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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드레 Aug 08. 2023

엄마의 건강 염려증

우리 엄마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건강에 대한 불안증이 높다.

고혈압이나 당뇨 등의 기저 질환도 전혀 없으시고 체중도 많이 나가지 않고, 기본적으로 건강 체질이신데도 자신의 몸에 작은 이상이라도 발견하게 되면 큰 병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으로 안절부절못한다.

젊었을 적에 여러 자식을 키워내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다.

그래서 관절도 안 좋으시고 뼈마디가 자주 아프시고 두통도 달고 사신다.

그래도 본인이 스스로 병원을 여러 군데 찾아다니며 꾸준히 진료를 받아 오셔서 그런지 다른 어르신들에 비하면 정말 건강하신 편이다.

그런데도 항상 아프시단다.

고령이시니 당연히 여기저기 아프게 되는 것이 당연한데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신다.

그저 엄마가 보기엔 다른 사람들은 다 건강해 보이고 멀쩡해 보이는데 본인만 아프고 힘들다고 생각하신다.

엄마가 어디가 안 좋으시다고 잘하는 병원을 알아보라고 하면, 자식들은 지인을 동원하고 해서 가장 빨리 진료를 볼 수 있는 전문의를 예약해 드려야 한다.

꼭 전문의여야 하고 일 년 이상 기다려야 하는 진료는 또 안된다.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그 분야의 전문의를 찾아 예약하고 모시고 가야 하는 일의 대부분을 내가 했었다.

결혼하기 전엔 같이 살았으니까.

내가 결혼을 해서 지방으로 내려오면서부터 그 역할을 근처에 사는 오빠나 언니가 해야 했다.

둘 다 직업인이라서 병원을 모셔 가려면 월차를 내야 했다.

대형 병원의 시스템은 진료 의뢰서를  지참해서 초진 진료를 받고, 선생님을 만나 증상을 설명하고 나면 기본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검사 결과를 토대로 어떤 질명인지 어떻게 치료를 해야 하는지 등을 확인하고 그에 따라 후속 조치가 이뤄진다.

그러니까 최소 3번 이상은 시간 차를 두고 병원 방문을 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니 직장 생활을 하는 언니 오빠가 엄마를 돌아가며 모시고 다녀야 하고 시간이 안될 때는 형부까지 동원돼야 한다.

이것이 참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자신의 몸이 조금만 아프면 꼭 종합 병원을 방문해야 하는 사람이다.

동네 작은 병원의 의사들은 믿을 수가 없다는 이유에서이다.

소화가 안된다고 하셔서 시내 대학 병원으로 통원하시다가 증세가 나아지지 않는다고 하셔서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가셔서 모든 검사를 다 하셨는데 별다른 것이 없었다.

또 머리가 아프시다고 해서 신경과 전문의를 찾아서 서울 병원을 유랑했었고, 작년까지는 피부 발진이 낫지 않아서 유수한 병원들을 투어 했었다.

그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결국 언니 오빠는 나가떨어졌다.

중간중간에 내가 엄마 집으로 가서 병원 투어를 돕기도 했다.

신경외과 최고의 권위자인 교수님을 만났을 때는 엄마가 교수님의 말은 듣지 않고 자신의 증상을 과장하여 얘기하는 바람에 엄청 꾸짖음을 받기도 했다.

엄마는 자신이 그 병이라고 혼자 결정을 내리고 나면 아무리 전문의가 그게 아니라고 설명해도 우기려 했다.

결국에 가서는 모든 것이 그렇게 염려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지만 그 과정이 다른 가족을 지치게 만든다.

그런 성향으로 인해 아빠는 이미 오래전 엄마를 포기했고, 자식들도 하나 둘 엄마의 요구나 요청에 부응을 못하게 되고 있다.

그러면서 엄마가 찾은 방법은 동네 할머니들과의 활발한 교류이다.

그 교류를 통해 정보를 얻어 본인이 혼자서 병원 투어를 열심히 다니고 계신다.

집으로 전화를 하면, 아빠가 엄마는 또 병원을 갔다고 투덜투덜하신다.

핸드폰으로 전화하면 자식들이 잔소리할까 봐서인지 받지도 않는다.

처음엔 엄마가 큰 병에 걸렸을까 봐 자식들도 덩달아 불안해한 적이 많았는데 이제는 그저 엄마가 자신의 불안을 달래는 방법으로 투어를 택하신 것을 이해해 드리려고 한다.

그래도 자식들 고생 안 시키겠다고 혼자 전철을 타고 병원을 다니고 하시는 걸 보니 가끔은 짠하기도 하다.

몇 년 전, 김안과에서 오른쪽 눈 백내장 수술을 하셨는데 수술 후 경과가 맘에 안 든다고 왼쪽은 수술을 안 받겠다고 하셔서 예약을 취소했었다.

그러고 나서도 계속 수술이 잘못됐다고 원망을 하시더니 어느 날 갑자기 동네 병원에서 왼쪽 눈 수술을 혼자 가서 받으셨다.

동네 할머니들이 잘한다고 해서 갔다가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말도 안 하고 노인네가 혼자 눈 수술을 겁도 없이 받았다고 내가 화를 냈다.

그래도 본인은 수술이 아주 잘된 것 같다고 김안과에서 했을 땐 눈이 계속 아프고 잘 보이지 않았는데, 이번엔 하나도 안 아프고 훤히 잘 보인다고 수술이 아주 잘 된 것 같다고 좋아하셨다.

엄마가 만족하신다니 정말 다행이긴 했다.

엄마의 건강 염려증은 자식들이 모두 분가를 하고 모든 일에서 손을 떼게 되면서 생겼다.

그전엔 지식들을 키우고 돈을 벌고 손주들을 돌보느라 아플 틈이 없었다.

건강 염려증은 엄마가 이제 자신만을 바라보게 되면서 생기게 된 결과였다.

또 무료함이 낳은 결과이기도 했다.

평생을 자식들에게 헌신하고 노년에 찾은 게 건강 염려증이라는 사실이 참 서글프다.

자식인 나로서는 엄마가 건강을 염려할 겨를을 줄여주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싶다.

엄마랑 여행도 많이 다니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으러 다니고 하면서 엄마가 즐거움을 많이 느끼실 수 있도록 해야겠다.

자주 연락하고 근황을 여쭙고 즐겁게 해 드리려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라도 해서 엄마가 자신의 건강에 몰두하려는 것을 막아보려 하고 있다.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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