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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Feb 24. 2024

아뇨, 저도 소주로 주세요

1982년, 엉망진창 숙취의 밤이었고 무지막지 혼란스러운 봄이었다.


대학 신입생 나를 떠올리면 두 캐릭터가 겹쳐 보인다. 먼저 부스스한 반곱슬 커트 머리에 후줄그레한 옷을 입고 싸돌아다니는 '자유로운 영혼'이 보인다. 호기심과 열정을 따라 여기저기 기웃거리느라 눈에 불이 켜져 있다. 동시에 낯선 도시에서 길 잃고 헤매는 '어린 양'도 보인다. 두려움과 허무로 주눅 든 가슴을 허세로 가리느라 눈에는 항상 힘이 들어가 있다.      


이 두 캐릭터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엉망진창 혼란스러운 청춘이었다.        

   



내 이름은 4년 장학생    

 

“멋있구먼. 헐렁하고 자유로운 게 딱 내 스타일인 걸?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잖아. 이제 생활 장학금을 받으면 옷 사 입을 테니 걱정하지 마소.”     


엄마의 헌 외투를 입으며 나는 잔뜩 허세를 떨었다. 엄마가 행여 미안하단 말이라도 할세라 나는 더 씩씩하게 모델처럼 걸어 다녔다. 땋았던 긴 머리도 커트했겠다, 청바지와 티셔츠 위에 엄마의 코트를 걸치니 제법 대학생처럼 보였다. 여기에 시장 바닥에 쌓인 무더기에서 단돈 2,000원 주고 산 갈색 단화를 신고 대학 입학식 하러 서울길을 나설 참이었다.     

 

요즘도 그렇듯 대학들은 학생 유치 경쟁하고 고등학교는 대입 실적을 내세우던 때였다. 담임 선생님이 나를 따로 불러, 나처럼 형편 어렵고 성적 좋은 아이를 ‘데리러’ 서울에서 교수님이 왔다고 했다. 4년 등록금 면제, 매월 생활장학금 지급, 고시반 기숙사 제공, 성적을 유지하면 대학원도 보장되는데 단, 법정대학으로 지원하는 조건이었다.      


고시반 기숙사 생활에 고시공부가 무얼 의미하는지 알 게 무언가. 하게 되면 하겠지, 덕분에 판사가 될지 어릴 적 꿈대로 외교관이 될지 누가 알아? 부모에게 손 안 벌리고 대학공부할 기회 아닌가.


며칠 고민해 봐도 이미 정해진 답이었다. 법학과, 정치외교학과, 행정학과 셋 중 내 마음이 가장 끌리는 정외과를 썼다. “집 가까운 대학 나와서 선생 해라”던 엄마를 떠날 수 있는 길이었다. 단속도 잔소리도 잊고 교사도 잊으리라. 일본도 같은 몽둥이로 우리를 잡아대던 영어. 임신한 몸에 퉁퉁 부은 다리로 재미없이 수업하던 생물. 별명이 불가사의인 지리 샘 등. 학교에 갇힌 그런 선생은 내 미래일 수 없었다. 세계를 누비는 자유인으로 살리라 했다.  

    

엄마는 나를 ‘스카우트 4년 장학생’이라 불렀다. 드디어 집안의 첫 대학생으로 딸을 떠나보내는  40대 후반의 엄마 맘은 얼마나 기쁘고 또 얼마나 복잡했을까. 내가 물 가에 내 놓은 아이처럼 보였을까. 아마도 대학 구경도 못 시킨 큰 자식 둘을 생각하며 엄마는 울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 맘엔 드디어 자유, 드디어 독립, 그런 생각뿐이었다. 두둥실 뜬구름에 몸을 실어 떠나는 1982년 2월 말이었다.




아뇨, 저도 소주로 주세요!     


대학 입학식 전에 고시반 신입생 환영회가 있었다. 정대 지하 큰 강의실에 책상을 길쭉하게 연결해 만든  잔치자리였다. 참석자가 재학생 신입생 합해 60명은 넘어 보이는데 여학생은 10%도 안 됐다. 재학생들은 서로 잔을 채웠고, 신입생들만 고시반 남자 회장이 직접 채워주었다. 회장은 일일이 다니며 남학생들에겐 소주를 여학생들에겐 콜라를 따라주었다.      


“아뇨. 저도 소주로 주세요!”     


내 순서가 되었을 때 내가 소주잔을 내밀며 콜라병을 든 회장에게 말했다. 태어나서 처음 앉아있는 술자리였고 생전 처음 만지는 소주잔이었다. 여학생들만 콜라를 마시는 게 마음에 안 들었고 나는 소주 맛이 진심 궁금했을 뿐이었다. 순간 멈칫하던 선배는 바로 소주병으로 바꿔 들고는 싱글벙글 말했다.     


“그래? 김화숙이 대단한데? 좋지!”

곁에서 보던 남자들이 한 마디씩 거들었다.

“그렇지! 바로 그거야! 화숙이가 뭐 좀 아네.”

“고시반에 멋진 여학생이 들어왔구먼.”    

 

순식간에 분위기가 훈훈해지며 술잔이 채워졌고 누군가가 건배사를 했고 다 함께 잔을 높이 들었다. 그들 중 하나로 나도 소주를 들이켰다. 그랬다. 난생처음 맛보는 소주였다. 아주 씁쓸하고 찝찔한데 나름 쾌감이 있었다. 압도적 다수인 남자들 사이에서 나도 그들 중 하나가 되는 기분이었다. 듬성듬성 앉은 여학생들은 선배도 동기도 모두 콜라를 마시는 분위기였다.      


내가 곁에 있는 남자 선배에게 물었다.

“남자는 소주 여자는 콜라, 이건 고시반 법인가요, 전통인가요?”

사람들이 또 왁자하게 웃어젖혔다. 저마다 한 마디씩 보탰는데, 그런 법은 없어 보였다.    

  

내 술잔은 다시 채워지고 비워지고 또 채워졌다. 고시반에 이런 여학생이 와서 좋다, 이게 사람 사는 맛 아니겠냐, 화숙이 최고다, 소리가 들렸다. 내게 와 잔을 채워주는 사람들과 인사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첨인데 뭔들 신기하지 않았을까. 주는 대로 나는 받아 마셨고, 질문하고 떠들고 웃었을 것이다.

      

그러나 잔치는 즐겁게만 흘러가는 게 아니었다. 내 몸이 문제였다. 머리가 띵한 듯 어지러운 듯 속이 메스껍고 멀미가 날 것 같았다. 허세는 끝났다. 자리를 지키는 것도 구경만 하는 것도 포기해야 했다. 나는 화장실 가는 척하고 자리를 떴다. 지상으로 나와 바람을 쐐며 서성여봤지만 다시 자리로 돌아갈 자신이 없었다. 100미터 정도 떨어진 기숙사까지 갈 길이 너무 아득하게 느껴졌다.


가로등만 듬성듬성 비추는 밤길을 혼자 비틀거리며 걸었다. 마음은 말짱한데, 고지가 바로 저긴데, 다리가 도대체 말을 듣지 않았다. 기숙사를 코앞에 두고 바위벽에 기대려는 순간 왕창 토사물이 쏟아졌다. 길바닥에 쓰러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야 했다. 기숙사 방까지 어찌어찌 기어들어가 뻗어버렸다.


엉망진창 숙취의 밤이었고 무지막지 혼란스러운 봄이었다. 다가올 내 청춘의 복선인 줄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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