인에서 익명의 사람을 만난다는 건 쉽사리 상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만나고 나서 우리는 의외로 죽 잘 맞았다.


빠빠 나랑 동갑이었기에 우린 쉽게 친해졌다. 본인의 과에서 과탑을 할 정도로 역량 있던 그는 석사까지 마쳤지만(전공을 살리진 못했다.) 여러 환경적 요인덕이 부산에서 수학강사로써의 삶을 살고있다. 낯을 많이 가리는 내가 익명성으로 가득차 있는 커뮤니티에서 만나 친해져 그의 가정사를 들으며 가끔은 소주한잔 기울일 수 있는 그런 친구가 될 정도의 인연이었다.


농혀빙은 우리보다 어린 동생이었는데, 내가 기숙사 생활을 할 때, 내 옆옆방에 살게 되어 인연을 맺었다. 지금은 어엿한 경찰공무원이 되어있다. 커뮤니티에서 이야기하던 익명의 이용자가 내 기숙사 옆옆방에 살고 있는 그라는 걸 알았을 땐 놀라움을 금치못했다.




2011년 2월 22일. 대학생 때니까, 꼬꼬마 시절이었다. 그날의 저녁 20시경. 우리 셋은, 대학교 벤치에 앉아 대학생활의 지루함을 토로하고 있었다. 농혀빙이 군대에 입대할 시기가 다가온 것 또한 큰 이야깃거리였다. 커뮤니티에서 희희낙락 거리며 떠들며 영양가 없는 대화를 하던 우리에게  여행은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게다가 경상도를 벗어난다는 생각은 더욱 불가능했다. 문득 꺼낸 말이었다. 결코 진심이 담겨있진 않았다. 계획도 없었다.

여행 한 번 같이 가볼까?


우리 중 나를 제외하곤 여행과 담쌓은 둘은 인터넷 세계여행가라고 봐도 이상하지 않았는데(키보드만 있으면 대서양도 가를 수 있는 그들), 그들에게 이 멘트는 제법 강렬하게 다가왔나보다. 여행을 가보지 않았기에, 어찌보면 기회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좋죠 형님 어디로 갈까요?"

"가까운데가 좋지 않을까?"

"통영이나 경주 이런데 어떠냐?"

"여행 안 가봤는데 쉽게 못가는데 가고 싶어요"

"어디 강원도나 가볼까?"

같은 질문에서 시작해 어떻게 속초로 귀결이 된지는 모르겠다. 장소가 정해지자 마자 우리는 각자 기숙사와 집으로 가서 짐을 싸고 그날 밤 23시 40분의 막차를 타기위해 노포동 시외버스 터미널에 와있었다. 결정하고 3시간 후의 일이었다.(내 인생에서 이 날을 제외하곤 무언가를 즉흥적으로 고민도 없이 결정해 본 적은 없다. 무계획여행을 즐기지만 그건 장소는 정하고 나서다.)

심야행 최고급 리무진.




버스가 목적지에 정차한 시간은 새벽5시였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새벽 7시 20분에나 도착해야 정상인데, 막차다 보니 고속도로가 텅텅 빈 덕에, 2시간이나 이른 새벽5시에 도착해버린 것이다.(폭주드라이버 기사님) 그날의 불꺼진 속초시외버스터미널은 우리에게는 잊지못할 기억 속 장소였다. 우리는 속초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 아침에 도착해서 관광안내소를 들러 정보를 얻을 생각이었지만, 새벽5시의 관광안내소는 사람은커녕 개미한마리 보이지 않았다. 스마트폰이 대중화 된 시기도 아닌지라, 터미널 주변의 선불유료피씨방을 찾아 가 간단히 속초의 여행지를 검색했고 관광안내소 앞이 꽂힌 지도를 펼쳐들고 무작정 첫번째 여행지인 속초등대로 향했다.(터미널에서 가장가까웠기에) 하지만 7시부터 오픈인 속초등대에는 들어갈 수 없었고, 옆에있던 영금정이 우리의 첫 여행지가 되었다. 그날의 바다는 안개가 가득했고, 급작스럽게 생각없이 떠나온 우리에겐 신비한 분위기로만 느껴졌다. 뺨을 스치는 차가운 안개기운은 새벽6시라는 것도 잊게 만들 정도로 우리는 설레게 만들었다. 그냥 모르는 동네이렇게 이른 시간, 우리끼리 걷는다는 사실에 들떴다. 일출을 보고 싶었지만, 보지 못해도 충분히 좋았다. 조도가 확보되지 않으면 잘 찍히지도 않는 콤팩트 카메라를 보며 우리는 환하게 미소지었다.

빠빠와 농혀빙


10년 후, 2021년. 혼자서 강원도 여행을 떠났다가 생각없이 속초에 들렀다. 거의 10년만에 밟아보 속초 땅이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다내음이 물씬 풍겨왔다. 땅과의 접촉과 함께 10년 전 빠빠와 농혀빙과 했던 속초여행이 떠올랐다. 블로그를 통해 기록해 놓은 여행기를 읽어보며, 혼자 미소짓고 있는 내가 있었다. 기억과는 달라진 영금정의 풍경을 보, 같은 위치에서 사진을 촬영했다. 그렇게 10년이 지나 내 기억속의 즉흥여행 에피소드는 후기가 생겼다.

아바타2처럼 10년만에 등장한 후기

10년만에 방문하여 찍은 속초 사진을 빠빠와 농혀빙에게 카톡으로 보내 주었을 때 그들은 나와 같이 그 날의 추억을 떠올렸다. 졸업과 함께 조금은 멀어져 버린 인연이지만, 아직도 안부를 묻는 사이라는 사실이 속초 즉흥여행 덕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계획적인 것은 좋다. 하지만, 가끔은 생각이 없이 무지성으로 결정을 할 때가 있고, 진짜 즉흥적으로 무언가 일을 벌일 때 있다. 그렇게 생각 없이 저지른 일들이 추억이 되고 에피소드가 된다. 난 그런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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