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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거북이 Feb 23. 2020

'너는 알아서 잘하잖아.'라는 말의 함정

나는 첫째 딸이다. 나에겐 1살 어린 남동생이 있다. 어릴 땐 나보다 동생을 더 예뻐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동생을 더 예뻐한다고 느끼는 건 아마 나를 더 많이 혼냈고 동생을 덜 혼냈기 때문인 것 같다. 물질적인 것으로 나와 동생을 차별한다고 생각진 않았다. 내가 82년 생인데, 그 당시만 해도 한 집에 자녀를 2명 정도만 낳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남자라고, 아들이라고 대놓고 눈에 띄게 더 챙겨주는 일은 없었다. 한마디로 '아들과 딸'처럼 귀남이에게만 좋은 것 먹이고 대학을 보내주는 그런 식의 확연한 차별은 없었다. 대신에 돈과 물질로 환산되지 않는 무형적인 차별은 많았다. 내가 첫째라는 이유로 양보를 강요받았고, 누나라는 애가 동생도 안 챙기고 양보도 없다며 동생보다 못하다고 많이 혼이 났다. 고작 20개월 밖에 차이나지 않는데다 서로 라이벌 관계인 동기간이지만, 그런 것에 대한 고려가 없던 부모님은 내가 항상 양보하고 져줘야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와 동생은 당연히 타고난 기질이 다를 터, 엄마는 내가 성질이 까다롭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나는 내가 세상 성질 더럽고 까칠한 사람으로 알고 자랐다.


 나는 집에서 그리 칭찬받거나 예쁨 받은 아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릴 때 엄마 아빠는 날 별로 안 좋아하고, 날 안 챙겨준다는 불만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 이런 불평을 여러 번 말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이런 불평을 여러 번 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아빠가 보기에도 엄마가 나보다 동생을 더 예뻐한다 싶었기 때문일까? 아빠가 한두 번 엄마에게 첫째인 나를 좀 챙겨줘라는 말을 해주었다. 그때마다 엄마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내가 00 이를 얼마나 챙기는데. 먹는 걸 나눠줘도 동생보다 00 이를 더 많이 줘.'


지금의 나라면, 그때 엄마의 말에 실소를 한번 날려주고 싶다. 엄마는 내 불평의 핵심을 몰랐다. 나는 동생보다 빵 한 조각, 과자 한 봉지가 적어서 불평한 게 아니었는데. 엄마가 주는 관심과 애정의 차이를 이야기하는 것이었는데, 엄마는 몰랐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도 전혀 모르는 것 같다.


엄마는 나에게 '너는 네가 잘 알아 하잖아.'라는 말을 많이 했다. 그러면서 키워보니 남동생보다 내가 키우기 수월했다면서 계속 강조한다. '너는 알아서 잘하더라.' 처음엔 이 말이 칭찬이라 생각했다. 스스로 알아서 잘하는 자랑스러운 딸... 뭐 이런 차원으로 하는 말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 말이 '여전히 너에게 관심이 별로 없어. 근데 네가 다 잘 알아 하던 걸 뭐?' 이런 의미라는 걸 이젠 안다. 그렇게 알아서 잘하니까 엄마인 내가 계속 신경 안 쓸 수 있게끔 지내 달라는 말이라는 것도 안다. 그리고 때로는 남들에게 액세서리처럼 '우리 딸 지금 이렇게 산다.'라고 자랑할 수 있게끔 계속 알아서 잘 지내 달라는 말인 것도 안다.


그러면서 엄마는 자신이 힘든 일, 예를 들어 남동생이 속을 썩이거나, 할머니 댁에 있었던 온갖 화나는 일을 나에게 전화를 해서 이야기한다. 딸은 엄마가 힘든 일이 있으면 잘 들어주고 위로해주는 그런 존재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들어주다가 엄마의 단점이나 고쳐야 할 점을 이야기하면 아주 불같이 화를 낸다. '넌 내 편도 안 들어주고 따박따박 단점을 지적하고 아주 괘씸하다. 다른 딸들은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힘도 되어준다던데! 나는 너 힘들 때 다 들어주고 그랬는데, 너는 그것도 못 하냐!' 이러면서 쌩하게 전화를 끊는다. 과연 딸은 엄마에게 어떤 존재인 건가? 자녀인 건가? 친구인 건가? 자매인 건가? 좀 애매하다. 관심과 애정은 덜 가는데 필요할 땐 여기저기 마구 써도 되는 그런 대상 같다.  


이게 과연 우리 엄마만의 이야기일까? 나 말고 외동이 아닌 대부분의 가정에서 이런 역동이 다 있지 않을까 모르겠다. 어떤 애는 왠지 알아서 다 잘할 것 같고 그래서 걱정이 별로 안되고 든든한 느낌도 든다. 어떨 때는 신경을 안 쓰고 편하게 있다보니 아차! 놓칠 때도 있다.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 걔는 알아서 잘 하니까. 근데 꼭 이 아이는 불안불안하다. 그래서 더 신경이 쓰이고 말도 한번 더 하게 되고, 계속 나의 레이더 망이 계속 그 아이 쪽으로 기울게 된다.


흔히들 부모들은 너무나 단순하게 '걔가 좀 부족해서, 자꾸 문제를 일으켜서, 좀 약해서..' 등등 이유를 대면서 아이의 특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이의 특징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아이의 그 모습이 왜 그렇게 불안하고 걱정이 되고 약해 보이는 걸까? 왜 그렇게 그 모습에 자꾸 신경이 쓰이는 걸까? 자꾸 신경이 쓰인다는 건 관심이 간다는 것이고, 마음이 기운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잘 살펴보면 그 아이의 모습에서 내 모습이 보이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바로 그렇게 신경이 쓰이고 불안한 그 아이에게서 나의 부족한 점, 나의 약점, 결점이 그대로 보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말 뜻을 좀 달리 해석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네가 알아서 잘하잖아.'는 칭찬이 아니라 '생각보다 너에게는 관심이 별로 없어.'라는 무관심의 의미로.

'너는 뭘 하든 불안하다, 걱정된다.'는 꾸중이 아니라 '널 보면 날 보는 것 같아. 좀 잘해 봐.'라는 관심의 의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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