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글인지 생각했나요?
내가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삼아 밥벌이를 한다고 말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나누어 보자면 두 가지였다.
하나, "우와, 회사에서 그런 일을 할 수도 있구나?" 라며 신기해하는 반응.
이 경우는, 이 이상도 이 이하도 아니다. 그 이상의 궁금증은 거의 없다. 그냥 내가 그런 일을 하고 있다는 새로운 정보를 입력했을 뿐이다. 그러니 여기까지, 끝.
둘, "우와, 그러면 너 글 되게 잘 쓰겠네? 나는 도무지 글을 쓰려고 하면 잘 안 되던데."
이 경우는, 확실히 다르다. 100에 90은, 이 뒤에 이어지는 후속 질문이 있다.
"너는 어떤 식으로 글을 써?"
사실 좀 지겨운 질문이다. 솔직히, 내가 비록 밥벌이로 글을 쓰고 있지만, 나는 내가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남보다 좀 빠르게 쓰는 것 외에, 내 글이 특별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거기다 상당히 무미건조한 글인지라, 별 재미가 없다. 내 개인의 문체와는 제법 거리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아는 것은 있다. 어떻게 쓴 글이 망하는지에 대해서는 좀 안다고 자부한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이다.
"존경하는 판사님."
재판을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현이다. 재판의 시작을 알리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리고, 글을 쓰는 데 있어서 반드시 생각해야 할 문장이기도 하다. 어째서일까?
잠깐 과거로 돌아가 보자. 나는 학원 강사로 일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내 경험상, 실패하는 강사들의 패턴이라는 것이 있다. 나 역시 여기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실패하는 학원 강사들의 패턴은 간단하다. 학생들의 수준을 감안하지 않고, 내가 아는 모든 것을 갑작스러우리만큼 쏟아내는 것이다.
글 역시 이와 똑같다.
우선, 글을 써야 하는 상황이 왔다고 가정해 보자. 글의 시작은 무엇인가? 첫 글자를 쓰기 시작하는 것? 서두에 넣을 기발한 비유를 떠올리는 것? 아니면, 쓰라는 지시가 떨어지는 것?
셋 다 틀렸다. 정답은, ‘내가 누구에게 글을 쓰고 있는 것인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재판의 당사자들의 주장을 듣고 판단을 내리는 주체는 판사다. 마찬가지로, 논술 답안지를 보는 것은 교수님이고, 보고서를 읽는 것은 보스의 몫이다. 소설을 쓴다면, 당신이 목표로 한 독자들이 읽어야 한다. 결국, 독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글이어야 한다.
보도자료 등을 만들 때 극도로 기피하는 표현이 있다. 보도자료는 기자들이 읽게 되는 글이지만, 기자들은 진짜 독자가 아니다. 기자들은 그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기사를 만들 뿐이다. 결국 이 경우, 보도자료의 목표가 되는 것은 고객들이다. 이 고객을 '계몽'하려는 듯한 용어는 보도자료에서 절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고객의 '편의'를 위한 제품이지, 고객을 '계몽'하는 것은 오만 그 자체다.
글이라는 것을 쓸 때, 제일 먼저 시작해야 하는 것은 내가 누구에게 글을 쓰고 있느냐는 것이다. 이것이 기본이고, 당연한 일이다. 이 글을 읽는 당사자가 누구이냐에 따라서 어휘가 바뀌고, 문체가 바뀌며, 글의 서술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기본 중의 기본이어야 하겠지만, 우리는 여기에 실패한다. 우리의 글쓰기는 대개 논술 시험을 보던 시절에 멈춰 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항들을 최대한 욱여넣은 다음, 어떻게든 분량을 채워 넣는 것에 집중해 있는 것이다.
회사에 후배들이 들어온 뒤, 그 친구들이 쓴 글을 몇 번 봐준 적이 있다. 우리 회사는 전공을 그렇게 중요하게 보는 회사는 아니지만, 인문계 출신들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하나같이 같은 문제가 있다. 인문계 특유의 분량 채우기를 위한 만연체가 묻어나는 그런 글,
우리 회사에는 전혀 맞지 않는 글이다. 우리는 짧게, 간결하게, 한눈에 알아보고 요점을 잡을 수 있게 하는 그런 글을 써야 하는 회사다. 그렇기에, 철저하게 다시 익히고 배워야 한다. 그 연습부터가 우리 회사 방식에 맞는 글쓰기의 시작이다.
어쨌든, 기본 중의 기본은 내가 누구를 대상으로 글을 쓰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이 기본을 잡지 않는 한, 내가 아무리 글을 쓴다 해도, 제대로 읽을 리가 없다. 글을 읽게 될 사람이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그런 글, 그게 내가 목표로 하는 글이고 우리가 써야 할 글이다.
물론, 정작 나조차 거기 성공하고 있는지는 장담하지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