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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드레 Oct 16. 2023

호빵의 계절

아들이랑 마트에 갔다가 호빵이 나온 것을 보았다.

벌써 호빵의 계절이 돌아왔나 하면서 냉큼 집어 왔다.


어릴 때 슈퍼마다 이런 호빵 기계가 비치되어 있었다.

추운 날, 손을 비비며 슈퍼에 가서 "호빵 주세요!" 하면, 아저씨가 이 기계의 문을 열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호빵을 집어 내 손바닥에 올려 주셨다.

이 찜기는 호빵을 낳아 고이 키워 나에게 전달해 주는 호빵의 엄마 같았다.

아래 종이를 조심조심 벗겨 가며 뜨거운 호빵을 후후~ 불면서 먹는 것이 너무 좋았다.

호빵 하나에 얼어붙었던 몸이 따스해지고 행복해지는 것 같았다.

호빵을 떠올리면 가로등이 켜진 골목 어귀에 불을 밝힌 채, 밖에다 내놓은 호빵 찜기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던 슈퍼의 정겨운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은 슈퍼도 많이 사라지고, 이런 기계도 많이 볼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그때는 팥이 들어간 호빵만 있었는데, 호빵의 종류가 꽤 다양해졌다.


피자 호빵, 야채 호빵, 치즈 호빵, 고구마 호빵, 로제 호빵, 치즈 불닭 호빵까지 현대인의 기호에 맞게 변화하고 있다.

우리 아들은 피자 호빵을 제일로 좋아하는데, 나의 최애는 역시 원조 팥호빵이다.

다른 맛들은 원조의 그 추억을 따라갈 수 없다.

지금은 음식이 남아돌고 온갖 먹을거리가 난무하는 시대를 살고 있기에 호빵 하나에도 따스함을 느끼던 옛날의 그 소소한 행복을 찾아볼 수가 없다.

너무 풍요로워서 놓치고 사는 것들이 많아졌다.

그것이 못내 아쉽고 서운하다.

아들과 호빵을 쪄서 아래 포장지를 벗겨 반으로 갈라 뜨거운 호빵을 후후 불어 가며 먹었다.

아들에게 베이커리 빵이 좋냐 호빵이 좋냐 물으니 둘 다 좋단다.

호빵은 호빵만의 맛이 있어서 좋다고.

잔잔하고 투박하지만 따스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던 시대를 경험했던 엄마의 시대를 너는 결코 알 수 없겠지.

너는 너의 시대를 살아가고 나는 나의 시대를 관통해서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

지금은 참 빠르고 편리한 시대이지만 엄마는 가끔 흑백사진 같은 그 시대가 그립단다.

다시 돌아갈 수 없어서 더 그리운 것 같기도 하다.

다시 호빵의 계절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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