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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드레 Oct 24. 2023

다음에도 볼 수 있을까

이번 달에도 미용 봉사를 다녀왔다.

맨 마지막으로 방문한 어르신은 올해 100살이 되신 분이다.

두 달 전에 처음 머리를 자르러 갔을 때, 어르신을 뵈었는데 100세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하셨다.

머리숱은 없으셔도 피부도 좋으시고 기력도 80대 못지않게 좋아 보이셨다.

다만, 청력이 약해져서 크게 말하지 않으면 잘 못 들으셨다.

그래도 처음 본 나에게 환하게 웃으며 맞아 주시고, 자기를 위해 멀리까지 와 준 게 고맙다고 하셨다.

아이처럼 맑고 선한 인상이셔서 기억에 많이 남았었다.

주택에 혼자 사시고 계신데, 딸이 매일 들러 아버지를 돌보고 요양보호사 선생님도 매일 오셔서 살피고 계셨다.

두 달 만에 갔더니 마당에 온통 도토리가 널려 있었고, 고구마도 주워 오셨는지 마당 한 편에서 말려지고 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니 여전히 정정하신 모습으로 반갑게 맞아 주셨다.

말수가 적으시고 점잖으신 편이라 많은 말씀을 하지 않으신다.

옆에서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어르신의 정보를 알려 주셨다.

매일 오는 둘째 딸이 아버지 움직이게 하려고 일부러 일거리를 만들어 놓고 간단다.

도토리를 주어다 주면, 어르신이 햇빛에 말려 하루 종일 까고 계신다고 했다.

그래서 옷도 흙투성이가 되기 일쑤고 허리도 아프실 때도 있지만 쉬지 않고 작업을 하신다고.

워낙 근면하고 성실한 분이시라 자신에게 맡겨진 과업이라 생각하고 꾸준히 하고 계시다고 했다.

힘들어 보여서 그만하고 쉬시라고 해도 어르신은

"딸이 나를 생각해서 가져다준 거니까 다 해 놔야지."

하면서 열심히 정말 열심히 도토리를 까신다고 했다.

딸이 셋이고, 아들이 하나 있는데 서울 사는 큰 딸은 자주 오지 못하고 나머지 자식들은 자주 어르신을 방문한다고 하셨다.

특히 둘째 따님이 매일 들러 일거리도 만들어 주고 말동무도 하다 가신다고 했다.

혼자 계셔도 자식들이 수시로 드나들고 아버지께 한결같이 잘하니 어르신이 스트레스가 없어 보인다고 하셨다.

항상 평온하고 안정된 모습으로 계신다고, 성격도 깔끔하시고 사람 대하는 것도 항상 예의에 어긋남 없이 하는 분이라고 하셨다.

깔끔하게 머리 손질을 해드리고 거울을 보여 드렸더니, 해맑게 웃으시며 좋아하셨다.

내 눈을 빤히 쳐다보시며

"다음에 또 볼 수 있을까?" 하신다.

저번에도 저렇게 말씀하셨었다.

"그럼요! 저 담에 또 올 거예요. 그때까지 건강하셔야 해요!!"

허허허 웃으시며 조심히 가라고 하셨다.

인사를 드리고 햇빛 가득한 어르신 집을 나섰다.


돌아오면서 복지사 선생님과 어르신 얘기를 했다.

"우리도 백 살에 어르신 같은 얼굴일 수 있을까요? 너무 평안해 보이고, 선해 보여요."

"그렇죠? 아마 신앙이 있으셔서 더 그러실 거예요, 교회 장로로 계시다가 은퇴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세상에 연연하는 게 없어서 그러신 거 같아요.

어르신 젊었을 적 사진을 본 적이 있었는데 지금이랑은 느낌이 많이 다르더라고요."

"진짜요? 의외네요."

"그렇죠? 저도 그래서 한참을 다시 봤었어요. 그때는 강하고 고집스러운 모습이었어요.

인생에 굴곡이 없는 분은 아니신 거 같아요.

다만, 살아오면서 신앙이 영향을 끼친 건지 굉장히 순하고 유한 분위기가 되신 것 같아요."

"그렇군요. 노년엔 그게 중요할 수도 있겠네요."

"네, 수많은 어르신들을 상대하면서 노년의 삶도 천차만별이란 걸 알게 됐죠.

어떤 분들은 진짜 하루하루를 죽지 못해 사는 분들도 있고, 생활에 찌들어 여유 따위는 전혀 없는 게 얼굴 그대로 드러나는 분들도 많고, 저렇게 고운 얼굴인 분들도 소수긴 해도 있어요."

"우리도 어떻게 늙어 갈지 알 수 없네요."

"그렇죠, 중요한 건 경제적인 부분이랑 가족과의 관계인 거 같아요.

일단 경제적인 부분이 여유가 있으면 스트레스가 적으니까요.

그리고 자식들이나 배우자의 관계가 좋은 분들도 행복한 얼굴이시더라고요."

"많이 노력해야겠네요. 노후에 대한 대비도 잘해 두고.

가족 사이의 관계도 친밀할 수 있게 잘 챙기면서 살아야겠네요."

"쉽진 않지만, 100살에 편안한 얼굴로 살 수 있길 바라면서 열심히 살아봐야죠."

복지사 선생님과 이런 이야기를 한참을 했다.

나도 100살에 그 어르신 같은 얼굴이고 싶다고 생각했다.

많은 것을 가지진 못해도 욕심 없이 평범한 하루하루의 삶에 감사하며 몸과 마음이 건강한 모습으로 노년을 살고 싶다.

그게 내 마음대로 되어 줄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그 어르신을 계속계속 만나 이발을 해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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