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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Feb 16. 2021

웃음보따리, 암이 나를 깨웠다!

웃음보따리 송년회 10분 스피치, 암은 자기혁명과 관계혁명의 기회다!

2017년 말 <웃음보따리> 동아리 송년회에서 내가 10분 스피치를 했다. 그때 쓴 원고가 컴퓨터 파일에 있길래 가져와 본다. 마이크 앞에 섰을 땐 원고 안 보고 흐르는대로 수다를 떨었더랬다. 추억 돋는 글이다. 암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새 길을 가는 이야기겠다. 내 흑역사를 솔직하게 까발리며 웃어젖힐 수 있었다. 그때 나와 공감하며 함께 '뒤집어지던' 50~60명 좌중이 눈 앞에 보이는 것 같다.



'웃음보따리'는 암 환자들이 한 달 한 번 모여 웃고 노는 동아리다. 책 <암과의 동행 5년>를 읽고 저자 홍헌표 씨에게 내가 연락하고 찾아간 모임이다. 암 친구만 아니라 건강을 위해 웃고 살자는 사람들이 절반은 섞인 모임이었다. 웃을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덮어놓고 웃는 모임이라 하겠다. 암 이전에는 그런 모임 굳이 가지 않았을 거다. 노인 복지 현장에서 하던 웃음 치료 특강도 그리 즐겁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인생은 살아볼수록 새로운 거 아니겠는가.



암이 나를 깨우고 바꾸고 뒤집어 버렸으니까. 인생 뭐 있어? 배꼽 빠지도록, 미친 듯, 그냥 웃어 봐. 바보처럼 웃고 건강하게 살래, 점잔 빼며 안 웃고 아플래? 당근 내 선택은 전자였다. 내 몸은 내가 접수했으니까. 전에 안 하던 걸 하게 되고, 익숙한 건 버릴 게 많았으니까. 무장해제하고 웃다 보니 많은 게 달라 보였다. 박장대소, 파안대소, 웃으면 복이 와요. 하하 호호 깔깔깔..... 인간만이 웃을 수 있다는 거 아는가? 웃느라 땀에 흠뻑 젖는 즐거움을 아는가? 웃음보따리가 그런 모임이었다.



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왁자지껄 떠들며 웃어젖히는 맛, 새삼 그리워진다.






웃음보따리 2017년 송년회 10분 스피치/ <암이 나를 깨웠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김화숙입니다.

짧은 10분간 제가 할 이야기에 제목을 붙여봤어요. <암이 나를 깨웠다!>

다른 말로 하면 암 수술로 인생 수술하고 땡잡은 이야기입니다.



먼저 암 이야기를 할게요. 저는 2014년 7월 간 20프로 절제 수술을 받았습니다. 예방적으로 얼떨결에 담낭도 잘라냈어요. 20대에 B형간염으로 입원하면서 제 가족 전체가 보균자인 걸 첨 알았는데, 27년 만에 암이네요. 간염에서 지방간 간경화도 되고 간암으로 된다는 건 알려졌죠. 제 오빠도 50세도 안 돼서 간암 진단 6개월 만에 돌아가셨어요.



수술 석 달째 검사 결과 보러 간 날이었어요. 담당 의사가 “다 정상이고 좋습니다. 두 달 후 오세요.” 그러는 거예요. 모니터만 보고 제 눈도 안 마주쳐요. 새벽같이 안산에서 전철 타고 버스 타고 왔는데, 한심하잖아요. 질문했죠.


“저... 질문이 있는데요. 뭐가 어떻게 좋은가요? 잘라낸 간은 자라고 있나요?” 그런데 돌아온 답이 뭔지 아십니까?

“그게 왜 그렇게 궁금합니까? 내가 다 알아서 합니다.”



와~ 진료실을 나오는데, 가슴 깊은 곳에서 모멸감인지 분노인지 막 치밀어 올랐어요. 그 길로 뭐 했을까요? 달려가서 제 의무 기록 사본을 싹 다 뗐죠.


“다 알아서 한다고? 그게 왜 궁금하냐고? 내 몸인데? 내 몸을 누가 책임져? 내 몸 내가 공부하고 내가 접수한다.”



암이 저를 마구 흔들어 깨운 겁니다. 그 후 병원에 다시 안 갔어요.

의무 기록 사본이란 게 들여다보면 꼬부랑글씨로 알아먹기 힘들잖아요. 영상은 더하죠. 2014년 연말이 돼 가는데 미치겠는 거예요. 내 몸 이대로 괜찮나? 재발의 두려움이 있었죠.



벌떡 일어나 의무 기록 사본을 꺼냈습니다. 인터넷 좋잖아요. 요지는 “지금도 간에, 폐에, 심지어 뼈에도, 의심스러운 뭐가 있으니 계속 추적 관리해라” 이거였습니다. 수술 5개월 만에 내 몸 상태를 처음 확인한 거죠. 정말 온몸이 암 천지라는 소리 같았어요. 가슴이 벌렁거렸습니다. 무식하게 살아선 안 된다 싶었어요. 의사는 뭘 알아서 한다는 거죠?



인터넷, 도서관, 서점에서 암관련, 건강, 의학 서적 닥치는 대로 읽었죠. 암 생존자들이 쓴 책, 자연치유의 다양한 방법, 병원이 포기했지만 스스로 치유한 사람들 이야기 등등, 공부할 게 많았습니다. 히포크라테스가 그랬잖아요. “우리 몸엔 100명의 의사가 산다.” 의사만 깨우면 사는 겁니다. 이장님 책 <암과의 동행 5년>도 그때 만났습니다.



2015년 1월 휴가를 얻어 운동하고 1일 2식 채식하며 암공부만 했습니다. 암생존자가 운영하는 휴양 시설에도 가봤습니다. 3월에 직장 사표 냈습니다. 본격적으로 몇 군데 더 가봤죠. 3주 단식도 했습니다. 매일 산을 오르고, 햇볕 공기 물 기본에 충실하며 면역력을 높이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2015년 말쯤 되니 소화, 황금똥, 혈색, 추위와 더위에 대한 내성, 피로, 수면의 질 등 모든 면에서 좋아지는 게 보였습니다. 높은 산을 다녀와도 다음날 벌떡벌떡 일어나죠. 피곤이 사라졌어요. 아프던 어깨 목덜미도 허리도 안 아파요. 해마다 달고 살던 알레르기성 비염도 사라졌어요.



내 몸을 좀 알겠고 체력에 자신감이 붙으니, 바깥 일정을 잡기 시작했어요. 2016년 초 ‘웃음보따리’에 나오게 됐고, 서울로 독서와 토론, 글 쓰는 모임을 다니게 됐어요. 병원 발 끊고 살다 작년 말 기본 건강검진했더니, B형간염 항원 소실돼 있었어요. 항바이러스제도 먹은 적 없고 항암도 방사선도 어떤 약의 도움도 없이, 평생 달고 살던 B형간염 보균자 딱지가 떨어져 나갔어요.(이 글 이후 B형간염 항체도 확인됐다.)



제 생각과 삶도 변해버렸습니다.


의사가 자기가 다 알아서 한다며 질문도 못하게 했잖아요. 그런데 그 의사 두고두고 제가 고마워하고 있어요. 저를 깨웠잖아요. 그 충격과 분노의 힘으로 공부하고 자기 주도적으로 살게 됐으니까요. 사실은 제 반세기 인생 자체가 그 모양이었더라고요. 자기 책임인데 자기 삶의 주체인 적이 없었어요. 더 힘 있어 보이는 누군가에게 내다 맡기고 살아온 게 보였어요. 내가 없이 살았더라는 거죠.



오전 운동하고 오후는 공부했다 그랬잖아요. 건강 의료뿐 아니라 고전과 인문학도 읽었습니다. 소설 너무 좋아해요. 놀라운 건 제 삶에서 고민하고 깨달은 게 책 속에 다 있었습니다. 지난 2년간은 거의 매주 독서하고 토론하고 글 쓰며 사람들과 만났습니다. 내 생각을 가능하면 낮추고, 자기를 부인하는 게 습관이 돼 있다가 밖에서 내 느낌, 내 생각을 드러내고 표현해 보니 너무너무 살맛 나는 거예요.



작년 초에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어요. 제가 30대 젊은 엄마와 성경공부하는 시간이었어요. 그분이 자기 부부 싸움 한 이야기를 털어놓았어요. 시댁이 어떻고, 남편이 아내 맘을 몰라주고, 왜 그렇게 예민하냐 한다 등등. 그래서 그러다 보면 자기를 화나게 한 건 남편인데 결국 자기가 회개하게 되고 남편의 심기를 살피게 된다는 식의 이야기였죠. 그런데 듣고 있는데 갑자기 제 가슴이 쿵쾅거리는 거예요.



'아~ 나도 그렇게 살았다. 내가 악영향을 미쳤구나. 나는 솔직히 네가 부럽다. 너는 그래도 대놓고 화를 내고 할 말을 하잖아. 나는 내 하고 싶은 말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미리 남편 맘 다 헤아리고 그의 자존심과 권위를 먼저 생각했단다. 그에게 맞춰주고 부드럽게 말하지. 나나 너나, 네 남편이나 내 남편이나 도찐개찐이다.....'



그날 이후 폭풍이 몰아쳤습니다. 전에 한 번도 그런 생각 한 적이 없거든요. 늘 제가 회개하고 낮아지고 남편 존경하고 남편 권위 세워주는 식이었죠. 그게 훌륭한 남편과 아내 모델이라 생각했거든요. 제 속에 그렇게도 화가 쌓여있는 줄 몰랐어요. 갱년기도 때마침 겹쳤어요. 평생 못한 분노와 욕이 한꺼번에 다 폭발했어요. 병원과 의사에게 분노한 거 보셨죠. 이젠 남편과 결혼제도가 대상이었어요. 아닌 건데 붙잡고 살 이유가 없었어요.



제 남편이 목사입니다. 먹통이라고 요즘 시대엔 '먹사'라 하죠? 애 셋에 40대부터는 사회복지사로 직장 생활하는 미자립교회 목사 사모. 이게 저고요. 눈이 바뀌고 보니 내가 2중3중 노역으로 노예처럼 살다 병든 거로구나. 확 인정되는 걸 어떻게 해요. 남 섬기고 사랑하는 헌신의 여종, 기껏해야 엄마, 아내, 사모, 결국 다 종이더라고요. 나는 하나님의 형상인 한 인간이다. 동등하게 대우받고 싶다. 대 전제가 안 바뀔 거면 나를 풀어 달라. 이혼을 요구했죠.



남편이 받았을 충격 느껴지시나요? 제가 워낙 단호했어요. 애들이며 먹고 살 건 전혀~~ 두렵지 않았어요. 이대로는 암이 재발하든, 미치든, 제가 죽을 거 같았어요. 전에는 밤을 새워서라도 조근조근 존경심을 담아서 말하던 아내가, xxxx, 쌍소리를 해가며 목사 집어치워라 한 겁니다. 가부장제는 실락원의 질서다. 예수는 가부장적이지 않다. 예수는 해방의 복음이다. 우린 잘못 배운 걸 멍청하게 따른 거다. 변할 의지 없으면 이혼하자.



그는 안 된다 그랬겠죠? 저는 집요했어요.

“나랑 왜 살고 싶어? 중년에 이혼 당하면, 너무 없어 보일까 봐? 남 보기에 목사씩이나 돼서 구색이 안 맞아서? 나는 그런 구색 맞춰주는 보조물이 아녀. 난 그런 남편 이제 필요 없고, 모시고 살 맘 없어. 나하고 앞으로 어떻게 다르게 살고 싶은데? 우리가 함께 지향할 새 그림을 한 번 제시해 봐. 네 인생에 내가 왜 있어야 하지? ”



한 1년 같이 그렇게 싸우고 토론하며 공부했습니다. 살자니 남편도 눈을 뜨지 않을 수 없겠죠? 수시로 고백해요.

“나는 무지했다. 결혼생활 내내 아내 말을 못 알아들어서 못 실천했다. 이제야 말이 귀에 들어온다.”



결혼이 대수술을 받은 셈이죠. 요즘 비혼, 졸혼, 이혼이 대세인 건, 특별히 문제 많은 사람이라 그런 게 아닙니다. 결혼이 너무 남성 중심적으로 세팅돼 있어, 여자들이 답답하거든요. 남자는, 여자가 별나서 그렇다고 생각하죠. 자기한텐 문제가 안 되는 시스템인 줄 모르니까요. 저 역시 늘, 제가 특별히 까다롭고 별난 여자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자꾸 내 목소리를 죽였거든요. 이제 세상 모든 파경이 공감되고 이해돼 버렸어요.



문학을 함께 읽으며 인류 역사에 반복되고 있는 변질된 종교의 모습을 연구했어요.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를 다시 연구했어요. 한국 기독교가 개독교 소리 듣는 이유가, 예수보단 율법주의 가부장적인 질서를 지키기 때문인 걸 공감했어요. 2017년 봄부터 남편이 자발적으로 여성 단체 독서토론에 함께 참여하고 있어요. <82년생 김지영>을 비롯해 시의성 있는 페미니즘 책을 읽고 여성들과 토론하며 남편이 고백하곤 하죠.



“아~ 김화숙이 특별히 별난 여자가 아니었구나. 모든 여성들이 답답함을 느끼는구나. 남자는 정말 특권적이었구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게임을 하면서, 세상이 얼마나 남자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지, 너무 몰랐어.....”



지난 9월, 결혼 27주년에, 남편이 꽃을 사들고 고백했어요. "화숙 씨, 우리 결혼합시다!" 좀 유치하고 웃긴 퍼포먼스지만, 그에겐 엄청난 의미였죠. 가부장적인 교회 문화 속에서 남존여비 질서로 살던 부부잖아요. 이제 그게 아니라 화숙이와 하덕이 동등한 두 인격이 다시 시작하자는 의미였어요. 결혼은 진짜 새로운 개념이 필요해요.



이제 서로 여보 당신이란 말도 쓰지 않기로 했어요. 평등하고 수평적인 친구로 돌아가자고요. 예수도 우리와 친구라 했는데, 하물며 인간과 인간이 못 할 게 뭐냐. 별 볼일 없는 인간일수록 수직적인 질서, 남녀 도리에 집착하는 거 아니겠어요? 그래서 우린 요즘 숙아 덕아 하고 불러요. 그런데 "네가" 해야 할 때 "당신이" 튀어나와요 가끔은.



더 연구하고 공부해서 2018년 결혼기념일에는 나머지 노년까지 갈 우리의 로드맵을 가지고 이벤트를 하기로 했어요. 해방된 여자와 남자로서, 서로 사랑하고 서로 존중하고, 같이 늙어갈 동반자로서요. 그러자면 우리 속에 있는 통념을 다시 점검하고 스스로 문화를 만들어야겠죠. 공부할 게 너무 많겠죠?



암 수술은 나 한사람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는 수술이었습니다. 암이 나를 흔들어 깨웠어요. 막힌 관계도 수술해서 새로운 관계로 바꿔 줬어요. 가족과 교회와 이웃들과 모든 관계를 새롭게 했어요.

그래서 조금 과격하게, 제게 암은 자기 혁명과 관계 혁명의 기회였다고 말하고 싶어요.



 암은 자기 혁명과 관계 혁명의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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