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칠보산의 자연생활교육원의 브로콜리 카페에 앉아 봄비 구경을 하고 있다. 비치된 책을 보고 시집을 몇 권 읽었다. 오래 기다린 비라 그냥 넘기기 아까울 정도로 반갑고 사랑스런 날씨다. 이곳 동해안이 오래 가물었단다. 산길이 여간 건조한 게 아니었다. 안산의 겨울은 눈도 비도 참 많이 왔더랬는데. 우리나라 새삼 넓다. 이 비 후엔 이제 제대로 새싹이며 꽃이 피어날 것이다.
오전엔 봄비 속에 우산을 쓰고 산길을 걸었다. 도시에서와 달리 함께 걷는 사람 누구도 비를 불평하지 않았다. 우산 쓰고 산책을 즐길 만큼 딱 그정도로 부드럽게 내리는 비였다. 물방울을 머금은 나뭇가지며 솔잎이 자꾸만 내 걸음을 멈추게 했다. 마른 가지에 뾰족뾰족 새순이 빗방울을 즐기고 있었다. 저수지 가에 자라는 나무마다 더 색이 오르고 있었다. 고갯길을 돌아돌아 우산 쓰고 걸으며 우리는 시도 읊고 수다도 떨었다.
3.1절이니 우리 할아버지를 잠시 생각하는 날이다. 만세운동이 1919년 3월 1일 하루의 역사인 줄 알면 큰 오해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들불처럼 계속 번졌던 만세운동이다. 3월 내내 만세는 끊이지 않았다. 우리 할아버지는 3월 19일 만세 시위에 참여한 '죄'로 검거되셨고 9월에 재판을 받았다. 1년 6월의 실형을 살아야 했다. 가난한 농부로 만 60세도 안 돼 세상을 떠나셨다. 그 후 30년이 훌쩍 넘어서야 독립유공자로 인정되셨다.
우리 할아버지 같은 선조들을 생각하며 <상주 아리랑>을 들어 봤다. 나는 우리 민요를 좋아한다. 아리랑이면 무조건 다 좋다. 오늘 같은 날, 일제 강점기 우리 현실을 참 잘 담아낸 <상주 아리랑>이 가슴에 깊이 들어왔다. 솔직히 한 방송 덕에 처음 알게 됐다! 봄비와 시 몇 편 사진 몇 장, 그리고 상주아리랑. 봄비처럼 흐르는 3.1절 단상이로다.
눈물 속에도 사막이 있다
정다혜
며칠간 까칠한 아픔이 눈을 찔러댔는데
의사는 별것 아니라며 안구건조증이라 써 준다
그 처방전 내밀고
약국에서 받아온 인공눈물 넣다가
차가운 울음으로 겉돌던 눈물이
눈 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눈물 속에 사막이 펼쳐진다
너 떠난 후, 계절에 상관없이 피던
그 많은 눈물 꽃, 어느새
소금처럼 말라 슬픔의 씨만 남았는지
그 씨, 또 얼마나 깊게 묻혔는지
도무지 꽃 피어날 생각하지 않는다
사막 속 눈동자는 뜨겁고
나는 울기 위해서
슬픔의 씨를 마른 사막에 묻는다
-<스피노자의 안경>(정다혜, 고요아침, 2007)
내가 살아있다
나혜경
죽은 듯
움직임이 없는 나무
빗방울이, 톡
바람이, 일렁
참새가, 파닥
건드리고 지나가자
비로소
잔가지가, 파닥
잎이, 일렁
풋열매가, 톡 떨어진다
오, 살아있구나!
나를 아프게 치고 간,
하여, 눈도 코도 입도 팔도 다리도 퍼렇게 멍들어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한
수많은 빗방울이며 참새며 바람 같은
그대들에게 고맙다
-<담쟁이덩굴의 독법>(나혜경, 고요아침, 2010)
저수지
정다혜
무섭지 않은가, 저 시퍼런 작두날
나 여태 저렇게 푸른 칼날 본 적 없다
그 맨발의 욕정 버리지 못하고
온갖 사내 다 끌어들이는 저 음흉한 깊이
깊고 깊은 저 작두날 위에서
저 홀로 널을 뛴다
나는 쉰하나의 바람꽃 나이
마른 안갯속으로 침잠하는데
도무지 물기 마를 줄 모르는 저 여자
오늘 밤에는 처용의 역신이라도
끌어들이려는지
물안개 자욱이 피워 뜨겁게 탄다
-<스피노자의 안경>(정다혜, 고요아침, 2007)
상주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괴나리봇짐을 짊어지고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버지 어머니 어서 와요
북간도 벌판이 좋답디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쓰라린 가슴을 움켜쥐고
백두산 고개로 넘어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리아리 쓰리 쓰리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문전의 옥토는 어찌 되고
쪽박의 신세가 웬일인가
아리아리 쓰리 쓰리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원수로다 원수로다 원수로다
총각인 포수가 원수로다
아리아리 쓰리 쓰리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말 깨나 허는 놈 재판소 가고
일 깨나 허는 놈 공동산 간다
아리아리 쓰리 쓰리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독립유공자 김반석 (1893-1952) 공훈록
경상북도 영덕(盈德) 사람이다.
1919년 3월 19일 창수면 장수동(蒼水面蒼水洞)의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신기동(新基洞) 구장 이현석(李鉉卨)과 이 수각(李壽珏)·이현우(李鉉祐)·권재형(權在衡) 등이 영해읍(寧海邑)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기 위하여 영해로 가는 도중 이곳에서도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의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지역은 도로 개설공사로 인하여 일제에게 전답을 강제로 수탈당한 농민들이 많았기 때문에, 시위가 시작되자 곧 1백50여 명으로 늘어났다.
시위 군중들이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행진하여 4시경 창수 경찰 주재소에 이르렀을 때에는 4백여 명으로 늘어났다.
이때 그도 시위 군중과 함께 주재소를 습격하여 건물을 부수고 기물과 서류를 파기한 후 객사와 주임 순사 고목이 삼랑(高木伊三郞)의 숙소와 조선인 순사보 송상구(宋相九)·권찬규(權燦奎)의 비품 등을 파괴하였다.
또한 장총 3정과 대검 2개를 빼앗아 파기한 후 일본인 순사의 가구·의류 등을 완전히 파기하고 오후 7시경에 이르러 자진 해산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대대적인 검거가 시작되어 그도 마침내 체포되었으며, 이해 9월 30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월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