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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길

행운(幸運)과 행운(行運)

by 닥터브룩스
“제가 바쁘지만,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강의하는 걸 마다하지 않습니다. 특히 젊은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는 가능하면 가려고 합니다. 가서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저 오늘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온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혹시 오늘 이 자리에서 저 때문에 딱 한 명이라도 인생의 길을 찾는다면 저는 너무너무 값진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왔습니다.”
— 『최재천의 곤충사회』, 최재천 지음




모든 인생에는 저마다의 때와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왜 이 자리에 있는지, 다른 곳이 아닌 이곳에 서 있는 이유를 알고자 한다면, 자신이 이 길로 들어서게 된 그 ‘때’를 떠올려 보길 권하고 싶다. 우리는 종종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부러워한다. 노인은 젊은이의 시간을, 젊은이는 노인의 경제적 여유를 부러워한다. 젊음에게는 시간이 있고, 노년에게는 돈이 있다. 만약 이 둘을 바꿀 수 있다면 세상은 큰 혼란에 빠지겠지만, 어차피 이는 불가능한 상상이고 망상일 뿐이다. 하려는 이야기는 이런 뒤섞임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길을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어떤 이는 ‘은인’을 만나 인생이 잘 풀렸다고 말하고, 다른 이는 좋은 부모가 정해준 길을 따라가다 보니 성공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귀인을 만나는 것도, 좋은 부모를 만나는 것도 온전히 개인의 힘으로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다. 우리는 이것을 흔히 ‘운’이라 부른다. 그런데 이 운에는 두 가지 결이 있는 것 같다. 태생적으로 주어진 운을 ‘행운(幸運)’이라 부른다면, 노력으로 쟁취한 운은 ‘성취’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소위 행운이라 불리는 것들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부지런히 무언가를 노력하던 사람에게 찾아왔고, 그가 그것을 알아보고 붙잡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많다. 그렇다면 결국 ‘운’이란 가만히 있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노력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듯, 0.5 보라도 발걸음을 떼어야 0.5보만큼 전진한다. 1에 0을 더하면 그저 1일뿐이지만, 0.5라도 더해야 비로소 1.5가 된다. 아주 사소하더라도, 그 노력이 방 청소가 되었든 산책이 되었든, 일상 속 작은 실천을 꾸준히 해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그 작은 움직임(行運)이 쌓일 때, 비로소 인생을 바꾸는 행운(幸運)이 따라올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출처: Lummi.aiⓒRicardo Matos


(아마도) 인생의 길이 정해지는 가장 현실적인 순간은 아마 대학의 학과를 정할 때일 것이다. 평생의 업을 결정할 수도 있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갈림길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 중차대한 선택의 순간에, 우리는 온전히 스스로의 의지로 길을 정하기보다 성적에 맞춰, 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여, 혹은 장학금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조건에 따라 결정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물론 그것이 옳고 그름을 따지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관통할지 모르는 길의 첫 단추가, 내면의 목소리가 아닌 외부의 선택적인 압력에 의해 끼워지는 오늘의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질 뿐이다. 우리 중 과연 몇이나 이 현실에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가 자신의 인생 경험을 들려주는 것은, 길을 찾는 다른 누군가에게는 미래를 비추는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최재천 교수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그는 우연히 만난 미국인 생물학 교수에게 매료되어 평생의 길을 찾았고, 그 교수의 도움으로 세계적인 학자가 되었다. 겉으로 보면 그는 대단한 행운아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멘토를 돕기 위해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던 그의 노력이 숨어 있다. 그의 열정과 성실함이 없었다면, 그 만남은 그저 스쳐 가는 인연으로 끝났을 것이다. 행운처럼 보였던 기회는 사실 그의 노력이 만들어낸 필연이었다고 생각한다. 우연의 선택이 아니라 필연의 준비였었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이처럼 현상만 보고 원인을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학창 시절, 시험 때마다 "어제 일찍 잤어"라고 말하는 전교 1등을 떠올려 보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는 것은 우리가 관찰한 현상이다. 하지만 그 원인은 다양하다. 이미 모든 공부를 끝내고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인 휴식일 수도 있고, 혹은 밤늦게까지 공부하고도 겸손하게 둘러대는 말일 수도 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원인은 상상하지 않은 채, 그저 눈에 보이는 현상만으로 '저 친구는 역시 천재야'라고 쉽게 단정 짓는다. 다른 사람의 노력은 우리가 쉽게 들여다볼 수 없는 블랙박스와 같다. 그렇기에 우리는 타인의 행운을 부러워하기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나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 꾸준한 노력이야말로 진짜 행운을 불러오는 유일한 열쇠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누가 뭐라 하지 않더라도 부지런히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는 것, 그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내는 것, 그것이 진정한 행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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