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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레드넛 Jun 02. 2023

다시, 프로 글쟁이

거듭되는 글쓰기의 맛

어쩌다, 프로 글쟁이


내가 처음으로 브런치에 쓴 글의 제목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이가 없을 지경이기도 하다. 그 글을 처음 쓸 때의 나는 직업적으로 글을 쓰게 된 지 고작 2년을 맞은 정도에 불과했으니까. 무슨 자신감으로 자신을 프로 글쟁이라고 소개했는지 모르겠다. 정작 직접 글로서 벌어들인 돈은 사실상 없는 주제에 말이다.


그렇다. 나는 내 이름으로 출간한 책도 없고, 내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내보낸 글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글로 돈을 벌고 있다. 내 직업은 여전히 글을 쓰는 사람이다. 정확히는, 남을 위한 원고를 쓰는 사람이다. 나는 그렇게 밥벌이를 하고, 부인과 맛있는 것을 먹으며, 월세날이 다가올 때마다 두려움 없이 척척 월세를 낸다. 나는 월급쟁이이자 글쟁이이다.


어쨌든, 실력을 떠나서, 내가 글로 밥벌이를 하는 프로 글쟁이의 세계에 발을 디딘 것은 이제 5년을 맞이한다. 물론, 그 내내 똑같은 종류의 글을 써 온 것은 아니다. 첫 4년, 그리고 지금 맞이한 5년째 되는 해의 글은 상당히 다른 종류의 글이니까.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동일한 성격이기도 하다. 바로 남에게, 나의 의견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한 글이다.




회사원들의 목소리가 파워포인트와 엑셀의 세계에서 만들어진다면, 나의 목소리는 워드프로세서를 통해 만들어진다. 그리고, 내가 만들어낸 이 목소리를 통해 우리 회사의 목소리가 만들어지며, 그렇게 만들어진 목소리가 언론을 향한다. 내가 만들어낸 표현이, 내가 정의내린 것들이, 내가 규정한 성격이 언론의 기사가 되어 퍼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향한다. 참 신기한 경험이다.


대신, 거기에 '내' 목소리는 없다. 나는 일종의 '유령 작가'다. 회사를 위한 글쓰기에서, '내' 목소리가 들어가는 순간 회사에는 비상이 걸릴 것이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훨씬 정제되지도 못하고, 압도적으로 천박하다. 하지만 나는 회사를 위해 그 뜻을 최대한 누르고 누르고 누른다.


그렇게 내 글을 하나씩 꺾고, 남을 위한 글이 하나씩 빚어진다. 월급은 나오고, 먹고 살 정도는 족히 된다. 그러면서 속은 탄다. 여기서는 이렇게 가면 어떨까, 저기서는 저렇게 가면 어떨까. 그런 생각으로 애가 끓을 뿐, 그 생각을 토해낼 곳이 없다.




어느 순간, 우리 회사는 기울었다. 여전히 업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지만, 작년 큰 건에서 수주를 놓치며 큰 타격을 입었다. 큰 건에서 수주를 놓치면서, 경쟁사가 그 뒤에 이어진 큰 건까지 모두 따냈다. 아직 몇 년 전 거뒀던 큰 실적 덕분에 버티고는 있지만, 쉽지는 않다.


그리고 이제, 다음 큰 건의 수주전이 다가오고 있다. 전망은 밝지 않다. 물론 큰 건을 연이어 따낸 경쟁사가 제 분에 맞지 않는 일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지만, 큰 수주전에서 연이어 밀린 회사를 선택하는 것도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닐 테니까. 그 과정에서 나는 최선을 다해야 할 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기울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여기서 내 글쓰기를 돌아본다. 내가 무엇을 위해 글을 써 왔는지 정리하고, 내가 익혀 왔던 요령을 하나씩 살핀다. 그리고, 전심전력으로 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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