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3이 된 아들이 요즘 별거 아닌 거에도 잘 삐진다.
방학이라 나와 많은 시간을 같이 지내다 보니 자꾸만 사소한 일로 갈등이 생긴다.
폭탄 게임이라는 보드 게임을 하면서도 자기가 이길만한 유리한 상황에선 룰루랄라 하다가 내가 전세를 역전시킬 기미가 보이면 엄마는 카드를 늦게 낸다느니, 왜 색깔을 바꾸냐니 하면서 짜증을 낸다.
보통 눈치껏 아들이 기분 좋게 이길 수 있도록 판을 이끌어 가지만, 본능적으로 승부욕이 발동해서 기세 좋게 아들을 이겨 버리면 기분 상해한다.
또, 공부를 같이 하다가 내가 틀린 부분을 지적하면 그냥 고치고 다시 하면 되는데 꼭 짜증이 묻어 있는 말투로 툴툴거려서 나를 화나게 만든다.
아들의 질환을 감안해서 쉽게 화내거나 흥분하지 않는 편이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여러 번 참다가 어느 순간 참지 못하고 무섭고 살벌한 어조로 아들에게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러면 또 그게 서운해서 삐져 가지고는 자기 방문을 닫고 한참을 씩씩 거리거나 울기도 한다.
그럴 때면 그냥 아이의 감정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는데 요즘엔 반나절 이상의 시간이 지나도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아들의 경우,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자신의 감정에 과몰입이 되는 경향이 있는 편이다.
하나의 것에 지나치게 몰두하고 관심 밖 영역의 것에는 쉽게 산만해지는 것이 아들의 주요한 문제점이다.
그래도 확실히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교에서의 수업 태도는 좋아지고 있다.
3학년 담임 선생님과 학기 초 상담을 했을 때, 아이의 질환을 얘기하니 선생님은 전혀 몰랐다고 하셨을 정도로 학교에서 산만한 경향이 많이 없어졌다.
인지적인 부분도 크게 뒤쳐지지는 않는다.
다만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경향이 짙어 자신이 좋아하는 영역은 우수하지만 싫어하는 것은 흉내만 내는 수준이다.
좋아하는 칼림바는 선생님과 친구들이 감탄할 정도로 연주하지만, 리코더는 겨우 흉내 내는 정도이다.
그나마 방학 동안 꾸준히 연습을 시켜 어느 정도 따라갈 정도는 됐지만 연습하는 시간을 너무 싫어했다.
리코더 연습을 할 때에도 조금만 시간이 길어지면 짜증을 엄청 냈다.
확실히 10살이 되면서 자아가 성장해서인지 내가 훈육을 하려고 하면, 나의 어조나 태도 혹은 자신의 의도를 곡해한 나의 실수 등을 따지면서 대들려고 한다.
나는 흥분하지 않고, 나의 실수나 잘못은 깨끗하게 인정하면서 논리적으로 아들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아들은 자신이 분명 잘못했음에도 쉽게 인정을 하지 않고, 내가 오해한 부분에 대해서만 집요하게 따지고 든다.
그럴 때 옆에 있는 남편은 나의 편을 들며 아들의 버릇없는 태도를 지적하며 야단을 치는데, 나는 남편을 제지시킨다.
아들과 나 사이의 문제이므로 남편의 개입은 오히려 아들에게 짜증만 배가시키기 때문이다.
아들이 흥분해 있을 때엔 그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알기에 길지 않고 단호하게 훈육을 하고 끝낸다.
그러고 나면 아들은 삐져서 문을 잠그고 틀어박힌다.
요즘 아들의 감정이 왜 그렇게 기복이 심할까 생각해 보니 방학 동안 아빌리파이를 복용시키지 않고 있는 탓도 있는 것 같다.
지난 4월 정기검진을 다녀왔는데, 천교수님이 이제는 일 년에 한 번씩만 병원에 오라고 하셨다.
사회성 그룹 치료 말고는 필요한 치료도 없고, 약도 증량할 필요가 없으니 자신이 처방해 줄 수 최대기한으로 6개월분 약을 처방해 줄 테니 집에서 가까운 병원을 하나 정해서 나머지 약은 거기서 처방받아 먹이라고 하셨다.
아이와 오고 가고 4시간이 넘는 거리가 부담되고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치료는 약 처방밖에 딱히 없으니 편의를 생각해서 그렇게 해 주신 거였다.
병원에서는 29매에 해당하는 의무기록 사본 증명서와 요양급여회송서를 주었고, 원하는 지역의 신경정신과 목록도 뽑아 주었다.
진단을 받은 지 2년이 지났으니 웩슬러 검사와 주의력 검사를 다시 한번 받아보고 싶다고 했더니 가까운 병원이 정해지면 거기서 검사하고 결과지를 가져오라고 하셨다.
병원을 다녀와서 생각이 많아졌다.
일단, 아빌리파이 2mg을 계속 먹여야 할까 하는 고민이 생겼다.
아들은 이제 수업 시간에 비교적 집중을 잘하고 있었다.
약의 효과보다는 부정적인 피드백을 경험하면서 스스로 조절 능력이 생겼다.
선생님과 친구들로부터 긍정적이고 호의적인 시선을 받게 되면서 더 잘하려고 노력 중이었다.
영어 학원에서는 항상 1등으로 학습을 끝낸다고 원장님이 너무 예쁘다고 전화를 주셨다.
신경안정제인 아빌리파이는 아이를 차분하게 하는 데 약간의 효과는 있지만, 다른 부분은 잘 모르겠다.
워낙 소량을 복용하고 있어 그럴 수도 있다.
방학 때마다 나는 약을 끊고 그 차이를 비교했는데 아이의 행동과 정서 변화에 큰 차이가 없었다.
그래도 주치의는 소량이나마 복용을 권하고 있기에 이 부분은 새로 가게 될 병원의 선생님과 상의를 해야 할 것이다.
둘째는, 또다시 병원을 하나 더 정해야 한다는 것이 고민이다.
분당 쪽으로 리스트를 뽑아와서 여러 곳을 알아봐 두긴 했다.
그중 두 곳 정도를 추려놨고 그중 하나를 정해서 앞으로 길게 다녀야 할 것 같다.
분당 쪽 병원이 아이한테 잘 맞는다면 장기적으로 세브란스보다는 가까운 그곳으로 주치의를 바꾸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아직은 처방받은 약이 많이 남아 있으니 아이의 겨울 방학에 맞춰 예약을 잡고 검사도 다시 받고 해야 할 것 같다.
여하튼 아이는 7월 말부터 약을 중단하고 있는 상태다.
그래서 아들의 감정이 더 예민해져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아이의 감성이 변화할 시기여서 그런 것인지 판단이 되지 않는다.
조만간 개학에 맞춰 약 복용을 다시 시작하면 분명해 질지도 모르겠다.
아들과 오늘도 말투 문제로 한 차례 작은 감정 다툼이 있었다.
다른 사람한테는 웬만해선 그러지 않는데 유독 엄마한테는 신경질적이고 쉽게 맘 상하는 아들과 24시간을 같이 하는 것이 나한테도 스트레스이다.
이제 다음 주면 개학이 되니 나아질까 하는 기대를 해 본다.
아들에게 엄마랑 싸우면서 하루 종일 붙어 있는 게 좋냐고 물으니 학교 가는 것보다 엄마랑 같이 있는 게 더 행복하다고 답을 한다.
엄마를 사랑해서 그런다고 하는 아들을 어찌 미워할 수 있을까.
에....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