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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Feb 27. 2024

미안해요 사마리아 왕언니!

사랑에 목마르고 의미에 목마르고 자기를 찾아 헤매는 게 인간 아닌가요?


사모하는 사마리아 왕언니께        

  

“야, 작가라고 혼자 책 내는 거 아니다. 너 편집자 없는 책 본 적 있어? 있으면 말해 봐. 성경도 편집자가 있어.”      


넷플릭스에 떴길래 클릭으로 <싱글 인 서울>을 봤어요. 출판사 대표가 논술 강사 영호를 작가로 영입하며 하는 말이 인상적이더군요. 싱글남 영호는 여자 편집장을 썩 맘에 들어하지 않는 눈치거든요. 글 쓰고 싶다, 작가 하고 싶다던 사람이기에 사장은 혼자 글 쓰는 게 끝이 아니라며 열심히 설득하죠. 성경도 편집자가 있다, 이 대목에서 제가 빵 터졌답니다.     


성경과 편집자, 고개가 끄덕여졌어요. 성경을 일점일획 문자적으로 무오하다고 믿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성경도 편집자의 작품인 건 맞죠? 저도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를 내면서 좋은 편집자를 경험했어요. 글은 작가가 쓰지만 책은 편집자의 작품이죠. 복음서도 저자마다 예수 행적의 자료를 취사선택해서 각자의 관점대로 편집해 썼잖아요. 성경이 66권으로 결정되는 과정도 어떤 걸 넣고 뺄지 지난한 토론이 있었죠. 그리고 성경 번역 과정 역시 편집이 있을 수밖에 없었고요. 

    

제가 좋아하는 성경 문학 요한복음 4장 이야기를 언니와 함께 나누고 싶었어요. 그 주인공 ‘사마리아 왕언니’ 니까요. 언니는  제 청춘의, 특히 20대 제 인생의 중요한 주제어였다 할 수 있거든요. 언니와의 조우를 추억하며 편지를 쓰고 싶었어요. 존경과 사랑을 고백하고 사과도 하고 싶었고요. 제가 유능한 편집자가 되어  시절 이야기를 언니 한 사람 중심으로 편집해 보려 해요.


그리고 언니! 우리 평어로 하자!




목마름 문제?    

     

대학은 늘 최루탄에 절어 있었고 나는 고시반을 나와도 여전히 아웃사이더였어.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고 있으면 데모에 참여하지 않는 자신이 이기적으로 보였어. 학과에서 함께 데모에 참여할 땐 아는 게 없어 어정쩡한 입장이었어. 1학년 말 어느 날 학과 단체로 서울 시내 데모에 참여한 후 뒤풀이를 할 때였어.       


“여자들은 안 되겠어."

"학회도 안 하고 시국 문제에도 관심 없고 뭐 하냐?”      


술이 들어간 남자들이 여학생들을 험담하더구나. 평소 자가용을 끌고 옷도 잘 입고 다니는 동기 남학생이 꼴 보기 싫어 내가 탁자 건너편에서 큰소리로 쏘아붙였지.

“너는 아쉬운 게 없으니 모든 걸 잘하나 보구나? 니가 뭔데 여자애들을 싸잡아 욕하냐? 걔들 형편을 알아?” 그런 요지였을 거야.      

 

그 동기가 벌떡 일어나며 빈 소주병 주둥이를 잡고 탁자 모퉁이를 탁 내리쳤어. 삐죽삐죽 깨진 병으로 나를 향해 돌진할 듯 위협하더구나.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어. 주변 남학생들이 다 달려들어 뜯어말린 덕분에 피는 안 보고 끝났지만 나는 분노와 실망에 두려움까지 뒤범벅이 됐어. 그 자리에 있는 유일한 여자로서 내가 가만히 듣고 있어야 했던 거야?혼자 자리를 떴어. 내가 속할 곳이 없더구나.     

 

어느 날 같이 어울려 연애 놀음하던 남학생이 내게 말했어.

“너랑 말이 잘 통할 거 같은 좋은 누나 한 명 있는데 소개해 줄게. 같이 가자.”

분명 나랑 말이 잘 통할 거라더구나. 귀가 솔깃해서 내가 확인했지.

“누구길래? 나랑 말이 통할 거라고 어떻게 장담하지?”  


난 정말이지 말 통하는 사람에 목말랐거든. 공허한 구호 말고 깊이 소통하는 인간관계가 그리웠. 그렇게 만난 사람이 선교단체의 K였어. 직장 생활하며 대학생들을 전도하기 위해 캠퍼스를 내 집처럼 드나드는 '목자'였지. 난 그 언니가 좋았어. 내 장점과 단점을 다 꿰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내 말에 귀 기울인다는 느낌을 받았거든.  

        



사마리아 여인, 그 납작한 이름     


K와 가끔 만나 라면도 먹고 성경공부도 몇 번 하다 보니 새 학기가 되었어. 사마리아 왕언니를 알게 된 게 바로 그 봄이었어. 선교 단체에서 신입생 환영 성경학교가 있었어. 고시반 신입생 환영회가 술잔치였다면 성경학교는 말 그대로 3-4일간 신입생들을 돕는 성경 잔치였지. 재학생들의 대학생활 경험과 신앙 간증도 있고 음악도 있었어.


나보고 둘째 날 소감을 발표하라지 뭐야. 난 간증할 믿음 따위 없었지 물론. 그런데 2학년이 몇 명 없어서 빠질 수가 없더구나. 요한복음 4장을 공부하고 자기에게 적용해 글을 써야 했어. 거기 이름도 없는 ‘사마리아 여인’이 등장하잖아. 한낮에 물 길으러 우물에 왔다가 예수와 대화하게 된 사람.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여섯 번째 남자와 살고 있는 사람.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기뻐서 동네로 가 예수를 증거한 사람.     


당시 유대인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상종하지 않았지. 혼혈에 종교적인 순수성이 오염됐다고 멸시하고 혐오했으니까. 예수는 그런 사마리아 땅을 피하지 않고 갔고 우물가에서 언니에게 물 좀 달라며 말을 걸더라?

“당신은 유대인인데 사마리아 여자 나한테 물을 달라 하는가요?”

까칠한 언니 반응이 재미있었어.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라며 대화를 이어가는 예수도 매력적이었어.     


사마리아 왕언니!


단체에서 언니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했는지 알까? 언니는 목마른 여자, 남자에게서 만족을 찾으려다 '부도덕한' 삶을 사는 여자였지. 죄의식과 수치심으로 사람들 없는 한낮에 혼자 물 길러 올 수밖에 없었대. 그런 여자에게 예수가 먼저 말을 걸었고, 인내하며 대화로 섬겼고, 다시는 목마르지 않게 하는 생수를 주었다. 정욕죄를 다 용서하고 참 남편이요 그리스도로 만나 주었다. 이렇게 배웠어.    

  

K의 첨삭을 받아가며 나도 그렇게 적용했어. 내가 바로 목마른 사마리아 여자라고. 남자들을 바꿔가며 만났고 감정대로 정욕대로 살았지만 목말랐다고. 내 죄를 회개하고 생수되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다고, 이젠 목마른 사마리아 여인들의 목자가 되겠다고 고백했어. 그때 눈물을 펑펑 쏟았던 기억이 지금도 또렷해.     


아, 그때 예수가 내 맘에 들어온 건 틀림없어. 예수가 좋아서 따르고 싶었어. 그런데 '사마리아 여인',  납작한 이름으로 내 20대가 규정 줄 그땐 몰랐어. 세상에 목마르지 않은 사람도 있나? 사랑에 목마르고 의미에 목마르고 자기를 찾아 방황하는 게 인간이잖아. 목마름이 죄야? 젊음의 열정과 시행착오를 ‘죄’와 ‘정욕’으로 고백하는 게 그땐 거룩한 삶인 줄 알았어. 그게 어느날 내 목에'주홍글씨'로 걸리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지.

      



언니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그런데 언니! 그날 이후 요한복음 4장은 내 인생의 화두가 되었나 봐. 끌림과 질문으로 언니를 읽게 되고 자꾸 좋아지더라고. 사마리아 여인을 차츰 다르게 보게 됐어. 언니와 예수의 대화를 끝까지 살펴 봐. 뒤로 갈수록 점점 신학적인 주제가 확장되잖아. 성경에서 이런 선각자가 또 있던가?예수와 가장 길게 대화한 사람일걸? 남자관계가 복잡한 죄많은 여자라는, 그 납작한 관점에 나는 점점 동의할 수가 없었어.      


시공간의 맥락으로 성경을 보자구. 사마리아도 유대 땅도 그땐 남녀가 평등한 세상과는 거리가 멀었잖아. 여자들은 남자의 소유물에 가까웠지. 언니는 어쩌다 여섯 번째 남자와 살게 되었을까? 과연 언니 스스로 남자를 갈아치워서, 특별히 '음란하고 부도덕해서' 그리 됐을까? 결혼 외에 여자가 살 길이 있었나? 남편이 죽었거나 버림받은 여자는 어떻게 살았지? 다시 어느 남자의 아내가 되지 않고  길이 있었냔 말이야.      


언니는 혐오와 차별과 멸시의 대상이었을 거야. 자신의 과오나 죄 때문이 아니었고 말고. 언니는 사회의 낙인과 배제를 거슬러 당당하게 살아남은 생존자였어. 예수와 영혼 깊은 대화를 했고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인 믿음의 용사였어. 언니를 가두는 모든 장벽을 스스로 깨고 세상으로 나갔고 입으로 예수를 증거했어. 여성의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시대에 이건 혁명과도 같은 일이었지.  

   

예수와 끝장 토론을 하는 언니가 참 멋졌어. 영적이고 철학적인 주제를 자유롭게 다뤘잖아. 예수 복음을 직접 전한 최초의 여성이 아닌가 해. 남성 중심 사회에서 차별받던 여성, 멸시받던 사마리아 지방 사람, 종교적 사회적으로 힘없는 사람이었지만 언니는 전혀 비굴하지 않았어. 공공연히 남자와 여자가 대화하는 걸 금기시하던 문화도 거슬러버린 용감한 사람이었어. 물론 언니와 대화한 예수가 정말 멋진 분이었고.     

 

사마리아 왕언니! 언니야말로 예수 복음 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캐릭터야. 예수가 전하는 하나님 나라가 이런 사람들의 것임을 몸으로 보여줬잖아. 남성 중심에 강자에 맞춘 질서 말고, 약하고 배제되고 차별받던 사마리아 언니가 전혀 주눅들지 않아도 되는 나라. 남자도 여자도 유대인도 이방인도 종도 자유인도 차별없는 나라. 언니는 믿음으로 그 시대의 편견과 통념을 깨고 하나님 나라의 목소리가 되었어.    

  

언니 정말 고마워. 멋진 왕언니, 용기와 믿음의 사람. 내 20대에 이런 관점으로 언니를 읽어내지 못한 게 아쉬워. 언니를 그토록 납작하게 보다니, 정말 안타까워. 그래서 많이 미안해. 사마리아 언니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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