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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Aug 20. 2024

유연하게 서로 돌봄을 주고받으며 늙어갈 수 있을까?

돌봄도 돌봄 받는 일도 고정된 역할이 아니다

어제는 짝꿍 숙이 종합병원 안과 진료받는 날이었다. 나는 서울 교회에서부터 차를 운전해서 동행했다. 1년 전 망막박리 수술 후 숙은 몇 번 병원을 다녔다. 이후 두 번째 책 집필과 출간 때문에 일정이 미뤄졌고 이번이 9개월 만에 가는 병원이었다. 수술 경과 점검과 눈물샘과 누관 진료를 함께 받았다.     

 

“의사 샘 방에 같이 들어가 볼래?”

모처럼 검사 대기실을 뜨지 않고 곁에 있었더니 짝꿍이 새 제안을 했다. 평소에 비해 안과 대기실이 덜 붐비니 내가 계속 함께 있었던 것이다. 병원 동행은 해도 나는 안과에선 한 번도 ‘보호자’ 노릇을 한 일이 없었다. 짝꿍 혼자 검사받고 의사 만날 동안 나는 주로 병원 밖의 작은 산길을 걷거나 병원 내를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냈더랬다. 어라? 뭐라 답하지?

“뭐 하러? 내가 들어가서 할 게 뭐 있겠어?” 

보호자 노릇 할 일도 없는데 같이 들어갈 필요가 없다는 게 내 대답이었다. 숙은 별 말이 없었다. 


짝꿍 순서가 되어 진료실 문이 열렸을 때 나는 후다닥 따라 들어갔다. 방 한쪽에 놓인 빈 의자에 말없이 앉아 있었다. 짝꿍이 의사와 질문도 하고 대답도 하는 내용에 귀 기울여 들은 건 아니다. 대신 나는 안과 진료실에 꽂혔다. 너무 좁은 방이었다. 온통 컴퓨터 모니터에 검사 결과 사진들이 띄워져 있었다. 창문 하나 없는, 두 평도 되지 않는 좁은 공간을 눈 검사 장비와 간호사와 컴퓨터들과 테이블과 의자가 채우고 있었다.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대형병원 진료실인데 생각해 본 적 없는 낯선 풍경이었다.     


두 번째로 들어간 교수 박사님의 진료실 역시 다르지 않았다. 의사가 짝꿍의 눈을 들여다보고, 모니터로 사진을 설명하고 다음 할 일을 설명하고 약을 처방하는 동안 나는 의사의 말 보단 역시 진료실을 살펴보았다. 거기서 하루 종일 일하는 의사의 하루를 생각했다. 수술 후 1년 경과가 아주 좋다, 눈물 흐르는 증상을 안약으로 치료해 가면서 지켜보자며 두 여성 의사는 한결같이 친절하고 부드럽게 환자를 대해 주었다.    

 

눈이 불편해 의사한테 온 짝꿍의 형편보다 좁은 진료실에 갇힌 의사들에 감정이입하다니, 이 무슨 오지랖인가. 힘든 입시를 뚫고 의대생이 되고 어렵게 공부해서 의사가 되었을 것이다. 이분들은 이 작은 방에서 하루 종일 환자 돌보는 삶이 즐거울까? 이런 삶을 알고 있었을까? 물론 어떤 요일엔 종일 수술을 하고 어느 날은 대학에서 강의할 것이다. 종일 온통 환자 돌봄에 매여 있겠다. 쉴 틈 없이, 빨리빨리 환자를 내보내며.    

  

병원과 의사라는 세계가 갑자기 그 방만큼이나 좁은 세계로 보였다. 좁다니, 내가 세상을 얼마나 안다고 이럴까. 이분들의 연봉이 내 계산을 얼마나 넘어서는 액수인지 몰라서 하는 소리겠다. 그 돈으로 사고 경험할 수 있는 세계는 내 것과 비교할 수 없이 크고 넓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종일 이 좁은 데 갇혀 일한다면 현타가 오지 않을까? 금전적인 보상 말고도 분명 남 모르는 즐거움이 있겠거니 생각하기로 했다.      


오래전 아버지가 뇌종양 수술로 부산의 큰 병원에 입원했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 병원에 머물면서 심심해서 어느 젊은 의사와 이런 맥락의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선생님, 얼굴이 초췌해 보이시네요. 수고 많으시죠?” 

“아이고, 말도 마세요. 자장면 한 젓가락 먹을 시간도 없어요. 자장면 배달시켰는데 일이 바빠서 먹지도 못했어요. 먹을 시간도 없고 잠잘 시간도 없는걸요.” 

“의사 된 걸 후회하세요?” 

“후회하면 뭐 합니까?”     


요즘 같은 의료 사태엔 자기 몸 돌볼 틈 없는 의료진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제대로 돌봄 받지 못하는 환자야 말해 뭐하겠나. 누군가를 돌보는 일이 그런 셈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매여 돌봐야 하는데, 어떻게 돌보는 사람도 돌봄 받는 사람도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 가족 돌봄을 하며 알 수 있었다. 엄마를 누군가가 책임져야 하는데, 외주로 다 해결되는 일도 아니었다. 몸과 맘이 매여 수고할 누군가는 있어야 했다. 보상도 인정도 따르지 않는 일이었다. 삶을 근원부터 거꾸로 다시 생각하도록 도전하는 게 돌봄이었다. 오죽 힘들면 옛날이야기는 우렁각시를 지어냈을까. 나 대신 궂은일을 다 해주는 누군가가 따로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남동생네와 번갈아 가며 3개월씩 엄마를 돌본 게 벌써 2년도 더 지났다. 피할 수도 누구에게 떠넘길 수도 없었다. 내 당번 3개월이 끝나 엄마를 창원에 모셔다 드린 게 어제 같은데 어느새 3주가 갔다. 엄마가 안 계신 요즘 합창단 공연 등 외출에 부담이 없고 자유로운 게 사실이다. 석 달이 또 금방 가고 11월엔 다시 엄마가 올 것이다. 누군 나더러 수고 많다며 효자라고도 한다. 그러나 나는 애초에 그런 명분에 매이고 싶지 않았다. 엄마 안 계시니 이렇게 맘이 편한 걸 보라. 엄마가 와 계신 동안만 잘 살아내려 할 뿐이다.  

    

돌봄은 쉬운 일이 아니다. 돌보는 사람으로 태어난 사람도 없고 돌봄 없이 살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서로 사랑하며 긴장과 갈등을 풀어가며 돌보며 살 수밖에 없다. 비용 부담이 많았더라면 더 힘들었을 것이다. 엄마는 매달 나오는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덕에 주간보호센터 비용을 내고 나한테도 20만 원을 준다. 엄마 돌봄에 다 들어가지만, 엄마한테 용돈 받는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어찌 보면 나도 엄마한테 돌봄을 받은 셈이다.    

  

 다시 종합병원 안과 진료실로 돌아가 보자. 역시 보호자 역할이란 내 고정관념이었다. 숙은 무엇이든 나와 함께 하며 같이 경험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고 나는 역할이나 생각하는 사람인 게 보였다. 돌봄이란 화두 역시 새롭게 보였다. 돌보는 사람과 돌봄 받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진료실에 따라 들어갈 땐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짝꿍의 눈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은 무심한 내 태도도 볼 수 있었다.    

 

위치와 역할에 고정되어 사는 건 답답한 노릇이란 것도 알겠다. 일방적으로 돌봄 받거나 돌보는 건 참 비인간적이고 악한 것 같다. 남편의 역할이란 뭘까? 내가 항상 아내의 보호자란 법 없다. 아내가 항상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 아니듯 말이다. 돌보는 일도 서로 소통하며 입장을 바꿔볼 수 있으면 행복한 삶이겠다. 


우리는 고정된 성역할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익숙한 것들을 얼마나 뒤집어 생각하고 거꾸로 보며 살 수 있을까? 우리는 유연하게 서로 돌봄을 주고받으며 늙어갈 수 있을까? 

/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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