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에 대해 엄마 지분이 훨씬 많다는 사실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어쩜 이렇게 이름이 예쁘냐고, 사람들이 내 이름이 예쁘다고 하더라.”
주간보호센터에서 돌아온 엄마가 나에게 하는 자랑이다. 오늘만이 아니라 종종 듣는 엄마 이름 자랑이다. 김원경, 으뜸 원 서울 경, 92세 우리 엄마의 이름이다. 무난한 이름이지만 엄마 나이대의 여자에게는 부러울 정도의 이름일 것이다. 딸이라고 아무렇게나 지어진 이름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럴 거다.
엄마의 원래 이름은 '김월경'이었다. 우리 다섯 남매는 학교에서 가정조사란 걸 할 때 엄마의 이름을 우리끼리 고쳐서 '김원경'이라고 쓰곤 했다. '월경'이 부끄러워서 그랬다. 이때 말고는 엄마의 이름을 쓸 일이 없었으니 달리 난처하거나 불편한 기억은 없다. 엄마에게 그런 이름을 지어준 사람에 대해 비판한 적도 성차별적인 세상에 대한 인식도 없었다. 대외적으로 아버지의 이름이 우리 집을 대표하는 게 당연한 줄 알았고 엄마가 동네 다른 여자들처럼 ‘연동댁’이란 택호로 불리는 것도 이상한 줄 몰랐다.
25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 해 어느 날 시골집에 내려갔을 때였다. 엄마가 나에게 하소연했다. 면사무소나 농협에 가면 이름이 불리거나 이름을 말해야 할 경우가 있는데 그때마다 너무 부끄럽고 창피하더란다. 내가 개명 의사를 물으니 엄마는 좋다고 답했다. 나는 바로 법원에 가서 엄마를 위해 개명을 신청했다. 개명 사유는 충분했다. 개명 허가가 나온 후 엄마는 주민등록증을 새로 만들고 통장의 이름도 바꾸었다. 그 뒤로 엄마는 면사무소나 은행 가서 김원경이란 이름으로 하는 일을 즐거워하게 되었다.
월경, 사람의 이름으로 쓰기엔 좀 난처한 말이다. 그렇지만 그 자체로는 전혀 부끄럽거나 창피한 단어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생명의 신비를 간직한 영광스러운 말이다. 그러나 이 단어는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그런 대접을 받지 못했다. 옛날에 비하면 나아졌지만 지금도 여전히 명예에 걸맞은 대우를 못 받고 좋은 이름으로 불리지도 못하는 것 같다. 월경을 남자가 한다면 어떻게 불렸을까? 월경은 아마 훨씬 다른, 좋은 대우를 받고 있을 것이다. 나는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비로소 월경이라는 말이 조금씩 친숙해졌다.
며칠 전 한의사 이유명호 선생의 강의를 들었다. 여자의 난자와 남자의 정자가 만나 아이가 만들어진다. 태어나면 생물학적으로 아이는 누구의 아이일까? 정자는 난자에 비해 크기가 1/10밖에 되지 않고 또 엄마의 형질이 훨씬 더 많이 결정적으로 아이에게 유전된다고 했다. 최재천 교수는 임신에 있어서 남자의 역할은 ‘퀵 서비스’에 불과하다고 했단다. 생물학적으로는 자식에 대해 엄마의 지분이 훨씬 더 크다는 말이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조상 찾기 할 때 모계 혈통으로 DNA를 추적한단다. 충분히 공감 가는 얘기였다.
과학적 이유를 차치하더라도 나는 아이에 대해 엄마 지분이 훨씬 많다는 사실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경험적으로 임신 출산 양육 과정의 수고와 돌봄을 알기 때문이다. 여자는 임신과 함께 몸으로 엄청난 변화를 겪는다. 열 달 동안 자궁 속 아이와 한 몸으로 지낸다. 아이는 모든 걸 전적으로 엄마를 통해 공급받는다. 여자는 임신 중엔 식사와 대소변과 수면 등은 물론, 일상 활동과 사회생활 등 어려움을 몸으로 다 감내해야 한다. 출산은 또 어떤가? 아이를 낳다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오늘날이야 그나마 좀 덜한데 옛날에는 출산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여자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죽지 않더라도 산통은 죽을 것 같은 고통이자 후유증도 많다. 아이를 낳았다고 끝인가? 몸을 회복해야 하는데 매일 24시간을 젖을 먹이고 아이를 돌봐야 한다.
여자는 임신과 출산과 산후 그리고 양육 과정까지, 몸과 마음과 정신으로 무게를 오롯이 감당한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절대 시간, 지방과 살을 짜내고 찢기고 피를 주고 흘리는 고통을 동반한다. 반면 남자는 정자를 제공한 일 외에는 몸에 아무런 변화도 없고 일상이 달라질 게 아무것도 없고 할 일도 없다. 입덧도 없고 체중의 변화도 없고 육체적인 고통도 없고 심리적인 변화도 없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남자가 아이에게 애착이 있을 이유가 없다. 내 아이가 아니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여자의 아이가 맞다.
그런데 왜 아이에게 남자의 성씨를 따르게 할까? 가부장제 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지분이 없으니 권리도 없는 게 맞다. 한국은 부계 성씨를 디폴트로 하니 가부장 사회 맞다. 생물학적으로 따지든 돌봄과 기여도로 따지든 아이에 대한 지분은 여자가 압도적으로 많이 가져야 맞다. 엄마 성을 따르는 게 맞다. 물론 여자와 남자가 서로 사랑해서 낳은 자식이라면 지분을 따지기 어려울 순 있다. 아이가 엄마 아빠의 소유도 아니니 정확히 나눌 수도 없다. 그렇더라도 아이에게 최소한 엄마 아빠의 성을 같이 사용하게 하는 게 공평하다.
강사인 이유명호 선생이 그런 경우 같았다. 부모가 그렇게 한 게 아니라 본인이 부모성 함께 쓰기를 택했겠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여자들 가운데 양쪽의 성을 함께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은 게 우리 사회의 가부장성과 무관하지 않음을 알겠다. 이 문제에 여자들은 그만큼 공감하는데 남자들은 아닌 셈이다. 나도 상당히 오랫동안 부모성 함께 쓰는 여자들을 유난스럽고 불편하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강의를 듣고 생각이 달라졌다.
내 이름은 김하덕으로 하는 게 상식에 맞는데 지금까지 어거지로 정하덕으로 살아온 셈이다. 김하덕 하면 이상한가? 그럼 정김하덕 혹은 김정하덕은 어떨까? 뭘 해도 욕을 바가지로 먹겠지? 특히 정 씨 집안사람들로부터. 교회에서는 어떤 반응일까? 엄마에게 내 이름을 정김하덕이라고 하겠다 하면 놀라 자빠지겠지? 평생 가부장제에 헌신하며 살아온 엄마, 김원경 씨. 그래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지난 25년간 엄마가 자기 이름으로 불리며 살 수 있었던 건 참 다행이고 고맙다. / 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