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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드레 Oct 14. 2023

고구마 이삭 줍기의 계절

바야흐로 고구마 시즌이 도래했다.

내 서식지는 고구마를 대단위로 재배하는 농가가 많다.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넓은 밭 여기저기에서 고구마를 수확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이 시기가 되면 나에게 전화를 해서 고구마 이삭을 주우러 가자고 하는 언니가 있다.

고구마 줄기가 박혀 있는 곳을 기계로 일궈내고, 아줌마들이 죽 앉아서 뽑혀 나온 고구마를 줄기에서 따서 커다란 박스에 담으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고구마 밭에 투입된 인력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고구마를 따고 커다란 트럭에 고구마 상자를 날라다 겹겹이 쌓고 트럭과 인력이 떠나고 나면, 그 이후 이삭 줍기가 허용된다.

항상 제일 먼저 그 마을의 주민들이 카트와 자루, 곡괭이 등을 지니고 작업복 차림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연락을 받은 지인들과 빠르게 소식을 접한 사람들이 밭으로 몰려든다.

막 수확이 끝난 고구마 밭은 금맥이나 다름없다.

기계에 닿지 않아 그대로 남아 있는 고구마나 아줌마들이 미처 수확하지 못한 고구마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밭이 워낙 넓다 보니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도 전혀 붐비지 않는다.

흩어져서 자신의 능력에 따라 부지런히 남아 있는 고구마를 캐거나 줍기에 바쁘다.

도시녀인 나는 처음에 이삭 줍기를 따라갔을 때 분별하지 못하고 아무거나 담아와서 거의 다 버려야 했다.

상처가 있거나 심이 박혀 있거나 검은빛이 있는 것은 가져와도 먹을 수 없는 것이다.

그걸 몰라서 몇 번은 쓰레기 양만 늘렸었다.

상품 가치가 있는 것들은 대부분 인력들의 손에 없어졌고, 크기가 작거나 약간의 손상이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밭을 들어서서 자세하고 꼼꼼하게 살피다 보면 멀쩡하고 튼실한 것들도 많이 찾을 수 있다.

또, 기계가 파 놓고 간 자리를 호미로 파다 보면 땅에 박혀 있는 고구마를 캘 수도 있다.

몇 년간 이삭 줍기를 따라다니다 이제는 전문가가 되었다.

언니는 어제 지나다 보니 작업을 하고 있었다면서 오늘 아침에 가면 이삭 줍기를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아이가 어릴 땐 흙장난을 너무 좋아해서 이삭 줍기를 같이 데려가면 하루 종일 밭에서 흙을 파면서 놀았었다.

밭 한가운데 돗자리를 깔아 놓고 포클레인이나 덤프트럭 장난감도 가져가서 공사장 놀이를 하고, 먹을 것을 싸 가서 먹으면서 놀고는 했다.

그러던 아이는 이제 흙 묻는 게 싫다면서 돗자리에 앉아 휴대폰을 하는 잼민이가 되었다.

하여튼 재미없는 아이가 되어 가고 있다.

아이 등교를 시키고 작업복 차림을 하고 언니를 픽업해서 밭으로 향했다.

밭에 도착했더니 벌써 사람들이 이삭 줍기를 하고 있었다.

부지런한 사람들 같으니!

밭으로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고구마를 찾기 시작했다.

막 고구마를 캔 밭이라 굵직굵직한 것들이 제법 남아 있었다.

위로 삐죽이 나와 있는 고구마가 보여 조심조심 주변 흙을 호미로 파 내려갔다.

마침내 흙 속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던 그 녀석을 뽑아내 흙을 털어 내고 보면 너무 이쁘다.

이 맛이다. 바로 이 맛.

이 맛에 이삭 줍기를 하는 것이다.

고구마는 보통 모래흙에서 잘 자란다.

모래가 섞인 밭을 밟으며 그 흙을 손으로 만지며 팔 때면 기분이 너무 좋다.

넓고 광활한 밭에 주저앉아 온전히 흙에만 집중하면서 고구마를 찾고 있으면 다른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는다.

나는 힐링을 하기 위해 고구마 이삭 줍기를 따라다니고 있다.

고구마는 사 먹으면 그만이지만 흙 속에서 살아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경험은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한두 시간 정도면 한 봉지를 캘 수 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허리가 안 좋은 나에게는 힘이 드는 작업이기에 딱 두 시간 정도만 이삭 줍기를 하고 온다.

그렇게 땅을 파는 노동을 하고 나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그것은 기분 좋은 땀 흘림이다.

고구마 이삭 줍기를 하러 다니는 나를 위해 작년에 남편이 시간을 할애해 공장 땅에 한 두둑으로 고구마를 심었었다.

수확을 하러 갔었는데 줄기에 줄줄이 매달린 고구마를, 고랑을 따라 캐는 작업을 금방 끝냈다.

작은 박스로 두 박스 정도 수확이 되어서 언니네와 나눠 먹었었다.

근데 그건 이삭 줍기보다 재미가 없었다.

이미 예상이 되는 뻔한 위치에서 쉽게 찾아지는 고구마 보다 어디에 있을지 알 수 없는 그 미지(未知)의 고구마를 찾는 것이 더 스릴이 있다.

또, 엄청 넓은 밭을 마구 휘저으며 다니는 자유의 느낌이 이삭 줍기에는 있는데 농사지은 고구마밭엔 그것이 없었다.

이삭 줍기는 無에서 有를 찾는 것이고, 농사는  有에서  有를 찾는 것이기에 재미가 덜 한 것 같다.

하여튼 내가 이삭 줍기에서 느끼는 힐링을 심은 고구마에서는 많이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해서 올해는 고구마를 심지 않았고, 나는 이렇게 이삭 줍기를 하고 있다.

두 시간 동안의 힐링의 노동을 한 후에 집에 돌아와 주어 온 고구마를 베란다에 죽 늘어놓고 말리고 있다.

그걸 바라보고 있으니 너무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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