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꿀벌 김화숙 Feb 22. 2024

나를 뭘로 보고 감히 이딴 편지를!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야단법석 뒤엔 엄마를 의식하는 마음이 있다는 걸


중학교 2학년 어느 봄날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부엌에서 엄마를 도와 아궁이 불을 때고 있는데 “편지요!” 우체부 소리가 들렸다. 내 앞으로 온 편지였다. 보낸 사람이 누군가 잠시 낯설었는데 고향 이웃 동네 살던 코흘리개 남자아이 이름이었다. 내가 영해로 전학 온 후 그 아이는 경주로 전학 갔다더니, 5년여 만에 기억나는 이름이었다. 부모님들이 서로 아는 사이, 한 학년 한 반뿐인 시골학교에서 2년 같은 반을 다닌, 이게 우리 사이의 전부였다.    

 

예상하지 못한 남자아이의 편지에 나는 속으로 당황하고 있었다. 긴장됐지만 태연한 척 편지를 뜯었다. 엄마가 보는 앞에 행여 연애편지기라도 하면 어쩌지? 그 난감한 상황이 걱정될 뿐이었다. 이 새끼를 어떻게 혼내주지? 생각부터 했다. 내가 코흘리개랑 연애라도 하는 것처럼 보일 순 없는 일이었다. 우리 엄마가 누구인가. “집에서 회초리를 아끼면 나가서 남한테 욕먹고 다닌다는 사람 아니던가.    


가는 내 몸과 마음이 안심이 안 됐을까, 사춘기라 엄마는 더 엄하게 나를 단속했다. 여자니까, 가시나니까, 행동거지를 항상 조심하라는 소리를 자주 했다. 평소 학교와 집만 오가는 모범생이었지만 내가 워낙 활달하고 엉뚱한 면이 있어서 엄마는 불안했을 게다. 어쩌다 날 저물어 다니기라도 하면 난리가 나곤 했다.


바로 얼마 전 교회 학생회가 늦게 끝난 날 밤에도 그랬다. 고등부 남학생 회장이 중등부 셋을 차례로 집까지 데려다줬는데 우리집이 마지막이었다. 집 앞에 도착하기 무섭게 나는 기다리던 엄마에게 끌려들어 갔다. “교회당이 연애당”이 됐다는 지청구를 들어야 했고 매를 맞아야 했다. 묻지마 매타작이었다. 그런 날 나는 울지도 않고 침묵하는 아이였다. 나를 믿지 않고 말할 기회도 안 주는 상황에서 눈물을 보이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내가 의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나름의 저항이었던 것 같다.    

       

또 그런 일이 닥치지 말란 법이 없었다. 그러나 코흘리개 소년의 편지는 내용도 시답잖고 길이도 짧았다. 계절이 어쩌고 고향이 저쩌고 공부가 어쩌고, 매일 나를 생각하네, 좋으네, 그러니 꼭 답장하라는 당부로 끝났다. 이런 시시껄렁한 글쪼가리 때문에 엄마 앞에서 내 자존심이 구겨진 셈이었다. 엄마가 어떤 오해를 할지, 무슨 반응을 할지 알 수 없어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나를 뭘로 보고 감히 이딴 편지를 써! 에이 천하에 한심한 놈!”     

 

나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쥐고 있던 편지와 봉투를 거칠게 구겨버렸다. 동시에 이글거리는 아궁이불 속으로 종이뭉치를 휙 던져버렸다. 순식간에 불살라지는 꼬라지를 씩씩대며 똑바로 지켜보았다. 엄마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와 아궁이불을 번갈아 보더니 달래듯 말했다.       


“가가 원래 어릴 때도 엉뚱했니라. 놀리는 가시나들 때려준다고 우리 동네까지 돌멩이 들고 따라오던 아잖아. 공부할 땐데 쓸데없는 짓 하는 거 봐라. 아가 많이 싱겁구먼.”     


행여 나까지 싱거운 사람 될까 나는 황급히 부엌을 떠났다. 내 방으로 가며 엄마에게 잘 들리도록 더 큰 소리로 바락바락 소리질러댔다.


“지가 뭔데 날 좋다고 지랄이야. 나를 알아? 무슨 상관이냐고!”


방문을 꽝 소리나게 닫고 책상 앞에 앉았다. 깊은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마음이 진정되길 기다렸다. 어릴 적 코를 질질 흘리며 따라오던 촌놈의 번들거리던 이마가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감히 나를 여자로 대하다니, 시건방진 놈을 손봐줘야 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야단법석 뒤엔 엄마, 엄마를 의식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엄마한테 오해받기도 야단맞기도 싫다고 온몸으로 항변하고 있는 내 마음을 엄마는 알까 모를까.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누구네 딸처럼 아무나 만나는 거 아니대이.”

“여자가 쉽게 보이면 남자가 함부로 건드리게 돼 있다.”

“여자와 접시는 한 번 깨지면 못 쓰게 된다.”…    

 

코흘리개 남자애 때문에 엄마한테 그딴 소리 듣는 건 정말이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내 결백을 어떻게 말로 증명한단 말인가. 당신 딸이 다른 집 아들한테 휘둘리기라도 하는 줄 엄마가 오해하게 할 순 없었다. 나는 가슴을 다독이며 고요히 앉아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엄마가 내 맘을 알아차린 걸까. 나를 나무라는 소리가 없었다.     

 

 나는 밤늦도록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가마떼긴 줄 알 테니 내가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걸 보여줘야 했다. 영어편지를 보내기로 했다. 놀라워라. 봉투에 적혀있던 주소가 또렷이 기억났다. 일별하고 아궁이에 던진 줄 알았는데 이 기억력이라니. 참고서 '성문영어'와 영어사전을 뒤져 문장을 고르고 응용했다. 필기체 영어를 휘갈겨 편지지 반 장을 채웠다.   

    

‘나를 뭘로 보고 이딴 편지냐. 공부나 해라. 철없는 애하고 놀 생각 없다. 편지는 아궁이 불에 던져졌다. 만약 또 보내면 안 읽고 불태워버릴 테니 그리 알아라…’ 그런 엄포였다.    

 

다음날 아무도 모르게 학교 가는 길에 편지를 부쳤다. 엄마도 모르는 일이었다. 엄마는 내가 하는 짓에 대해서도, 그 아이에 대해서도 다시 언급하지 않았다. 편지도 다시 오지 않아 코흘리개는 잊혀졌고, 나는 고등학생이 되어 대구로 떠났다.   

  

여고 1학년 어느날 우리 학교 앞에 그 녀석이 교복 차림으로 나타났다. 당황스러웠지만 내 눈엔 여전히 시시한 고향 아이로밖에 안 보였다. 그 아이는 세상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때 니가 보낸 편지 문장은 거의 성문영어에서 가져온 거더라? 맞지?”

뜬금없는 질문에 내가 콧방귀를 뀌듯 무심하게 되물었다.

“그래서 뭐? 뭔 뜻인지는 알겠더냐?”

아주 진지한 태도로 녀석이 다시 말했다.

“좋은 문장이라 내가 싹 다 외워버렸잖아. 지금도 기억하는데, 말해 볼까?”     

이전 11화 중고 세탁기와 사모 선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