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있었던 줌 강의 내용을 요약정리합니다. 너무너무 좋은 강의였어요. 그냥 넘어가기엔 아무리 생각해도 아까워요. 함께 듣고 싶었지만 아쉽게 놓친 벗들도 있다는 걸 제가 알거든요. <세월호 참사, 진정한 애도와 생명돌봄의 과제>라는 제목이 무겁게 들리나요? 마주하기 불편한 제목일 수도 있다는 거 알아요. 평소 강 교수님의 책과 강의를 좋아하던 제겐 가뭄에 단비같은 위로였어요.
이번 강의는 세월호 참사 7주기를 맞는 특강이었어요. '2021 치유와 희망을 노래하는 안산온마음센터 4월 정기포럼'. 안산과 전국에서 세월호 7주기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연대하는 기회이기도 했어요.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일곱 번째 봄을 만드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강의 듣기를 택한 사람들이었어요. 끝날 때쯤 확인해 보니 줌 참가자 숫자가 141을 가리키고 있었어요. 안산과 전국, 해외에서도 접속한 분들도 있었어요.
저는 강의 시작 때 교수님과 인사하고는 작정하고 열심히 타이핑했어요. 줌 화면으로 몇 번 눈을 마주치지 못했을 정도로 몰입해서요. 평소 제가 강교수님 책과 강의를 널리 나누고 싶을 만큼 좋아했다는 거죠. 참,안산온마음센터가 뭐 하는 곳이냐고요? 좋은 질문이에요. '416세월호 참사 피해자를 포함한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전문적· 지속적· 집중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랍니다. 안산에 자리 잡은 국내 최대의 트라우마 치유기관이라고 소개할 수 있겠어요.
사회자 김현수 님이 그렇게 소개하더군요. 7주기를 맞이하는 가족들의 마음이 밝지 않은 것 같다고요. 분위기가 예년 같지 않다고들 하죠. 팽목항에 걸린 현수막 숫자도 줄어들었다는군요. 그럼 우리는 어떻게 애도해야 할까요? 형식과 제도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어떻게 철학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까요? 지혜와 용기, 그리고 미래로 나가갈 사유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텍사스 크리스천대 강남순 교수를 모셨습니다.
강교수님과의 추억 사진을 꺼내보게 됐어요. 2018년 연말 페미니즘 카페 '두잉'에서 강의를 듣고 사인을 받았더랬죠. 코로나 이전엔 마스크 없이 가까이 얼굴을 들이대고 웃을 수도 있었군요. 제 책장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강교수님의 책들에게도 새삼 눈길이 갔어요. 아이들도 읽을 수 있는 책 <안녕 , 내 이름은 페미니즘이야>가 나왔을 때가 생각나요. 반가워서 교회 식구들에게 선물로 돌리지 않을 수 없었죠. '백합과 장미'도 이 책 토론으로 시작했고요.
<세월호 참사, 진정한 애도와 생명 돌봄의 과제>를 가능한 육성을 살리며 줄여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이 강의에 <나는 애도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제목을 붙여 봅니다.
나는 애도한다 고로 존재한다/ 강남순
세월호 문제 가지고 만나는 것 쉽지 않은데 시간을 내주시고 초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의미 깊은 모임에 함께 할 수 있어서, 저로서는 다른 강연 준비할 때 갖지 못했던 복합적인 마음이었습니다. 2014년 7월 말에 팽목항에 갔었어요. 방학해서 호주에 있는 언니 한국에 있는 언니와 함께 갔었습니다. 그때 분위기 잊기 힘들었습니다. 하늘에 짙은 먹구름이 깔려 있었고 차에 내려서 같이 갔던 가족들 서로 약속한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신원확인소 가는 길' 팻말이 보였어요. 저게 패러독스적 슬픔의 공간이구나. 저기 가는 가족들의 마음이 어떨까. 잠시 팻말을 보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슬픔의 응어리들을 품고 살아야 했을까. 각기 다른 슬픔의 응어리를 가지고 오가는 공간이겠구나.
팽목항을 죽 걸어가면서 물건을 봤어요. 신발 라면 쌀 소주 과자 김 콜라 옥수수. 가족이 좋아하는 걸 놓아두었을 것입니다. 부둣가 곳곳에 그런 물건이 있는데, 화려하게 살고 먹고 하는 게 아니라, 욕심 없이 정겹게 살아갔을 사람들의 자취. 그걸 지켜보며 부재 속에 현존할 수 있는 거, 눈에 안 보이지만 존재하는 것, 죽은 이들의 현존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느꼈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물건들 속에서 참사 아니었다면 울고 웃으며 생생함으로 느꼈을 것인데. 이것들이 우리에게 건네는 말이 무엇일까. 팽목항의 모습이 7년이 지났지만 잊히지 않습니다. 상징적으로 저에게 많은 말을 건네고 있어서 그 말들을 그대로 하기 어려웠고 글로만 조금씩 남겼습니다.
벌써 7년이 지나가는데, 잊지 않겠다, 그런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세월호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기억하겠다는 건 우리 삶에 어떤 기능을 하게 하는가. 세계 도처에서, 미얀마에서 참사가 일어나고 있지만, 어떤 특정한 사건은 개인적이기만 사적이기만 하기 어렵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무수한 과제를 줍니다. 새롭게 다져야 하고 상기해야 하는 과제는 무엇일까. 특정한 사람들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적 정치적 사건과 어떤 의미가 있는가 질문하게 합니다.
예를 들어, 홀로코스트는 '인류에 대한 범죄'라는 개념입니다. 흔히 나치에 의해 유대인들이, 유대인만이 아닙니다. 장애인 성적 소수자 외국인 이런 사람들이 무참한 학살을 당하고 고통당했습니다. 역사적인 사건으로 자리 잡을 때는 유대인만이 아니라 특정한 집단이 인류라는 것 때문에 인류에 대한 범죄라는 세계 역사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세월호에 대한 사회적 역사적 정치적 종교적인 의미는 복합적이라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집단적으로 어떤 과제를 스스로 속에서 각인하고 연대하는 것이 필요한가. 이것이 살아남은 사람들의 과제고 앞으로의 세대에게 줄 수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홀로코스트가 그렇듯 세월호라는 게 이젠 고유명사가 됐습니다. 복합적인 의미가 무엇일까?
왜 참사인가? 교통사고라는 사람도 있지만, 아직도 원인이 규명 안 되고 있지 않습니까? 알고 있는 건 공공의 선보다는 개인의 이득을 최대 덕목으로 하는 자본주의적 가치가 이런 생명파괴를 가져왔다는 겁니다. 시민의 생명 사회적 생명을 보호하는 게 국가의 우선적 과제인데 그 당시 정부가 가진 이득 중심의 민낯이 드러났습니다. 기업도 국가도 정부도 국민들을 방관하고 이득 중심 무책임성 이기성이 참사를 가져왔습니다. 참사는 피할 수 있는 건데 피하지 못한 것입니다. 사고는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생명중심 가치 실천하고 책임성 생명보호에 우선순위 두지 않았습니다. 리더십 가진 사람들의 무책임성이 참사를 빚은 겁니다.
전에 글에도 썼지만 세월이 약이다, 한편으론 맞는 말이지만 한편으론 책임의식을 물타기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세월이 약인 건 없습니다. 우리가 잊지 않겠다 말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세월호 핀만 가지고 다니는 것으로는 안 됩니다. 세월호가 우리에게 의미하는 건 무엇인가? 잊지 않는다는 건 어떻게 하는 것인가? 의미를 새롭게 규정하고 앞으로의 과제를 새롭게 상기시킬 것인가?
존재한다는 것은 애도를 품고 사는 것
자크 데리다는 "나는 애도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고 했습니다. 애도한다는 게 뭘까? 근원적으로 물어야 합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넘어서, 나는 애도한다.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애도를 품고 사는 겁니다. 관계를 맺자마자 우리 한구석에는 애도가 시작됩니다. 아무리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도 동시에 이 삶을 떠날 수는 없습니다. 둘 중 한 사람은 먼저 갑니다. 이별의 슬픔을 한쪽에 품고 살아가는 겁니다. 애도를 품고 살아가면 불필요한 것으로 관계의 소중한 것들을 파괴하지 않게 됩니다.
이번 주가 학생 어드바이징 주간이었어요. 새 학기 클래스 하면서, 모두, 그전에 당연하게 여겼던 게 얼마나 당연하지 않은가.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고 얼마나 소중한가 깨닫게 됩니다. 정말 소중한 것들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많아요. 돈도 중요하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삶의 의미를 만들어주고. 우연히 받은 카톡 메시지 한 줄, 전화 한 통, 환하게 웃는 모습, 심지어 싸우던 것까지 그리울 겁니다. 우리가 유한한 삶 속에 소중한 게 무엇인가, 끊임없이 상기하는 게, 나는 애도한다 고로 존재한다,입니다.
그럼 애도는 무얼까요?
"나는 애도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걸 처음 접하고 우리의 존재 방식이라는 데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정말 그렇구나. 세월호에 관한 글을 오래전에 썼었는데. "매 죽음마다 세계의 종국이다." 세월호에서 가족을 잃은 분들은 이게 무슨 말인지 알 것입니다. 304명, 250명 이런 숫자가 아니라 하나하나 삶의 죽음이 세계의 종국이다. 삶의 한쪽에서는 반복성이 있어요. 어딘가에서는 사람이 죽기도 하고 태어나기도 합니다. 동시에 그 곁에 있는 사람은 세계가 끝나는 것을 경험한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경험하는 사람은 세계가 끝나는 것을 경험합니다.
대체불가능성. 한 명 한 명. 집단적인 것이 아닙니다. 소중함의 인식을 새롭게 합니다.
위험한 애도는 무엇인가?
첫째, 좌절과 절망감의 늪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좌절과 절망감에 빠져 있으면 냉소적이 됩니다. 주변에 일어나는 일에 자신이 개입하는 것을 포기하고 새로운 변화에 냉소적이 된다.
두 번째, 죽은 이에 대해 지나치게 이상화해 버립니다. 누구든지 다 인간입니다. 절대 무흠한 사람 없습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고 밝은 면 있지만 어두운 면도 있습니다. 그 결을 다 바라보는 게 애도입니다.
세 번째, 아픔과 고통을 내면화하는 겁니다. 내면화라는 건 죽음이 나에게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내가 여기서 걸어나가서 무얼 해야 할까. 그 걸음을 걷지 못하게 하고 자기 속에 갇혀버리게 하는 겁니다.
진정한 애도는 어떻게 하는 걸까요?
첫째는 희망의 삶을 살아가는 겁니다. 희망, 조심스러운 말입니다. 값싸게 오용되는 단어죠. 승리의 보장을 해주는 희망 아닙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이 어귀 양가적 감정 가지게 됩니다. 그런 확신에 찬 희망 아닙니다. 인류 역사에는 침몰한 진실이 많습니다. 진실이 침몰하지 않는 건 우리의 바람입니다. 아무리 애써도 묻히는 진실이 무수히 많습니다. 그것까지 끌어안는 희망이어야 합니다. 승리주의적 보장 아닙니다. 변화를 위해 애쓰는 씨름 자체가 희망의 근거입니다. 건강한 회의주의에 기반한 희망. 다양한 가능성, 실패의 가능성까지 끌어안는 희망입니다.
두 번째, 죽음을 경험한 사람이 이루지 못한 삶을 우리 어깨에 메고, 그 사람이 보고자 했던 꿈까지 어깨에 메는 겁니다. 기억하겠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기억이라는 것이 흔히 과거를 기억한다고 생각하죠. 제가 쓴 책에 'Remembering Future'라는 챕터도 있어요. 세월호라는 과거의 사건이 표상하고 있는 미래를 기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들이 살고 싶었던 미래를 끊임없이 살아내는 것. 고통의 감옥에서 나와 살아남는 것입니다.
세 번째, 나는 고통당하는 사람이야 의식에서 벗어나서 사랑하는 사람이 살고자 했던 세상으로, 변화의 주체자로 전이하는 것입니다. 변화의 씨를 뿌리는 사람. 변화의 주체자라는 말은 에이전트agent, 내가 중심이 되어 변화의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그럼 진정한 애도를 하면서 무얼 해야 할까요?
가장 중요한 게 생명돌봄의 소중함. 살아감이라는 게 함께 살아감이라는 겁니다. 책임적 애도라는 건 생명돌봄의 소중성. 함께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코로나 사태를 경험하면서 가장 큰 교훈은 사는 게 나 혼자 잘 해보겠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구나. 다른 사람도 내 생명 지켜주는 것이고 나도 다른 사람 생명 지켜주는 것이구나. 우리의 절실한 생존의 문제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에게 준 것은, 생명을 돌본다는 것이, 먼저 상실을 경험한 분들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게 저기 있구나. 세월호 문제 책임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나의 사랑하는 사람, 소중한 생명이 수장되지 않아도 될 것인데. 사적인 것만 아니라 공적인 것이고 정치적인 것이라는 걸 가르쳐 주었습니다. "모든 생명은 아름답다." "귀하다." 낭만적으로 말고 구체적으로 물어야 합니다. 기억한다는 의미는 하나하나 묻는 것입니다.
생명이란 무엇일까?
정말 생명 하나하나 귀한가?
생명에 위계는 어떻게 형성돼 있는가?
부잣집 생명은 귀하고 가난한 집 생명은 덜 귀하다는 관념이 있을까?
'부잣집 자제들'. 어떻게 그런 말을 쓸 수 있을까요. 언어를 관찰합니다. 새 교수를 뽑는데 최종 인터뷰 세 명하고 있어요. 저는 제일 먼저 관찰하는 건 어떤 개념, 어떤 질문하는가, 질문 내용 무언가, 후보자 평가에 아주 중요하다고 봅니다. 질문했을 때 어떻게 깊이 이해하는가 봅니다. 그 사람을 드러냅니다. 생명의 위계가 돼 있구나. 놀랐습니다. 강남과 비강남. 자제분. 서울시장 하겠다는 사람이 그런 말 쓰더라는 겁니다.
성소수자 성다수자 부자와 가난한 나라 생명들. 지난번에, 세월호에 외국인 다섯 명 중에 미국 시민이 두세 명 있었다? 영국 독일 두세 명 있었다? 그랬다면 원인 규명이 벌써 됐을 거라 했습니다. 강남 부잣집 자제들이 탔다면? 그해 문제 해결됐을 겁니다. 이것이 한국이 가진 생명의 위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봅니다. 세월호 참사는 생명의 소중함, 생명돌봄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우리는 모두 이웃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걸 가지고 한 시간 이상 토론합니다. 이웃은 어떤 범주로 둘 것인가. 사랑한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끊임없이 물어봐야 합니다.
진정한 애도는 생명돌봄의 과제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나의 구체적인 역량을 넘어서 제도적인 정치적인 생명돌봄이 필요합니다. 인간이 사는 모든 분야에 인식 확장돼야 합니다. 가난한 생명은 부자 생명보다 덜 생명으로 보는 한, 한계가 있습니다. 중요한 과제는 생명돌봄. 함께 살아가는 사회로 나가는 토대입니다.
첫째, 생명돌봄은 시혜가 아니라 책임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책임. 인간으로서의 권리. 왜 중요하냐면 시혜를 베푼다 할 때, 의식 무의식에 위계가 형성됩니다. 베푸는 사람이 우위에, 윤리적 위계가 생깁니다. 동료인간으로서는 권리입니다. 독일에서 산 적 있습니다. 학생으로서 사회적 불이익 받은 적이 없습니다. 아이 양육비 줍니다. 인간으로서 거주의 조건 있어요. 방 두 개 아파트에 살아요. 낼 돈이 없다면 국가가 부족분을 줍니다. 국가로부터 도움받는다고 나는 불쌍한 사람이라거나, 도움받는 열등한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자원을 많이 가진 사람은 나눌 책임이 있다는 겁니다. 생명돌봄 과제는 책임이고 받는 사람은 권리입니다. 위계 형성 안 됩니다. 동료인간입니다.
두 번째, 생명돌봄은 개인적이고 사적인 것만 아니라 집단적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인 겁니다.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하는 교회 있었습니다. 이런 설교하는 사람들이 꼭 있습니다. 코로나도 자연재해도 분명 있습니다. 이런 건 믿지 말기 바랍니다. 그런 신은 존재하지 않아요. 사람 골라서 벌줘야지 하는. 생명돌봄이라 할 때, 개인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주변부의 사람들 생명도 중요하게 보는 사람인가. 그걸 봐야합니다. 특정 종교 속하고 싶다면 그 지도자들이 차별하는가, 위계 만드는가, 살펴보기 바랍니다. 특정한 사람들을 신의 저주받은 사람이라고 하는가. 나 혼자 해서 되는 게 아니라 내 의식 세계를 확장해야 하는 겁니다. 제도적 돌봄장치 필요합니다. 건강보험제도 교육 혜택 주거정책 등 무수한 생명에게 똑같이 돌봄을 주는가. 개인적이고 사적인 게 아니라는 겁니다. 나 자신도 내 의식 속에 무수한 생명들의 위계를 만들지 않는가. 이런 걸 부추기는 건 없는가, 감시하고 모니터링해야 합니다. 우리가 뽑은 리더가, 집단이, 공동체가, 이런 위계를 조장하는가. 소중함과 평등을 확장하는가. 봐야 합니다.
세번째, 생명의 위계주의에 대한 저항이 생명돌봄입니다.
저항해야 해요. 바꿔야 한다고 하지 않으면 변화는 없습니다. 죽음이라는 게 육체적 죽음도 있고 사회적 죽음도 있어요. 매장시키는 건 죽이는 겁니다. 생명에 위계를 설정해서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고 하는 겁니다. 주변부에 있는 사람을 하찮게 여기는 것에 저항해야 합니다. 생명 범주를 확장하자면 인간 생명에만 국한할 것인가. 장애인도 다양한 장애 있습니다. 나이에 대한 위계. 피부색에 따른 생명. 국적 다른 생명. 더 확장하면 동물생명.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에 대해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
레비나스는 이야기합니다. "생명에 대한 책임성은 무한하다." 좌절 경험으로 듣지 말기 바랍니다. 무한. 그만큼 우리의 책임이라는 게 크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어떻게 조금 더 늘일 수 있을까. 모든 변화는 나로부터 시작합니다. 타자를 보는 시선을 바꾸는 것. 개입을 조금 바꾸는 것. 그것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나의 인간 됨을 지켜내면서 타자의 인간됨을 보고, 다양한 타자들 속에서 모두를 어떻게 볼 것인가? 텍사스는 한국의 일곱 배 크기입니다. 작은 나라에서 나누는 걸 왜 그렇게 좋아할까요. 끊임없이 의식을 확장하는 게 생명돌봄의 시작입니다.
네 번째, 연대성으로서의 생명돌봄입니다. 연대하겠다. 무엇과 누구와 연대하는가. 함께한다는 건 그 새로운 변화를 위해 동조하고 함께 일하겠다는 겁니다. 동질성의 연대와 다름의 연대가 있어요. 동질성의 연대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여자는 여자들과. 장애인은 장애인들과만. 성소수자는 성소수자만 생각합니다. 동질성의 연대라고 하는 건 오래가지 못합니다. 성차별 문제도 그렇습니다. 남자가 페미니즘 하면 플라스틱이라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냅니다.
강연할 때 그런 질문받을 때 있습니다. 성소수자인가? 하나는, 성소수자 아닌데 우리와 연대하니 반갑다는 뜻이죠. 또 하나는, 당신은 성소수자 아닌데 연대하는 건 의심스럽다는 말입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인류에 대한 차별이고 범죄다. 당사자성이라는 걸 연대에서 주장하면 안 됩니다. 다양한 그룹과 연대할 때 변화 일어납니다. 흑인만 연대해서 노예제 폐지된 것 아닙니다. 깨어있는 백인들이 많이 연대했습니다.
여성운동하는 사람들이 1848년에 미국에서 처음 공식적으로 세네카 폴스 교회를 빌려서 집회하기로 했습니다. 지역신문에서 반대 심했습니다. "성서에 봐라. 여자는 남자한테 복종해야 한다. 여자 참정권 평등 주장하는 건 반성서적이다." 빌려주기로 했던 교회가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그때 나온 노래가 있어요. "여성들이 도착하고 있다. 대로에서도 오고 작은 골목길에서도 온다...." 그때 교회가 문을 닫았을 때, 어떤 남성이 다니면서 열린 창문 있는 교회 찾아서 창문 넘어 들어가서 교회 문을 열었습니다. 당시 여성들은 치렁치렁한 치마를 입었으니 바지 입은 남성이 창문을 넘었겠죠? 한 문이 닫혔으면 다른 문을 연다. 당사자 여성들만 해서 된 게 아니었습니다. 다양한 젠더 다양한 정치적 입장이지만 변화를 이루고자 한 사람들이 함께 한 것입니다.
한국 사회는 동질성을 강조하는 사회입니다. 한국의 질병이라고 봅니다. 그런 그룹 많죠? 동질성 톡 방 많죠? 동질성 공간에서 오가는 대화들이 그 안에 맴돌고 사유세계를 제한하는 게 많아요. 확장성 가로막는 대화 많습니다. 다름의 연대를 해야 합니다. 학연 지연 잊으면 좋겠어요. 한국 사회가 훨씬 민주적이 될 것입니다. 문화마다 질병 있어요. 한국의 치명적인 질병이 동질성으로 묶는 집단의식입니다. 민주주의 개념 성숙할 수 없어요. 한 사람 한 사람 독특합니다. 매 사람 투표권. 개체적 존재 인정하는 겁니다. 한국 사회는 내면적으로 보면 반민주적 의식입니다. 선배 후배 언어 호칭 거기에서 진적한 비판 토론 불가능합니다.
미국이 욕도 많이 먹지만 가장 큰 장점은 신제국. 인간이 가진 개체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봅니다. 대학의 연구, 서로 이름 부릅니다. 총장님 학장님 교수님 학생 이런 거 없습니다. 동등한 인간으로 치열한 비판 가능합니다. 선배 후배 없습니다. 학생들도 교수 앞에서 할 말 못 하고 그런 거 없습니다.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미국이 어떻게 지금의 미국이 됐을까. 한 인간이라는 개체성을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가르칩니다. 선배 후배 없이 다름의 연대 가능합니다.
그럼 책임적 애도 생명 돌봄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인가?
나와 너 무수한 너들 함께 잘 살아감입니다. 살아감은 함께 살아감입니다. "Living is living with." "나는 애도한다 고로 존재한다." 내가 당신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걸 받아들이는 순간 애도가 발생합니다. 동료다 친구다 연인이다 가족이다. 한 쪽에 애도 응어리를 품고 살아갑니다. 좌절하고 절망하게 하는 게 아니라 관계의 소중함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공간입니다. 무엇이 집착이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상기시키는 공간입니다. 가슴 한쪽에 애도의 응어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게 진정한 애도,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을 상기키시는 공간입니다. 진정한 애도 책임적 애도 생명존중은, 책임적 돌봄, 연대의 구조,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준 가장 중요한 교훈입니다. 변화를 위해 함께 연대. 다름의 연대. 개인적이고 사적인 것만 아니라 공적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차원까지 확장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긴 시간 함께 했습니다. 여기까지만 하고 질문을 받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1. 00중학교 교장 선생님. 애도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잘 다스리는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참사를 당한 사람에 대해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하는가. 사고의 전환 가져왔습니다. 자해하는 아이들, 자기 생명 존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한계가 있었습니다. 학교 현장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 좀 말씀해 주십시오.
강: 방법은 여러분들이 현장에서 만들어야 합니다. 교장선생님이니까 현장에서 즉각 할 수 있는 걸 만들고 싶으실 텐데. 한국 공교육 구조가 한 인간을 인간으로 보는 의식 자체가 안 돼 있어요. 겉으로는 서구의 교육제도를 가져왔는데 내면은 아니에요. 개체적인 존재로 보는 시각이 민주주의 인권 개념 발전시켰어요. 옷만 빌려왔지 내면적으로는 유교 영향 아래 있어요. 유교 장유유서, 나이 학년 위계 부자 빈자 강자 약자 다양한 구조에서. 아이들이 순진한 게 아니라 인간이 소중하다는 게 아니라 위계가 형성되어버립니다. 특히 한국은 사람을 한 사람 개체성 인식이 결여돼 있다는 겁니다. 한국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까. 할 수 있는 건 어떤 교육 프로그램 가지고 끊임없이 한 사람 개체성 가르치는 겁니다. 다큐멘터리 좋은 거 많습니다. 인종 문제, 성차별, 성소수자. 학교만의 문제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의 문제입니다. 권력을 평등 의식을 가르치는 힘으로 상용하시면 좋습니다.
제안하고 싶은 건 교사들도 그런 교육을 끊임없이 받아야 합니다. 교사와 학생들이 평등 의식 갖게 하는 교육 프로그램 의도적으로 확산시키는 놀이, 비디오, 토론, 그거 밖에 없다고 봅니다. 중요한 질문입니다. 교육엔 '은행식 교육'이 있고 '문제 제기식 교육'이 있습니다. 우리 한국 교육은 은행식 교육입니다.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없게 합니다. 은행 계좌에 돈이 쌓이듯 하는 겁니다. 문제 제기식 교육은 학생들이 비디오를 보면서, 왜 이렇다고 생각하는가. 스스로 문제 인식하게 하고 토론하게 하는 겁니다.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2. 연대에 대해 강조하셨는데 연대하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요.
강: 함께함입니다. 포괄적인 의미는 그 고통을 당한 사람들이 이루고자 하는 변화에 대해 대입하고 도덕적 지지를 하고 그것을 지지하는 정치가들을 지지하고 다양한 제도를 만들기 위해 일하는 겁니다. 구체적인 우선적 행위가 달라집니다. 연대는 일반이 없어요. 특정한 상황에서 같이 하는 겁니다. 어떤 땐 피케팅이 연대일 수 있죠. 미국에서 "아시아 생명이 중요하다" 프로테스트하고 있죠. 거기 나가서 함께 하고 에스엔에스 함께 하는 겁니다. 연대는 한 가지로 제한되지 않습니다. 이런 토론하는 것도 중요한 연대입니다. 새로운 의식하게 하고 새로운 판단하게 하고 새로운 행동 취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변화를 위한 고통 받은 사람들이 이루고자 하는 것을 함께 하는 것입니다.
3. 00대학 교수님, 질문하다가 눈물 나서 멈춤. 나중에 다시 하기로 함.
강: 데리다가 말했어요. "내가 정말 관심 있는 건 무엇인가? 그것은 편지로 보낼 수 없는 것이다." 눈물, 웃음, 미소, 이런 것들 편지로 보낼 수 없죠. 이것이 상징하는 것은, 우리가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구나. 그냥 인간이 아니라 뭔가에 대해 슬픔을 나눌 수 있고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존재구나. 우리의 인간 됨을 실천하는 겁니다. 어떤 페미니스트가 말했습니다. "이 세계의 남성들이 눈물을 흘릴 수 있을 때 세계에 전쟁이 없어질 것이다."
4. 학교에 들어온 아이들에게 애도할 수 있는 공간을 주는 게 필요하지 않나 합니다. 연대할 수 있는 과목이 많지 않지만, 학교 안에서 <당신의 사월> 공동체 상영도 하고 싶은데, 동의를 얻고 진행하는 게 쉽지 않은 거 같습니다.
강: 해답은 구체적인 정황 안에 계신 분들이 끊임없이 찾아야 해요. 최소한의 것을 한다면, 의식을 나누고 확장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살아있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자면, 생명의 소중함을 확산하기 위해 대화하고 책을 읽고, 독서모임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책이 매체가 되어 세계를 몇 바퀴 돌 수 있어요. 안산이라는 특정한 지역적 의미에서 시작해서 확장해서 생명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 다양한 사회적 구조와 연결됩니다. 독서모임 생각하고 싶어요. 공간을 따로 둔다는 건 상징적으로 중요한데 때로 위험한 애도에 빠지게 합니다. 그 공간에서는 낭만적으로 그 안에 빠지게 할 수 있죠. 선생님 역량 안에서 읽고 토론하고 생각하고 대화하고. 우리의 의식을 확장하는 겁니다. 이렇게 여러분과 시간을 갖는 것,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것, 이게 제가 하는 연대입니다. 지치지 않는 것, 가장 중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5. 생명의 위계에 대해 더 말씀해 주세요.
강: 저보고 누가 존경합니다, 그러지 말고 좋아해 주세요, 합니다. 인간은 일관성 있게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에요. 인간은 끊임없이 백 슬라이딩하는 존재입니다. 왜 끊임없이 이론 공부를 해야 하는가. 미국에 사니까 클래스도 다양한 세계의 축소판입니다. 어떤 사람이 인종적 정의에 일 많이 한다고 성차별에 열린 사람 아닙니다. 진보 보수. 한 분야에 진보라고 해서 다른 분야에 진보 자동적으로 되는 거 아닙니다. 끊임없이 학습해야 합니다. 저도 모든 분야에 다 열린 사람 아닙니다. 인식의 사각지대가 있습니다. 한국은 성별 나이 집안 따라 위계 정하죠. 여기 사람도 인종적 위계에 대해선 예민한데 어떤 부분에서는 막혀 있어요. 누구나 인식의 사각지대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공부해야 합니다. 자기 삶에 가장 방해되는 존재는 자기 자신입니다. 기껏 했는데 저만치 미끄러져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성찰하고 끊임없이 자신과 대화하는 것. 소중합니다. 스스로 속에서 용기를 냅니다. 한번 용기를 냈다고 영원히 가는가. 그럼 인간이 아니죠. 좌절감이 왔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게 사람을 달라지게 합니다. 저도 끊임없이 좌절하고 용기 냅니다. 아무리 해도 소용없다. 그걸 넘어가는 건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자신을 잘 돌보고 자기 자신을 만들고 가꾸는 것에서 새로운 변화가 옵니다. 좌절하는 건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마틴 부버 책, 존재의 용기, <Courage To Be>, 살아감이라는 건 끊임없이 용기 내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과 시간 갖고, 용기 냅니다. 저는 피아노가 중요한 친구입니다. 피아노 앞에 앉아서 용기 냅니다. 여러 가지 방법 있겠죠.
6. 416 유가족 위한 말씀 부탁합니다.
-동료 인간으로서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면, 끊임없이 하루하루씩 용기 내서 살아감, 살아야 한다는 책임, 내가 가능하면 내 남아있는 삶을 풍성하게 책임 있게 의미 있게 만들어가야겠다. 그게 가장 소중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one at a time. 한 번씩 한 번씩. 용기 있게. 저도 그런 마음으로 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하루씩 용기 내서 가능하면 행복하게 생명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관계 맺기 하면서 살면 좋겠습니다.
7. 재욱이 엄마 홍영미입니다.
세월호 가족으로서 가장 평범한 사람 중 하나로서 7년 왜 이런 일 일어났는지 진상 규명하느라 달려온 시간이었습니다. 희망고문 상황에서 좌절과 실패 경험했습니다. 마지막 남은 건 희망이라고 봅니다. 그렇게 열심히 하고 지금은 살짝 쉬어가야 하는 때고 당사자가 포기하지 않고 할 때 된다는 생각입니다. 힘을 내고 용기를 내야 하는 7주기입니다. 매 순간순간 집중하고 놓치지 않고 저는 힘들지만 의료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연대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저희가 쓰러지지 않는 게 연대입니다. 힘을 낼 수 있는 건 정말 옆에 있다는 걸 체감할 때입니다. 간절하게 어느 정도까지는 진상 규명 되도록 연대 만들면 좋겠습니다.
강: 저도 아이가 둘입니다. 늘 가슴에 품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 아이를 잃은 부모님들 마음을 제가 어떻게 다 알겠습니까. 용기 품고 사시는 거 정말 감동받습니다. 제가 그 자리에 있다면 할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하루하루 용기 내고 힘내고 행복하게 의미 부여하고 서로 용기 줘 고 자신에게 용기 줘 고 살아가시면 좋겠습니다.
8. 시간 다 됐는데 유가족 어머니들이 더 많이 나누고 싶다는데 괜찮으시겠어요?
강: 좋습니다. 여성들이 도착하고 있다 큰길만이 아니라 작은 골목길에서도 문만 아니라.... Women are now arriving 부재 속의 현존.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women에 넣어보셔도 됩니다. 몸은 부재하지만 몸은 끊임없이 살아남아서 앞으로 계속 살아가게 한다는 말입니다.
9. 상준이 엄마 강지은입니다.
생명의 위계 차별 때문에 현장에서 경험했고요. 가족들이 애도 과정을 못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애도 과정을 겪고 있었더라고요. 그대로 하고 있었구나. 외줄타 기를 계속하고 있었구나. 가족협의회에서 하고 있는 것들이 진정한 애도 과정이더라고요. 이 사회가 이대로 가서는 안 되겠다. 이게 애도 과정인 걸 몰랐습니다. 자꾸 위험한 애도로 가고 싶은 겁니다. 교수님이 언급하셨는데 뒤로 물러서고 싶은 맘과 계속 싸우는 겁니다. 단순히 우리 아이만 생각하는 게 아니었구나, 우리 아이가 살아가지 못한 것까지 생각하는 게 애도구나. 하루하루 용기 내라는 말씀 딱 저희에게 필요한 말씀입니다. 용기 내기가 쉽지 않아요. 감정이 올라오네요. 그 말이 위로가 되네요. 크게 보지 않고 그때그때 용기를 내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우리 가족들한테는 자기 자식을 잃어버리고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겁니다. 그만해 지겨워. 이런 말 여전히 듣고 있어요. 사회적 지지가 꼭 필요하다. 스스로에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동안 혼란스러웠던 것들 정리해 주는 강의였습니다. 또 한 가지는 우리 아이들이 강남의 아이들이었다면... 계속 저를 찔러요. 그 당시에도 계속 찔렀거든요. 그게 걸리네요.
강: 부잣집 자제분들. 그 소리 듣고 저도 화가 났었어요. 강남 강북 부자 가난한 따지는 한국 사회 지도자가 하고 있다는 게 한국의 아픈 상처입니다. 세월호 배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 참사로 만든 거구나. 구성들 분석해 보니까 굉장히 화가 났습니다. 치명적 질병. 한국 사회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큰 문제라고 봅니다. 아주 후진국입니다. 테크놀로지 발전해서 선진국이 되는 것 같지만 사람을 차별하는 시선 아주 후진국입니다. 7년이 지나도록 너무나 뿌리 깊은 문제가 집결돼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에서 참 가장 마음 아픈 것 중 하나가 그 부분입니다. 강지은 선생님 그 마음 아픈 그 부분 정말 속상하고. 모든 것 분석해봐도 생명의 위계. 가장 깊은 문제 중 하나. 한국 사회의 모순입니다. 위험한 애도와 진정한 애도 참 잘 말씀해 주셨어요. 인간이기 때문에. 그래도 거기에서 위험한 애도 감옥에 갇히지 않고 용기 내서. 하루씩. 저 자신에게 잘 하는 말입니다. 옛날에는 한 학기씩 계획했는데, 요즘은 하루씩 최선을 다해 사는 것. 하루씩만 사는 것. 아침이면 새롭게 용기를 내야 합니다. 진솔하게 나눠주신 경험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스스로 증명하셨어요. 비판적 사유한다는 건 내가 나와 대화하는 겁니다. 강지은 선생님은 두 나가 서로 대화를 하는 거예요. 인간이기 때문에 왔다 갔다 할 거예요. 한번 결심했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