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역사과학은 근접원인과 궁극원인의 연쇄 작용에 관심을 둔다. ‘궁극원인’, ‘목적’, ‘기능’이라는 개념은 물리학과 화학에서는 무의미하지만, 생명체의 활동, 특히 인간 활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총, 균, 쇠』, 재레드 다이아몬드 저
일찍이 그는 '총, 균, 쇠'를 통해 인류의 발전이 지리적 결정론에 근거한 이론을 주장했으며,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총, 균, 쇠의 관점에서 설파했다. 그러나 그는 줄곧 지리적 결정론에 대한 도전을 받아온 듯하다. 2017년 개정판으로 출간된 '총, 균, 쇠'에는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었는데, 여기서 지리적 결정론이 전부가 아니며 사회적 제도가 더 큰 역할을 한다는 반론이 제기된 것으로 보인다. 그중 저자가 소개한 근접요인과 궁극요인에 대한 부분이 주목할 만하다. 근접원인은 즉각적이고 표면적인 원인으로, 종속변수에 해당한다. 이는 눈에 보이는 직접적인 요인들이다. 궁극원인은 근본적이고 깊은 원인으로, 독립변수다. 다이아몬드는 지리적 요인(예: 가축화 가능한 동식물의 분포, 대륙의 축 방향 등)이 이러한 기술적 우위를 가능하게 한 궁극적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우리가 현상을 이해할 때 근접원인에만 매몰되기 쉽다고 지적하며, 궁극원인을 파악해야 전체 그림을 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는 단순히 역사를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생활 문제 해결에도 적용 가능한 통찰이다.
우리가 어떤 현상이나 상황을 접할 때, 눈앞에 놓인 현상이나 상황만을 직시하는 경향이 있다. 즉, 종속된 변수만을 바라보게 된다. 이로 인해 종속된 프레임(틀) 안에서만 사고하며, 그 안에서 현상이나 상황의 원인을 찾으려는 노력을 반복한다. 하지만 저자가 저서를 통해 주장했듯이, 근접요인으로 나타난 상황만을 직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근접요인을 초래한 궁극적 요인을 살펴봐야 한다. 이러한 주장을 통해 ‘왜’라는 질문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흔히 “숲을 보자, 나무를 보지 말자”, “크게 봐야 한다, 좁게 보면 안 보인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아마도 실천하기 어려운 습관이라 입버릇이 된 것일 테다. 또한, ‘버릇’이라는 표현이 부정적인 뉘앙스를 띠는 경우가 많아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다시 근접요인과 궁극요인으로 돌아와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 근접요인과 궁극요인은 각각 종속변수와 독립변수로 치환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개념은 상품기획에서도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출처: Lummi.aiⓒPablo Stanley
상품기획의 첫 단계는 사용자의 쓰임새를 판단하는 것이다. 이는 수치, 소리(말), 영상, 글 등 다양한 형태로 표현될 수 있다. 어떤 형태를 선택하든 기획자의 판단에 달려 있지만, 특정 형태만 고집하기보다는 모든 것을 다각도로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사용자의 쓰임새에 대한 자료 중 확정되지 않은 부분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 요인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 중 하나는 ‘올바른 의문을 갖는 법’이다. 즉,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사용자가 왜 그렇게 사용하는지, 그렇게 사용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제품(또는 기능)이 원래 의도대로 사용되는지, 아니면 원래 의미가 퇴색되고 새로운 의미로 재탄생해 의미 있게 쓰이는지, 혹은 사장되는지를 살펴야 한다.
기획의 목적과 용도에 따라 제품이 의도대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용하게 된 계기를 탐구하는 노력이다. 예컨대, 스마트폰 카메라의 외장 플래시 기능을 들 수 있다. 이 기능은 본래 어두운 곳에서 사진을 촬영할 때 어둡게 나오는 것을 방지하고자 전문 카메라의 외장 플래시 기능을 도입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어두운 곳에서 물건을 찾거나 길을 밝히는 용도로 더 자주 사용한다. “왜 사용자가 플래시를 사진 촬영 외에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가?”, “그 행동의 근본적인 동기는 무엇인가?”, “이 기능이 의도된 목적을 넘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가?”와 같은 질문을 가지는 것은 표면적 데이터나 피드백을 넘어 사용자의 잠재적 필요와 욕구를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나아가 플래시를 조명으로 사용하는 패턴을 발견한 기획자는 더 강력한 조명 모드를 추가하거나, 상황에 맞는 플래시 설정을 제안할 수도 있다. 이는 단순히 근접원인에 반응하는 것을 넘어 궁극원인을 활용한 혁신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스마트폰 카메라의 외장 플래시는 근접요인이자 종속변수다. 카메라 근처에 위치해 카메라 보조 용도로만 쓰일 것이라 생각한 가능성이 플래시의 본래 목적에 맞게 사물이나 장소를 밝히는 것으로, 궁극적 요인이자 독립변수를 찾아낸 것이다. 카메라 촬영뿐 아니라 독립적으로 무언가를 밝히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로는, 포스트잇을 들 수 있다. 포스트잇은 원래 강력한 접착제를 개발하려다 실패한 결과로 만들어졌지만, 메모지를 임시로 붙였다 떼기 위한 용도로 재탄생했다. 또한, 컨테이너 박스도 원래는 화물 운송을 위해 개발되었으나, 현재는 주택이나 사무실, 팝업스토어 등 다양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왜’라는 의문을 갖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앞서 ‘질문하는 능력’에서 밝혔듯, 이는 인간 사고와 호기심의 핵심이다. ‘기기 사용법’과 같은 기초적인 질문에서 시작해 ‘사람들이 잠을 자는 이유’, ‘일을 하는 이유’, 나아가 ‘낮과 밤이 바뀌는 이유’, ‘계절이 변하는 이유’와 같은 자연현상에 대한 궁금증, 더 나아가 ‘삶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철학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질문은 가치와 의미를 숙고하는 자세로 이어진다. 상품기획에서도 사용자가 남긴 흔적을 따라가며 그 의미를 해석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근접요인과 궁극요인을 분류해 분석하며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 인간을 탐구하는 것은 철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상품기획에서도 인간이 남긴 발자취를 연구하며 철학적 사고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컴퓨터과학 교과과정에서는 ‘문제해결능력’을 강조한다. 코딩을 배우기 전,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해결책을 찾는 선행학습이 필요하다. 이를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 프로그래밍이다. 상품기획도 같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사용자 데이터(VoC, 기기 리뷰 등)에서 드러난 문제를 효율적으로 개선하고, 효과적인 기능 업그레이드로 제품 가치를 높이는 것이 상품기획의 역할이다. 하지만 사용자 데이터를 맹신해서는 안 된다. 소수 의견이 다수를 지배하거나, 다수 의견이 소수를 묵살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인간에 대한 철학적 통찰과 관점을 배양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상품기획자는 중심을 바라되 지나치게 사변적이지 않고, 주변을 살피되 편향되지 않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