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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NP 문제에 대해서

‘해’를 구할 수 있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by 닥터브룩스

2024년 노벨 화학상은 인류와 과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수상자인 데이비드 하사비스는 인공지능 개발과 응용 연구에서 두각을 나타내온 인물로, 특히 자연 현상과 복잡한 시스템을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모델링하는 데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Lex Fridman과의 인터뷰(Lex Fridman Podcast #475)에서 하사비스는 혁신적이면서도 도전적인 한마디를 남겼다.

“자연에서 생성되거나 발견될 수 있는 모든 패턴은
고전적인 학습 알고리즘에 의해 효율적으로 발견되고 모델링 될 수 있다.”




이 말은 자연이나 인간 사회의 복잡한 체계 또한 충분한 데이터와 알고리즘적 도구만 갖추어진다면, 결국 인공지능의 범주 안에 포섭될 수 있다는 주장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특히 그의 이론은 자연의 패턴이 결코 무작위적인 것이 아니라, 진화나 물리 법칙 등 내재된 구조 속에서 반복적으로 발견될 수 있는 법칙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만약 우리가 자연에 숨어 있는 이러한 패턴을 추출해 내는 학습 알고리즘을 고안할 수 있다면, 아직까지 사람의 직관이나 경험에만 의존하던 영역마저 AI가 탐구하고 혜안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DeepMind의 AlphaGo(2016년, 바둑)와 AlphaFold(2020~2021년, 단백질 구조 예측)는 복잡한 패턴 학습과 예측 능력으로 과학적 난제를 돌파하며, '하사비스'와 동료 '존 점퍼'에게 노벨상을 안겼다. AlphaGo는 인간의 대표인 이세돌 9단마저 최고수조차 예상치 못한 수법을 두어 이겼고, 바둑이라는 영역에서 기계 학습의 새 지평을 열었고, AlphaFold는 인류 오랜 난제였던 단백질 구조 예측 문제에 혁명적 해답을 제시했다.


이러한 하사비스의 주장을 컴퓨터 과학의 대표적 미해결 문제인 P-NP 문제라는 문제를 가져와 대입해보고자 한다. 더불어 대중적으로 친숙한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 최근 급성장한 인공지능 사례, 그리고 현실에서 직접 마주하는 상품기획 업무 등의 실제 예시를 들어가며, 하사비스의 논지가 어떻게 확장적이고 응용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출처: Lummi.ai ⓒ SHIHO


P-NP 문제란 무엇인가 — 컴퓨터 과학과 난제의 본질


먼저 핵심 키워드인 P-NP 문제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컴퓨터 과학에서 P문제는 ‘컴퓨터가 다항 시간 내(즉 현실적으로 충분히 빠른 시간 내)에 풀 수 있는 문제’로 정의한다. 반면, NP문제는 답을 ‘빠르게 검증할 수 있으나 실제 답을 찾는 과정은 어렵거나 시간이 지수적으로 오래 걸리는 문제’를 말한다. 예를 들어 수많은 후보 중 정답을 하나 주면 맞는지 금방 확인할 수 있지만, 답을 직접 찾으려면 막대한 시행착오가 필요한 경우다.


이러한 P와 NP의 관계는 곧 전 인류가 직면한 다양한 복잡성의 핵심 축과 맞닿아 있다. 2000년, 클레이 수학연구소가 ‘P=NP인가?’라는 질문을 새 천년의 7대 수학 난제 중 하나로 선정했고, 이 문제를 푼 이에게 100만 달러의 상금을 내걸 만큼 그 중요성과 난이도는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NP문제가 모두 P로 환원된다면, 현대 정보기술·과학·경제·사회 전반에서 암호학, 물류, 신약 개발 등 혁신적 진전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게 다수의 의견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싶다.


P-NP 문제는 단순한 수학적 호기심을 넘어, ‘검증 가능성’과 ‘실질적 구현 가능성’의 간극을 의미하고 있다. 즉, “빠르게 검증할 수 있는 문제는 반드시 빠르게 풀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아직까지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하지만 인공지능과 같이 새롭게 등장한 도구들이 이 간극을 메워나가고 있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어 가고 있다. 검증 가능성과 실질적 구현 가능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좀 더 일반화해 실생활의 예를 들어 보면, 오해가 생겼을 때, 해명을 듣고 그 말이 논리적으로 맞는지 바로 확인(검증)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오해를 모두 풀고 원래의 관계로 돌아가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 — P와 NP의 시간적 비유로 보는 문화예술과 기술의 만남


P-NP 문제는 컴퓨터 과학의 추상적 이론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대중문화, 특히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를 예로 들면, 이 난제를 시간적 맥락에서 풍성히 이해할 수 있다. 잘 알려진 대로, 조지 루카스 감독은 1977~1983년에 먼저 4, 5, 6편을 제작·개봉했다. 당시에는 CG(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한계에 부딪혀 있었기에 우주선, 외계 행성, 대규모 전투와 같은 화려한 장면은 현실적으로 구현이 어려웠다. 그래서 미니어처를 많이 만들어서 영화에 접목시켰다.


1, 2, 3편의 시나리오 콘티나 콘셉트 아트는 이미 존재했고, 팬과 영화 제작팀 모두 이런 영화가 ‘이론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걸 검증할 수 있었다(NP). 하지만 당시의 기술력(P)은 그 아이디어를 실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P-NP의 현실적 예시다. 시나리오의 검증은 쉽지만, 직접 ‘만들기’는 어려운 상태 — 바로 NP 문제다. 이후 20여 년에 걸친 기술적 발전, 특히 CG와 시뮬레이션, 특수효과 기술의 혁신이 이어졌다. 결국 1999~2005년 1, 2, 3편이 영화로 완성되며, 과거에는 NP였던 문제가 기술에 힘입어 P로 전환되는 역사가 펼쳐졌다.


이처럼 기술의 진보는 “지금은 풀 수 없는 문제(NP)가 미래의 어느 시점에는 풀리는 문제(P)가 된다”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스타워즈의 에피소드 순서와 기술 발전의 이야기는 P-NP 문제를 시간, 자원,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현실적 난제의 예시로 삼기에 아주 적합하다.


인공지능(AI) — 현실 문제의 구체적 돌파와 하사비스의 모델


인공지능은 또 어떤가. AI는 1950년대부터 이론적 틀과 기대를 갖고 출발했다. “기계가 인간처럼 사고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수많은 과학자들에게 매혹되었고, 논문들과 간단한 체커·체스 프로그램, 퍼셉트론 등 초창기 초기 형태가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AI는 오랫동안 연구자들 사이에서 ‘알고리즘을 검증하기는 쉬우나, 현실적으로 구현은 매우 어려운’ 즉, NP형 문제로 분류됐다. 컴퓨팅 파워의 한계, 데이터 부족, 알고리즘적 미숙 등이 실제 적용의 벽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론적 모델(예: 인공신경망, 퍼지 로직, 전문가 시스템 등)은 참신하고 유용하게 여겨졌지만, 이를 상용 서비스나 일상적 도구로 바꾸는 것은 아주 먼 꿈이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전환점은 2010년대 중반 이후 찾아온다. 딥러닝·빅데이터·GPU 병렬 처리 등 혁신적 기술의 출현, 그리고 구글 DeepMind 팀의 연구가 그 서막을 열었다. AlphaGo는 전통적 프로그램이 접근할 수 없었던 바둑이라는 무한에 가까운 공간에서 ‘인간(인간 대표라고 한 이세돌 9단)을 뛰어넘는’ 창의성을 보여줬다. AlphaFold는 50년 넘게 풀리지 않던 단백질 구조 예측 문제를 AI 모델이 단 며칠 만에 대규모로 해결해 내며 생물학·의학계에 충격을 주었다. 2022년, OpenAI의 ChatGPT는 자연어 처리와 정보를 활용하여 일상 언어가 정보 탐색의 새로운 도구임으로 증명했고 그 방법은 그저 일상적으로 해 온 대화형식이었다.


이 모든 사례는 애초에는 ‘검증 가능(NP)’하지만 ‘현실 구현은 어려운(NP)’ 문제들이 기술·알고리즘·컴퓨팅 파워의 발전이라는 자극을 통해 ‘실제로 풀리는 문제(P)’로 옮겨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다시 말해 하사비스의 주장은 이론적 검증이 가능한 자연의 패턴(P)과 실제로 문제를 해결 가능한 알고리즘 기반 시스템(P) 사이를 잇는 다리의 역할을 AI가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상품기획과 현실 문제의 융합 — NP를 P로 바꾸는 실질적 접근 방법


상품기획이라는 현실 세계의 문제도 P-NP 관점에서 흥미로운 대상을 제공한다. 실제 상품기획은 구현 가능한 아이디어(P)와 이론적으로만 타당한 아이디어(NP)가 뒤섞여 있다. 예를 들어 자율 주행 로봇을 기획한다고 가정해 보자. 단순 공장 자동화처럼 반복적인 동작을 하는 로봇은 이미 충분한 기술력과 노하우가 쌓여 있어 ‘즉시 구현(P)’할 수 있다. 하지만 복잡한 환경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 대응하는 ‘진정한’ 자율성은 아직까지 어렵고, 이론적으로만 타당성을 가지는 경우(NP)가 많다.


기획자는 이러한 한계를 잘 파악하고, 현재의 기술적 제약을 고려해 NP 문제를 P 문제로 천천히 변환시켜 가려는 전략을 짠다. 또한 하사비스의 주장처럼, 상품기획 현장에서도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패턴이나 소비자 행동, 기술 트렌드 등을 AI 알고리즘이 학습하고, 그 데이터 기반으로 유망한 아이디어와 실행 계획을 도출하는 흐름이 점점 강화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NP였던 구상을 점차 P로 끌어당기는 실질적 혁신이 이루어진다. 실제로도 추천 시스템, 시장분석, 트렌드 예측은 이미 AI가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상품기획에서의 이러한 변화는, 우리가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 즉 “언젠가는 풀 수 있을 것이라 믿는 현재의 난제도, 반복적 패턴·데이터·알고리즘의 힘을 빌리면 현실적으로 해결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P-NP 문제는 이처럼 실생활의 의사결정과 아이디어 실현 과정 전반을 아우르는 깊은 통찰을 제공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하사비스가 Lex Fridman과의 인터뷰에서 주장한 대로,

"자연의 모든 패턴은 결국 AI가 학습하고 모델링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 말은 NP 문제가 P로 변환될 여지가 끊임없이 확장되고 있음을 암시할지도 모른다.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 인공지능(AI) 혁신, 상품기획의 현실 사례들은 ‘이론적으로만 가능했던 일(NP)’이 ‘현실로 구현(P)’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미래에 P-NP 문제가 해결된다면, 컴퓨터 과학사뿐 아니라 의사결정, 창작, 과학적 발견, 사회 시스템 설계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패러다임 전환이 이뤄지지 않을까. 하사비스의 연구와 비전은 우리에게 단순한 과학적 경이로움을 넘어, “어떤 패턴이든 발견하고 설명하려는 노력,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할 기술적·사회적 토대 구축”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자연과 사회를 이해하고, 변화를 통해서 혁신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방식 또한 근본적으로 바뀌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인간이 나아가야 할 길을 자연이 먼저 나아간 뒤, 그 실마리를 하나하나 던져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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