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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레드넛 Jun 02. 2023

어쩌다, 프로 글쟁이

한 꼬마가 프로 글쟁이가 되기까지의 이야기


* 2020년 처음 써 놓고 묵혀두던 글입니다


사람들이 직업을 물을 때 나는 이렇게 답한다.


나는 프로 글쟁이다.


나는 말 그대로 프로 글쟁이다. 내 업무는 글 쓰는 일이고, 글을 써서 먹고 산다.

내 글 한 문장에 회사의 방향을 담고, 한 마디를 통해 사회를 바꾼다.

그런 일을 하고 싶어서 여기까지 온 건 아니었지만.




처음으로 글을 쓸 때가 떠오른다. 정확히는, 학교에서 주어지는 숙제가 아니라 나 자신이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썼던 글. 스케치북 뭉치에 그림까지 넣어 가며 “야-축-농 신문”이라는 제호로 1호 글을 만들었다. 한창 스포츠에 막 관심을 쏟기 시작한 초등학생답게. 야구, 축구, 농구라는 3대 메이저 스포츠를 모두 다루겠다는 어마어마한 야망이었다.


물론 초등학생답게, 뜨겁게 타올랐던 글에 대한 열정은 순식간에 식었다. 생각해 보면 그때 즈음에 집에 처음으로 286 컴퓨터가 생겼다. 컴퓨터에 관심이 많던 아버지 부하직원 분이 깔아주고 간 프린세스 메이커 2가 내 관심을 독차지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내가 쓴 첫 글은 사라졌다.


교훈 1 : 어린아이가 글을 쓰는 건 오래가지 못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그때 글 쓰는 것이 대한 독려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한다.


어쨌든 난, 일기 쓰는 것도 습관 붙이지 못했다.




그 이후 내가 다시 글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밀리터리 스릴러, 그러니까 전쟁소설을 읽게 되면서였다. 역시 어린아이다운 마음으로 군사무기에 열광하던 그 시절이다. 물론 지금도 그 분야에 대한 애정은 식지 않았지만, 그때와 같은 관심이냐 묻는다면 그렇지는 못하다. 나도 한 번 내 이름을 단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1화를 썼고, 당시 활발히 활동하던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그리고 손절했다. 난 비평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내 오류를 수정할 생각이 없었다. 내 지식은 어설펐고, 그 판에서 나름 굵었다고 생각한 잔뼈는 잔가시 수준도 못 됐다. 그냥 빠르게 도망치는 걸 택했다.


내 컴퓨터 한편엔 아직 그때의 원고가 있다. 하지만 아마 다시 꺼낼 일은 없을 것 같다.


교훈 2 : 비평을 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글을 쓸 준비도 안 된 것이다. 나는 그때 너무 어렸고, 비평과 비난을 구분하지 못했다.


모든 비평가가 이런 건 아니다. 하지만 저 과정은 거쳐야 한다. 내 글이 완벽하지 않다는 걸 처음 익히는 순간.




그리고 내가 다시 글에 관심을 두게 된 건 고등학교에 가서의 일이다. 더 정확히는 반지의 제왕을 읽고, 더더 정확히는 실마릴리온을 읽고 나서였다. 나도 나만의 세계관을 만들고 싶었고, 그 세계관을 통해 무언가를 쓰고 싶었고, 그리고 더 나아가 돈도 벌고 싶었다.


그 시도는 내 글쟁이 역사에서 가장 긴 원고를 남겼다. 나는 A4에 10포인트로 거의 60장에 이르는 거대한 세계관을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 글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때 판타지판에 맞지 않는 글이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그리고 1년 뒤, 눈물을 마시는 새가 나왔다. 젠장.


교훈 3 : 쓴 글은 남에게 보여야 한다. 글 쥐고 관에 들어갈 게 아니라면. 내가 아무리 장엄한 서사시를 만들어도 누구도 모르는데 무슨 의미가.


투탕카멘도 발견되지 않았다면 아무도 몰랐다.




나는 국문과에 가고 싶었다. 지금의 내가 보면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국문과에서 우리말에 대해 심도 있게 배우고, 전업적인 작가로 훈련받고 싶었다. 국문과를 말하면서도 국문과를 제대로 몰랐던 거다. 어쨌든, 그 시도는 출발도 하기 전에 꺾였다.


널 국문과 보내려고 뒷바라지한 게 아니다.


난 인문학부에 들어갔지만, 국문과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저 말이 너무 뇌리에 깊게 남아서.


교훈 4 : 글을 써서 먹고살고 싶다면 그럴 각오도, 남을 설득할 재주도 있어야 한다. 다만, 그때의 나에겐 너무 가혹한 교훈 아니었을까?


이거라도 읽었어야 했나.




그리고 글과 담쌓고 살았다. 내 글은 오직 논술을 위해 쓰였고, 대학에 가서는 리포트와 소논문, 그리고 취업을 위한 자기소개서를 위해 쓰였다. 글에 대한 열정은 식었다. 나는 더 이상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문과답게, 남보다 그럭저럭 잘 쓴다는 막연한 생각만 남길 생각이었다. 그냥 평범한 사무직 직원으로 살고 싶었다. 나름 알아주는 대학에 간 만큼, 고시를 봐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고시를 봤고, 실패했다. 비싼 수업료였다. 나는 인생에 대입 이후 두 번째 실패를 맛봤다. 고시는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니, 도망이었다. 고시에 붙을 자신이 없었다. 3년의 수험은 그렇게 끝났고, 나는 입대를 통해 고시의 장에 종지부를 내렸다.


나는 고시가 요구하는 식의 글쓰기에 실패했고, 그런 글을 잘 쓸 자신도 없었다.


교훈 5 :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아니라면 글을 쓸 수 없다고? 사실이다. 나 자신조차 설득할 수 없는 글을 누가 읽겠는가?


그때의 내 심리상태가 딱 이랬다.




용케도 나는 마지막 학기에 바로 취업하는 데 성공했다. 회사는 학기 중인 5월부터 출근할 수 있는지 물었고, 나는 조심스럽게 교수님들께 그게 가능할지를 여쭙기로 했다. 뭐, 조심스러웠다는 건 어디까지나 내 기준에서였지만.


나는 그룹 메일로, 다만 수신 참조는 가린 채 교수님들께 F만 면해 주실 것을 요청하는 메일을 보냈다. 사실 개별적으로 메일을 보낼 수도 있지만, 애초에 찾아뵙는 게 귀찮아서 (죄송합니다 교수님들!) 메일을 보내는 건데 그렇게 성의를 들일 리가 있나. 최대한 모호한 단어를 골라 교수님이 그게 단체메일이란 걸 모르게 하는 정도, 가 내가 기울인 성의의 마지막이었다.


다른 교수님들은 적당히 넘어가 주셨지만, 한 교수님만은 달랐다.


티를 안 내려고 하는데, 문장이 굉장히 모호하네요. 개인 메일이 아니라 단체 메일로 보내고서 아닌 척하는 것 같은데?


교훈 6 :교수님은 다 알고 계신다... 는 건 농담. 글의 독자는 이 글이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 건지 알 수밖에 없다. 누가 읽을 것인지 타게팅이 불명확한 글은 티가 난다.


타게팅이 명확하지 않으면 나오는 반응.




어쨌든 어찌어찌 다니게 된 회사에서 내가 처음 모신 부서장은 국내 굴지의 광고기획사에서 카피라이터로 근무했던 분이었다. 그분께 참 많은 걸 배웠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아마 보고서 쓰는 법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당연히 문과적인 글쓰기에는 꽤 익숙해져 있었다. 그때의 내 문체는 더 정확히는, 분량을 늘리기 위한 만연체에 가까웠다. 부끄럽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어쩌겠나. 과제는 해야 하고 시간은 없었던 걸.


처음 내가 쓴 보고서를 본 국장님은 한숨을 푹 쉬고선 담배를 비벼 끄셨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고칠 지점을 지적해 주셨다. 그런 지적들은, 내가 들어가게 된 대형 프로젝트가 종결되는 6개월 후까지 계속 이어졌다. 그 6개월 동안 나는 단 한 주도 빼먹지 않고 토요일 출근을 했다. 혹은 일요일도.


그 대신, 나는 글쓰기 기술을 빠르게 익힐 수 있었다. 상사를 설득할 수 있는 글쓰기를 말이다.


교훈 7 : 다행스럽게도 좋은 지적을 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익숙해지고 확실히 내 것이 될 때까지 거듭 묻고 또 물어야 한다. 비평은 항상 소중하다.


하지만 난 영웅이 아니니까 공부를 해야 한다.




내가 처음 맡았던 업무는 회사의 공식 SNS 계정을 운영하는 일이었다. 공식 SNS 계정은... 지옥이다. 말 그대로. 회사의 경영 방침을 맘에 들어하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이 가장 간단하게 항의할 수 있는 방법은? 공식 SNS 계정을 찾아가 항의를 퍼붓는 거다. 내 일은 그 계정 뒤에 숨어 있는 욕받이 무녀. 그 업무를 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 업무를 통해 다시금 깨달았다. 모든 사람이 내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아주 사소한 표현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분노를 만든다. 그리고 그 분노를 받아내는 것은 오롯이 작가의 일이다. 작가는 스스로의 멘털 관리를 위해서도 표현을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


교훈 8 : 모든 사람이 나의 글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나의 글을 싫어하지 않을 수 있게는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글쟁이 본인이 오래갈 수 있다.


다시 나온 일진 펭귄들. SNS는 지옥이다.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강해져야 한다.




내가 부서를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처음 든 것은 이 부서에서 내가 해 볼 수 있는 일은 다 해 봤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였다. 그때 우리 회사는 정말 혁명적인 일을 해냈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성과를 거뒀으며, 한 발 더 나아가 업계 선두로 치고 올라가는 국면에 있었으니까. 이제 더 이상 도전이 아닌, 수성에 포인트가 맞춰질 때였다.


내 보고서들을 다시 살폈다. 새로운 사업에 대한 기획도, 실행안도 없었다. 높으신 분들을 설득하기 위한 어떤 기교도 재주도 없었다. 이제 남은 건 지금까지의 사업을 어떻게 안정적으로 굴릴 것이냐에 대한 것들 뿐이었다.


이제 더 이상 글쟁이로서의 도전은 없었다. 떠날 때였다.


교훈 9 : 글쟁이에게 도전의 끝은 죽음이다. 새로운 무언가를 계속 쓰지 못한다면 글쟁이는 더 이상 글쟁이가 아니게 된다.


그래도 이런 도전은 아니다. 묻을 건더기라도 있어야...




나는 부서를 옮겼다. 익숙한 부서를 떠난다는 두려움 반, 새로운 일을 배운다는 기대감 반. 그리고 정말 생각지도 못하게, 프로 글쟁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할 수 있는 업무를 받게 되었다. 지금까지 갈고닦았던 교훈들이 고스란히 적용되는 바로 그 일이다.


놀라운 일이다. 글을 포기했던 나는 이제 글로 먹고 산다.


교훈 10 : 글쓰기는 언젠가 당신을 운명처럼 찾아온다. 그걸 놓치지 마라.


깨어나라 글쟁이여. 언제 그때가 올 지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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