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15일 목요일 이야기
내일은 연차를 냈다. 올해 여름휴가를 갈 계획은 없고, 가능하다면 연말을 이용해서 배우자와 함께 겨울 휴가를 갈 생각이니 여름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연차를 쓰는 정도로 그칠 생각이었다. 그리고, 6월의 그 하루는 바로 내일이 될 예정이다.
그래서 기분이 좋다. 즐겁다. 연차라는 것이야말로 직장인을 완성하는 그 무엇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하루를 온전히 쉰다는 생각, 그리고 그 뒤에 주말이 이어진다는 생각만으로 즐겁다. 레몬 파우더를 탄 생수를 마시며 키보드를 두드리는 이 시간이 아름답게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그 휴식 앞에 있던 오늘 하루는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는 하루였다. 바쁘고 또 바빴다. 그리고 이리저리 꼬인 일정들이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재무 부서와 협의를 위해 한참 입씨름을 했고,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전화통에 불이 날 지경이었다. 메신저는 초마다 하나씩 메시지를 뱉어내는 것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여유로움이 정말 소중하다.
연차를 쓴다고 해서 내 하루의 루틴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오늘 아침 5시 반에 눈을 자연스럽게 떴다. 원래 맞췄던 알람은 6시. 하지만 내 몸은 자연스럽게 그 알람 이전에 눈을 뜬다. 새벽에 근무했던 경험 이래, 새벽에 자연스럽게 눈이 떠지는 것을 어떻게 하기 어렵다.
약속을 예정하고, 어제 아침에 냉장고에 넣어 하루를 묵힌 오트밀과 커피로 아침을 해결한다. 아직도 남는 시간 동안 무엇을 할 것인지 결정을 못 내린 상태다. 바깥에서 무언가를 하기에는 짧고, 안에서 무언가를 하기에는 터무니없이 길다.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에 눈길이 간다. 이것도 좀 줄여야 하는데 말이다.
사놓고 아직 읽지 못한 E북을 잠시 넘기다 접는다. 눈이 피로하다. 잠든 시간은 자정 좀 너머, 일어난 시간은 5시 반. 잠이 절대적으로 모자라다. 주말에 보충한다 해도, 결코 건강에는 좋지 않을 텐데. 하지만 눈이 자연스럽게 그때를 골라 떠진 것을 어떡하겠나.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출근 버스를 타러 나선다. 그때까지는 이렇게 정신없는 하루를 예상하지 못했다.
내일 연차의 시작도 오늘 아침과 비슷할 것이다. 아니, 조금은 더 늦게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좀 느지막이 잘 생각이니까. 나는 휴일에는 알람을 8시로 바꾸어 둔 채 잠드는 습관이 있다. 역시 아침으로 먹을 오트밀을 불리는 게 먼저일 것 같다. 냉장고에 오트밀을 넣어둔 채, 연차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고민한다.
무언가 글을 써 볼까? 하지만 아직 무엇을 주제로 할 것인지 결정하지 못했다. 주제 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써 볼까? 하지만 그것은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나를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을 때 글을 쓰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 편이 더 재미있으니까.
아니면 번역을 할까? 아직 미뤄둔 번역이 있다. 대략 200페이지 중 절반 정도를 번역한 채, 남겨둔 소설이 있다. 그쪽에 손을 대 볼까 고민한다. 하지만 취미답게, 내가 내켜야 하는 게 번역이란 것 아니겠는가.
나는 내일의 내가 할 일을 미리 정하지 않는다. 내일의 내가 거기에 안도하며, 새로이 할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