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이 서울에서 시엄마를, 숙이 안산에서 친정엄마를 돌보게 될지도?
한양 천 리 떠나간들 너를 어이 잊을 쏘냐
성황당 고갯마루 나귀마저 울고 넘네
춘향아 울지 마라 달래었건만
대장부 가슴속을 울리는 님이여 아~ 아~
어느 때 어느 날짜 함께 즐겨 웃어보나
1953년에 나온 ‘남원의 애수’라는 유행가 첫 절 가사다. 춘향전이 내용인, 이 도령이 화자로 하는 노래다. 가사도 곡조도 낯선 이 노래는 시엄마가 종종 부르는 걸 듣다가 확인하게 됐다. 긴 세월 쌓았던 기억을 이제 대부분 잊어가는 듯 보이는 92세 노인의 뇌가 어떻게 흘러간 노래 가사와 곡조는 정확하게 출력해 부를까. 신기한 감동이라 지나칠 수 없다. 노래 검색도 하고 가사를 살펴보게 된다.
목소리가 좋고 노래를 좋아하는 시엄마(92세)는 무료하면 노래한다. 창원 3개월이 끝나고 서울 큰아들네서 지내는 3개월의 첫 주였다. 연휴에다 어버이날도 끼고 해서 내가 며칠 서울에 머물렀다. 걷는 거나 힘은 살짝 나빠진 것 같으나 식사나 노래 실력은 변함없이 좋았다. 내가 안산으로 돌아온 후 덕은 엄마 노래를 녹음해 가족톡에 올려 주었다. 7분 22초짜리 노래 파일엔 춘향과 이도령, 평양 기생, 나그네, 그리고 처녀뱃사공으로 가득했다.
시엄마 노래하는 건 좋은데 가사는 빻았어!
“님께 향한 일편단심 채찍 아래 굽힐 쏘냐. 옥중에 열녀 춘향 이도령이 돌아왔네.”
“가야 할 길이라면 말없이 보내리라. 야속하게 떠나가는 무정한 그 사람아.“
“내 낭군 알성급제 빌고 또 빌어 평양 기생 일편단심 변함없다오.”
“차가운 밤하늘에 웃음을 팔더라도 이제는 모두 잊고 내 품에 잠들어라.”
끝없이 여자한테 받들어지는 남자 목소리다. 아, 이 지랄맞은 내 성질머리, 이 귀, 어째야 하나. 시엄마 노래하는 건 참 보기 좋은데 그놈의 가사는 진심 못 들어주겠다. 귀를 기울여 무슨 노래인가 궁금해하면, 검색이라도 해서 확인하면, 결국 빡치게 된다. 빻아도 너무 빻은 가사를 입에 달고 살다니! 도대체 이 나라엔 남자들만 살았던 게 확실하다. 여성이 저리도 진심으로 남자 편에서 노래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으~~ 허구한 날 남자는 제멋대로 무정하게 떠나고 여자는 일편단심. 웃음 파는 기생, 열녀가 남자 품을 그리워하고… 에효, 남자만 인간이던 시대를 탓하자. 시엄마가 뭔 죄냐. 어지간한 추억도 다 잊고 생각도 삶도 단순 또 단순해졌는데, 저노무 남성중심 가치관까지 좀 잊어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세월과 함께 생각이 변하고 눈도 변하는 게 사람인데, 시엄마에게 가부장제는 신앙이요 종교요 생명 같아 보인다.
나도 노래 좋아하지만 교회에서나 합창단에서 하는 거 말고 혼자 저 정도로 열심히 노래하는 게 얼마나 되나 모르겠다. 노래 한곡 익히는 게 자꾸 어려우니 우째. 젊었을 때 좋은 노래를 많이 불렀어야 하는데. 언젠가 내가 시엄마만큼 나이 들었을 때, 내 입에서는 어떤 노래가 흘러나올까. 기억 주머니에 좋은 노래 좀 많이 입력해 둬야겠다. 내 딸 며느리 손녀들이 빡치지 않고 따라 부르고 싶게. 이거야말로 망상인가?
친정엄마도 시엄마도 오직 아들교 신자
나: 엄마 내가 톡으로 보낸 시엄마 노래 들어봤어?
엄마: 들어봤다. 옛날 노래를 잘도 기억하시네. 사돈은 참 복 받은 양반이다. 부럽다.
나: 그렇다고 봐야지. 아들만 있으면 아무 걱정이 없으니까. 노래 잘하는 울 엄마 자꾸 생각나서 보냈어.
엄마: 밥 맛 좋고 노래하고, 아들네 살고, 노인한테 이보다 더 큰 복 없다. 내사 맛있는 게 없다.
나: 울 엄마도 복 많은 거 같은데. 아냐? 엄마 즐겁게 노래하는 거 듣고 싶다. 아들네 살아야 복인 거야?
엄마: 아이구 우리 아들 며느리는 절대 엄마 오라 안 칸다. 어버이날 며느리 전화도 없더라.
나: 엄마, 바쁜 세상에 그럴 수도 있지. 엄마, 근데 꽃사진 말이야. 미국에서 애들이 보낸 이쁜 꽃 받았는데, 내사 입이 찢어지게 고맙고 즐겁더만, 엄만 아니었나 봐? 엄마 꽃도 그래 좋아하더니 안 기뻐?
엄마: 아들한테 보낼 사진이라니 웃을 기분이 아니었다. 암만 웃어볼라 캐도 안 되더라.
나: 엥? 미국 우리 애들이 보낸 꽃인데 웬 아들 생각? 어느 아들 말하는 거야 엄마?
엄마: 누구는 누구, 우리 아들이지. 요양사 선생님이 아들한테 사진 보낸다고 찍자 그러대.
나: 도대체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꽃 보내 준 우리 아들한테 할머니 사진 보내게 꽃이랑 엄마 좀 찍어주라 그랬지. 엄마는 재훈이 수민이 보낸 선물 받고도 오직 자기 아들만 생각했구나, 세상에.
엄마: 아. 나는 니가 니 동생한테 엄마 사진 보낸다는 소린가 했지.
나: 환장한다 내가. 하여간 우리 엄마 아들 말곤 다른 자식들은 마음에 없다 그쟈?
엄마: 사진 찍을 때는 아직 아들이 전화도 없었다. 너그 아덜만 했지 서울 손자들도 소식 없더라. 나중에 아들이 전화 오긴 했다. 이번엔 이런저런 얘기가 좀 길더라.
나: 이러니 내가 이 세상 가장 강력한 종교는 가부장제고 아들교라 안 하나. 교회 뭐 하러 나가? 울 엄마도 시엄마도 아들교 신자라고 해야 해. 아들이라야 행복하고 아들 아니면 우울하고 저래 불행한데. 안 그래?
엄마: 그렇나. 사돈은 좋은 아들하고 살잖아. 노래가 절로 나오지 그러면.
만약 우리집에 오라면 오고 싶어?
나: 환장한다. 엄마가 그래 원하면 솔직하게 아들며느리한테 좀 데려가 달라 말하는 게 어때?
엄마: 그런 소리 못 한다. 가들은 그럴 리도 없다. 말이나 따나 엄마 오라 하면 내가 노래하고 춤추지.
나: 자존심은. 아들아들 아들교 믿는데 왜 그런 소리도 솔직하게 못해?
엄마: 며느리 같이 몬 산다. 너그 언니가 같이 살자 하면 제일 좋은데, 가가 안 되겠다 카더라.
나: 그럼 엄마, 요양병원도 요양원도 안 가고 싶고, 점점 쇄약해지는데, 어떻게 해? 요양사 시간 더 늘려야지.
엄마: 지금 요양사로 족해. 하는 데까지 내 집에 살다가 도저히 안 되면 가야지.
나: 어디로? 엄마 지금 상태는 곁에 누가 있어야 하는 게 맞아. 만약 우리집에 오라면 오고 싶어?
엄마: 그러면 제일 좋지. 내가 원하던 거다. 사돈도 있는데 정서방한테 미안해서 입이 안 떨어졌다.
나: 진심이야 엄마? 우리집 계단도 높고, 내 성질 더러워서 엄마가 같이 살기 어려울 걸? 딸네라서 기가 죽네, 아들 소리나 하고 그러는 거 내가 못 보잖아. 사돈 앞에 민망하네, 그러려면 애시당초 생각하지도 마. 지금 사돈은 어차피 서울에서 정서방하고 지내잖아. 엄마는 안산에서 딸하고 지낼 수도 있지 까이꺼.
엄마: 그래 주기만 하면 최고 좋지. 가고 싶고말고.
나: 아직 엄마 병원 예약 날짜 한 달 기다려야 하잖아. 그동안 진지하게 생각해 봐.
엄마: 너그가 오라 하면 가고 싶은 생각이야 오래 전부터 했지. 자식들 하나도 가까이 살게 안 남겨 둔 게 매일 후회된다. 아들은 외국에 있고. 내가 죽지도 않고 이런 날이 자꾸 길어질까 그게 걱정이다.
나: 엄마, 엄마가 우리집에 올 수 있다는 생각은 열어놓았어. 단, 조건이 있어. 내가 뭘 하든, 들락거리고 활동하는 거 엄마는 전혀 간섭할 생각 말아야 해. 정서방도 안 그래. 당연히 엄마 생활비 내야 하고. 우리 형편 알잖아. 내가 엄마한테 붙어있진 못할 거야. 엄마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 해. 그게 안 된다 싶으면 요양병원 가고. 그럴 수 있어?
엄마: 당연히 그래야지. 오라 하기만 하면 내사 원이 없겠다… / 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