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덕숙덕 김치를 담그며
자기 돌봄, 서로 돌봄, 그리고 함께 돌봄의 꿈
시엄마와의 동거 3개월 기간 중 한 달이 어언 저물어 간다.
정확히 말해 '동거'는 아들인 덕이 하는 거고 다른 집에 사는 이 며느리에겐 해당사항 없는 표현이겠다. 나는 한 주 한 번 주말에만 서울에서 시엄마를 만나고 가벼운 돌봄 흉내를 내고 돌아온다. 그런즉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시엄마와 함께 보낼 13개의 일요일 중 4개가 지나갔다. 시엄마와 내가 5월 한 달간 4번 주말마다 잠깐씩 만났더라는 말이다.
그렇다. 숙덕은 어쩌다 보니 '두 집 살림하는' 중년 부부로 살고 있다. 덕은 자기 일터인 서울에서, 더 정확히는 교회에 붙어 있는 주거 공간에서 살고 나는 주중에 거의 안산에 있다. 보기에 따라서 덕은 좀 없어 보이는 홀아비 중년 목사다. 곁에 손발이 되어 그림자 노동해주는 '사모'가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오해마시라. 덕은 평소엔 딸과, 그리고 노모가 온 3개월은 노모까지 돌보며 살림꾼으로 잘 살고 있다.
그럼 큰며느리인 나는 5월 마지막 주말 시엄마와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토요일 늦은 밤 서울에 도착해 자고 일요일 이른 아침에 시엄마와 포옹했다. 아침 7시부터 2시간 반 딸과 함께 인왕산을 다녀왔다. 등산이 목적이 아니라 산자락에 있는 인왕사와 선바위 등 놀라운 문화의 현장을 걸었다. 돌아왔을 때 시엄마는 덕이 차린 아침 식사 중이었다. 주일예배 후엔 글 퇴고작업을 딸과 함께 하느라 시엄마와는 아주 잠깐만 보았다.
내가 시엄마를 위해 한 일이라곤 저녁 식사 준비 정도였다. 틀니로 씹는 시엄마를 고려해 배추와 들깨와 토마토소스를 넣어 부드러운 떡볶이를 했다. 네 식구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 바나나 한 개와 단백질 가루 한 잔 타 드렸다. 주간보호센터 차 태워 배웅한 후 덕과 함께 안산으로 왔다. 함께 장보고 김치 담그고 저녁엔 416 합창단 연습 한 후 덕은 밤에 서울로 돌아가고 나는 안산에 남았다.
숙덕숙덕 자연식 김치 예찬
오랜만에 숙덕 함께 배추김치를 담갔다. 매운 것 잘 못 드시는 시엄마를 고려해 순하게 했다. 오랜 세월 같이 김치를 담그는 9단 김치 커플답게 즐거운 협업이었다. 장보따리를 4층으로 들어 올리는 일부터 다듬고 씻고 썰고 절이는 모든 과정을 같이 했다는 말이다. 재료를 손질해 씻는 일, 햇마늘과 생강을 까고 가는 건 덕이, 절이고 양념 준비해 버무리는 건 내가 했다. 사용한 도구들을 씻어 정리하는 건 덕이였다.
숙덕은 김치를 아주 좋아해서 꼭 직접 담가 먹고 있다. 큰 배추 3 포기에 무 큰 거 두 개, 별 것 아닌 양인데 이번에도 3시간 걸려 했다. 번개처럼 분주히 나는 사이사이 피클도 하고 된장국이며 머위 익나물도 만들었다. 분명 번거로운 일인데 하고 나면 뿌듯함과 성취감을 누리는 게 김치 담그기의 재미다.
김치는 알수록 참 건강한 자연음식이다. 같은 무게를 비교할 때 요구르트보다 젖산균이 4배 많이 들어 있다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장 내 환경을 좋게 하고 유익한 효소를 만들어내는 살아있는 음식이다. 비타민과 무기질도 풍부하다. 이 좋은 자연식을 잘 만들어 먹자면 노동을 해야 한다. 김장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 문화유산이라는 이유를 차치하고라도 김치담그기는 엄청난 문화 전수이자 일임에 틀림없다.
숙덕숙덕 김치 담그기는 우리 부부의 관계를 닮은 일이다. 따로 또 같이, 각자 그리고 어우러져 살기 말이다. 김치 재료는 저마다 특징과 맛이 다르다. 이걸 어떻게 준비하고 버무리느냐에 따라 김치 맛도 영양도 달라진다. 시간이 더해지고 발효가 일어나면 재료 각각의 합 이상의 놀라운 새 맛과 영양의 세계가 열린다. 부부가 오랜 세월 함께 만들어가는 파트너십도 그렇다. 각자의 개성을 발휘하되 발효 케미까지 살리면 최고다.
자기 돌봄, 서로 돌봄, 그리고 함께 돌봄
따로 또 같이 사는 두 집 살림으로 숙덕이 누리는 복을 세어보려 한다.
첫째는 자기 돌봄이다. 나야 지난 10년간 자연치유 실천가로서 매사에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며 살아왔다. 나를 먼저 돌보기, 그게 내가 가장 우선적으로 할 일이었다. 그러나 내 옆에 나의 돌봄을 기대하는 인간들이 우글거린다면? 각자가 자기 돌봄을 기본으로 살아야 가능하다. 시엄마를 서울에서 덕이 전담하게 된 이유도 그거였다. 며느리가 반드시 시엄마를 돌보아야 할 법은 없으니까. 새로운 길이었다.
자기 돌봄은 나만 좋자고 하는 줄 알면 오해다. 나도 덕도 스스로를 돌보는 게 기본이란 말이다. 특히 덕이 아내나 엄마의 돌봄에 기대 사는 아저씨라면? 스스로를 돌보는 인간으로 변해야 했다. 덕은 엄마와 동거하면서도 자기 몸을 먼저 돌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 성별 노동 이분법은 얼마나 거짓 이데올로기인지 살림하는 덕이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따로 살며 각각 자기 몸을 스스로 잘 돌보는 사람들로 살고 있다.
두 집 살림이 가져온 또 다른 복은 숙덕이 서로 돌봄을 연습하는 점이다. 자기 돌봄은 결코 이기적인 삶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자기를 우선적으로 돌볼 수 있어야 누군가에게 돌봄을 나눌 주체가 될 수 있다. 자기 돌봄을 잘하는 여자와 남자로서 필요할 땐 서로를 돌보는 관계가 좋은 관계다. 따로 살되 필요할 땐 같이, 필요한 돌봄을 주고받는 관계를 꿈꾸며 산다. 돌보는 사람과 돌봄 받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니까.
세 번째로 누리고 싶은 복은 함께 돌봄이다. 숙덕이 통념의 성역할에 매이지 않아야 실현 가능한 꿈이다. 덕은 좀 더 살림을 잘하는 쪽으로 자라고, 숙은 살림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지는 쪽으로 가도 된다. 밀양 엄마 영덕 엄마 모두 점점 쇠약해져 가는 게 보인다. 그럴수록 숙덕이 유기적으로 짐을 함께 질 수 있어야 스트레스와 부담이 줄어든다. 한 사람 혼자 지기엔 너무 무거운 짐이기 때문이다.
아~ 시엄마가 밥 잘 드시니 감사하다. 내게 큰며느리 노릇을 요구하지 않는 게 감사하다. 시엄마 돌봄에 매이지 않고 내 의지대로 새 책 퇴고까지 한 게 너무 감사하다. 화숙이는 복도 많지. 하지만 밥맛이 없고 기운이 달리는 영덕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쓰인다. 한쪽 신장에 종양이 보인다니 6월 7일 포항 성모병원 예약된 날이 너무 아득하게 멀다. 그때까지 엄마가 집에서 잘 버텨내길 기도할 뿐이다./ 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