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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Dec 15. 2020

보호식 둘째 날 자연식 백김치를

무엇을 먹느냐 보단 어떻게 먹느냐가 더 중요하다

무얼 먹지? 어떻게 먹을 것인가?



이건 주부들만의 고민일까? 직접 밥을 해 먹는 사람이라면 하는 질문이지만 식이요법을 한다는 사람들이 어쩌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겠다. 무얼 먹고 안 먹을지, 그리고 어떤 재료를 어떤 식으로 만들어, 어떻게 먹을지까지. 보호식 둘째 날 하루, '어떻게' 먹을 것인가를 어느 때보다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2주 단식 후에 내 몸이 어느새 네 끼를 씹어 먹었다. 그리고 서천 산들 산야초 단식원에서 온 절임배추로 자연식 백김치를 담근 날이었다. (김장하면 보내주신다더니, 배추김치와 절임배추를 푸짐히 받았다. 감사합니다!)



자연식 백김치라고 거창하게 이름했지만 김치 자체가 사실 자연식에 가깝다. 다만 들어가는 재료에 어떤 화학적인 것들이 들어가느냐 않느냐로 결정된다. 대부분의 김치엔 젓갈이 들어가지만 자연식에선 젓갈을 쓰지 않는다. 단백질이 너무 오래 발효될 때 독소가 나오는 점 때문이다. 채소 재료를 자연식으로 양념해서 잠깐 숙성해서 먹는 게 가장 좋은 자연식 김치라 하겠다. 내 자연식 백김치는 그런 점에서 가장 단순한 자연식 양념만 했다.



우선 무소를 넣을까 말까 잠시 고민했다. 시원한 맛이니 하기로 했다. 좀 큰 중무 한 개 채 썰어 집간장 조금 붓고 버무려 숨을 살짝 죽였다. 사과 1개 채 썰고, 쪽파와 고수를 썰어 섞었다. 고수가 김치에 좀 들어가면 은은한 풍미를 더해준다. 마늘은 매운 배추 김치 할 때보단 적게 했다. 좀 더 시원하고 순한 맛을 위해서다. 마늘과 양파 1개, 조그만 무 1개, 생강 쪼금을 물과 함께 갈아 썰어 놓은 무에 섞었다. 물에 자작한 재료 그릇에 배추를 놓고 소를 배추 사이에 넣었다. 국물용으로 다시마 표고 육수를 낼까 하다 평소대로 삼투압과 미생물 활동을 믿고 생수만 자작하게 부어주었다. 김치란 자고로 재료 스스로 알아서 맛을 내는 살아있는 음식이니까.



그렇게 내 맘대로 자연식 백김치 두 통이 탄생했다. 두 주간의 보호식과 이후의 일반식 기간도 안심하고 먹을 백김치를 보니 배가 불렀다. 매운 김치에 대한 유혹을 너끈히 이기게 해 줄 것이다. 단식 2주간 비워지고 쉬던 장기에 자극적인 음식은 금물이기 때문이다. 어제오늘 소량으로 보호식을 해 보니 내 장기가 단식 기간 줄어들었음을 느낀다. 오늘 아침 배고픔을 많이 느끼긴 했지만 낮 동안 허기를 거의 못 느꼈기 때문이다. 평소 같으면 만복감을 그리워했을 텐데 여전히 배는 평화로웠다. 장기가 리셋팅 후 적은 음식에 만족하고 적응하게 될 걸 생각하니 고맙고 기쁘다.



어제 점심으로 먹은 첫 보호식은 호박죽 1/3 공기, 무른 단감 1, 배춧잎 1였다. 이걸 45분간 천천히 씹어 곤죽을 만들어 삼켰다. 2주간 비워진 깨끗한 위장에 처음 닿는 음식이니 더욱 자연식이어야 했다. 호박죽엔 찹쌀현미가루, 잣, 팥, 밤 조금 들어갔다. 그냥 먹어도 충분히 씹을 자신이 있었지만 믹서로 갈았다. 단식원 보호식 자료를 참고로 내가 적당히 응용한 메뉴다. 대개는 장에 자극 줄까 봐 끓인 음식으로 보호식을 시작하는데 생식 추구하는 분들의 경우는 생채소 과일로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효소가 살아있는 자연 그대로 먹되 좀 더 순한 걸 골라 첫 끼부터 먹었다. 속이 아주 편한 하루였다.



보호식 첫날 저녁엔 점심보단 살짝 과감했나? 씹어 물이 되도록 하는 것에 너무 자신이 넘쳤나 보다. 낮에 먹은 호박죽엔 청국장을 몇 술 갈아 섞어 2/1 공기로 먹었다. 배춧잎 1개에 들깻가루에 익힌 무나물 몇 조각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고수를 먹었다. 역시 고수를 먹어야 해! 날 것 그대로 씹어 먹는 즐거움이여! 배추도 고수도 씹고 씹으면 다 물이 되는 걸 확인했다. 생채소 먹을 때 관건은 제대로 씹는 데 있는 거다. 이 모든 걸 먹는 데 50분 걸렸다.




보호식 둘째 날 점심엔 어제와 같은 죽 1/2 공기에 무른 단감 1, 그리고 살짝 찐 비트 작은 2조각과 더 작은 당근 3조각을 먹어봤다. 그걸 먹어도 되는가 의아해할 사람 있을 것이다. 나는 된다에 1표다. 관건은 얼마나 씹어 물이 되도록 하느냐에 있다고 본다. 오죽하면 죽도 씹어 먹겠는가. 생채소는 기본적으로 소화가 잘 안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것 역시 양을 조절하고 제대로 씹어 먹는 게 길이라 본다. 내가 생식 비율을 늘려가며 깨달은 바였다.



저녁엔 조금 단순화했다. 호박죽 1/2 공기, 바나나 반개, 정말 작은 배춧잎 2개에 무나물 몇 조각. 자꾸 달릴까 봐 조금 더 단순화했다. 언제나 무얼 먹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먹느냐가 더 중요하다. 무엇이 몸에 좋고 어떨 땐 무얼 먹으라는 식 말이다. 그러나 그걸 어떻게 먹느냐는 잘 놓친다는 거다. 나처럼 자연식 한다면서 과식하는 경우가 그런 경우다. 반면 어떤 재료도 그 자체를 꼭꼭 씹어 소식하면 몸에 좋지 않은 게 뭐 있겠나. 하나 마나 한 소리를 한다. 실제 상황에서 어려울 뿐이다. 그래서 보호식 둘째 날 저녁은 '어떻게'를 더 생각하며 가볍게, 45분간 먹었다.



잊지 말아야 할 질문은 무엇을 먹느냐보단 어떻게 먹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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