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립 영화 출연
큰 수술을 받고 요양 중이던 배우가 건강을 다시 회복하고 영화를 찍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거의 일 년 만의 활동이었다.
배우는 이제 서른을 넘긴 나이가 되었다.
대중적인 영화로 크게 성공한 이력이 있는 배우로서는 퍽이나 현명한 선택이었다.
대중들이 기대하는 배우의 이미지는 때 묻지 않는 소녀의 이미지였고, 배우는 그 틀을 깨고자 부단히 노력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은 여전히 그걸 원했다.
그랬기에 배우는 이제 과감하게 낯선 느낌을 주는 역할에도 관심을 쏟는 것이 맞았다.
그래야 연기의 스펙트럼도 넓어질 것이고, 출연할 수 있는 장르도 많아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덕후들은 그녀의 선택을 반겼다.
물론 아쉬워하는 덕후들도 있었다.
대박을 터트릴 확률이 높은 감독이나 작가의 작품을 해야 입지가 더 단단해지고, 그래야 그다음이 쉬워질 수 있다는 판단에 의해서였다.
인지도가 커져야 감독들 눈에 더 들어오는 법이고, 받아볼 수 있는 대본이 많아질 테니까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배우의 선택이 맞다고 생각했다.
1,2년 연기하다 그만둘 게 아니기 때문에, 대중적이지 않은 예술 영화를 해 보는 것이 배우에게 터닝포인트가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대중 영화보다는 예술영화나 독립 영화를 더 좋아했기에 내 기호에도 맞는 선택이었던 것이다.
배우가 출연한 영화는 독립 영화 쪽에선 꽤나 알려진 여성 감독님이 연출하는 영화였다.
전작들이 작품성을 인정받아 영화제 수상도 여러 번 하신 감독님이었다.
영화가 상영을 시작해서 나도 영화를 관람했다.
예술성이 뛰어난 영화였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일반적이지 않았지만, 상징성이나 미적인 요소들이 깊은 여운을 주는 수작이었다.
배우의 연기는 훌륭했다.
스토리 중심의 영화가 아니기에 대사보다는 눈빛이나 감정의 표현이 중요한 영화였는데, 우리 배우는 그런 면에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고 있었다.
난해하다는 평이 많았지만, 배우의 마지막 눈빛만큼은 잊히지 않는다는 평이 많았다.
나 역시도 배우의 눈빛이 다한 영화였다고 생각했다.
내가 반했던 요소가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한 셈이었다.
관객수는 많지 않았지만, 상당히 좋은 시도였고 결과도 나쁘지 않아 다행이었다.
배우는 아프고 나서 더 성장했다.
진부한 얘기지만,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은 진리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영화제나 극장 GV, 오픈 토크 등이 진행되어 덕후들이 열심히 참석을 하고, 직찍들을 올리고, 인터뷰 내용 등도 퍼오고 해서 카페는 활기가 넘쳤다.
다들 배우가 쉴 때는 덕후들도 조용하다가 배우가 일을 시작하면 다 튀어나와 각자의 포지션을 찾아갔다.
덕후들에겐 각자의 역할이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었다.
찍사들은 오프를 뛰며 부지런히 편집을 하고 보정을 해서 영상이나 사진을 올리고, 정리봇들은 보도 자료나 기사를 정리해서 올렸고, 글쓸러들은 열심히 글을 썼고, 댓글러들은 열심히 댓글을 달았다.
능력자들은 그림을 그려 오거나 재미있게 합성을 해서 작품을 만들어 왔다.
오랜 세월 동안 카페를 지켜 오면서 누가 정해 주지 않아도 다들 자신의 능력에 맞게 역할을 찾아갔다.
나는 글을 쓰고, 신박한 댓글을 달고, 배우를 놀리는 역할을 맡은 덕후였다.
또 필요할 때 아이디어를 내주거나 드립력을 발산해 카페 분위기를 즐겁게 하는 역이 나였다.
내 역할에 나는 상당히 만족했다.
나 같은 덕후도 있어야 했다.
다만, 아들이 태어난 후론 아들 덕질이 바빠서 잉여력을 발산할 수가 없는 것이 문제였을 뿐이다.
그래도 간간히 나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카페 활동을 이어오고 있었다.
배우가 일을 해 주기만 한다면, 카페는 언제나 우리에게 즐거운 놀이터가 되는 곳이었다.
일상의 세계는 너무나 힘들고 각박하지만, 덕질의 공간은 유쾌하고 신나는 세계였다.
그게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였다.
나는 배우가 이렇게 간간히 일을 해 주기만 해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이미 평생 일을 안 해도 될 만큼 부자였기에, 지금처럼만 가끔씩 뭔가를 해 준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배우가 아프고 나서부터 더욱 큰 욕심이 없어졌고, 혹여라도 어느 날 갑자기 은퇴한다는 기사를 내가 보게 된다면 너무 슬플 거 같았다.
그냥 이대로 1~2년에 한 번씩만 꾸준하게 작품을 해 주길 바랐다.
그러나 나의 그 바람이 조금씩 무너지게 될 것을 나는 예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