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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Aug 28. 2024

내 원동력은 분노였고 내 목표는 목소리였다

사진으로 읽는《숙덕숙덕 사모의 그림자 탈출기》첫 북 콘서트 이야기


웹자보 상단 검은색 글자들 속에 내 이름 석 자만 보라색으로 도드라져 보인다. 이 자보가 벌써 과거의 일이 되었다. '페미니스트 작가 김화숙의 두 번째 책 출간기념 북 콘서트'를 잘 마쳤다. 《숙덕숙덕 사모의 그림자 탈출기》가 세상에 나온 지 딱 두 달이 찬 어제, 2024년 8월 27일(화) 저녁 7시였다. 내가 회원 활동하는 두 여성 단체 안산여성노동자회와 함께크는여성 울림이 공동기획한 행사였다. 접근성이 더 좋고 공간이 조금 더 넓은 울림 교육장에서였다. 감사와 기쁨으로, 사진으로나마 어제의 북 콘서트 풍경을 짧게 기록한다.



나무의 꿈 /인디언수니 노래



초록별 뜬 푸른 언덕에

나무 한 그루 되고 싶었지

딱따구리 옆구리를 쪼아도

벌레들 잎사귀를 갉아도



바람이 긴 머리 크러 놓아도

아랑곳없이 그저 묵묵히

나무 한 그루 되고 싶었지

아름드리 어엿한 나무가


만개한 꽃처럼 날개처럼

너를 품고 너희들 품고

여우비 그치고 눈썹달  뜬 밤

가지 끝 열어 어린 새에게


밤하늘을 보여주고

북두칠성 고래 별자리

나무 끝에 쉬어 가곤 했지

새파란 별똥 누다 가곤 했지



찬찬히 숲이 되고 싶었지

다람쥐 굶지 않는 넉넉한 숲

기대고 싶었지

아껴주면서

함께 살고 싶었지...




안산 일동의 노래하는 사람들 '보리차'가 '나무의 꿈'을 부르며 북 콘서트 문을 열었다. 가사도 네 사람의 목소리도 마음을 부드럽게 해주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순전히 김화숙 작가에 대한 연대와 응원으로 와준 귀한 노래벗들. 교육실 밖에서 장구를 메고 대기했지만 내 귀는 온통 노래로 향해 있었다. 풍물샘 최문성이 꽹과리로 이끄는대로 내가 장구를 치며 함께 들어갔다. 휘모리-자진모리-굿거리-자진모리-휘모리 장단으로 한바탕 놀았다. 이어서 '범띠 가시내'를 꽹과리와 장구 장단에 맞춰 다 함께 불렀다. 이건 순전히 보리차가 제안해 준 덕분이었다. 책에 나온 범띠가시내를 지나쳐버리지 않고 화숙이랑 같이 앵콜로 부르자, 그 뜻대로 부랴부랴 장장단연습해서 다함께 노래할 수 있었다.




북 콘서트 진행은 안산여노 활동가 연선이 잘 해주었다. 안산여노의 '이프'와 서울의 '백합과 장미'에서 함께 페미니즘 토론하며 글쓰는 친구인 우리. 연선의 안내 속에 우리의 우정과 역사와 희망이 다 담겨있었다.


"오늘 북 콘서트는 화숙의 뜻을 반영해 평어로 진행하게 됐어. 내가 화숙을 알고 지낸 지난 6년간 우리는 처음부터 화숙 연선 이름 부르고 평어를 쓰고 있어. 나도 처음엔 어색했는데 지금은 너무 좋아. 평등이 이런 거로구나 맛보고 있어. 반말 모드 괜찮지?" 모두의 박수 속에 내가 등장했다. 오늘의 자리를 마련해 준 여성 단체 벗들께, 함께 노래해 준 보리차, 장구지도해준 최문성, 그리고 이 자리에 와준 독자들 모두에게 뜨겁게 감사 인사하며 시작했다.  




"내 원동력은 분노였고 내 목표는 목소리였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해준 배드민턴 안세영 선수가 여러 번 호출되었다. 내가 왜 글을 쓰는지, 왜 싸우며 사는지 그 한마디에 다 압축돼 있었다. 글쓰기에 대해, 기독교에 대해, 숙덕이 함께 페미니스트 커플로 사는 이야기, 그리고 책에 다 못 쓴 하프타임 시절 에피소드까지, 연선이 질문하고 내가 나눴다. 분노의 목소리가 좋은 출판사를 만나 치유의 글쓰기가 되었노라, 감사와 기쁨으로 수다떨다 보니 1시간이 휙 갔다. 다음 40분 이상은 참여자 한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로 채워졌다. 나는 너무너무 말하고 싶어하는 것만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독자들과의 공명이 좋아서 또 쓴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귀한 목소리들은 다 기록해 두었다. 아무리 해도 모자라는 감사 또 감사다.



어제 북 콘서트 참여자 32명 중 5명이 남성이었다. 이프에서 페미니즘 토론하는 지난 7년의 초반 몇 년은 늘 덕이 홀로 청일점이었다. 남성 비율이 늘길 고대했더랬는데, 요 몇 년 새 벗이 이렇게 늘었다. 나와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며 페미니즘을 살아내고자 애쓰는 내 '남사친(남자사람친구)'들이다. 내가 페미니즘으로 짝꿍 덕과 수평적인 관계를 누리다보니 여남 이분법을 넘어 누구와도 친구하고 놀 수 있게 됐다. 덕도 그렇게 확장돼 가고 있다. 남자 여자 장벽없이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는 친구들이 고맙다. 범수와 원석은 이프의 천군만마 남성동지다. 어제는  희연이 남편 덕현과 함께 왔다.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 때 아내 희연을 내게 소개한 남자답게 이젠 이프 토론도 함께 하겠단다. 장구샘 문성도 책 읽은 소감과 질문을 촌철살인으로 해주었다.   




출간 축하 케이크를 사들고 온 벗은 희야였다. 20대 청춘을 같은 단체에서 보낸 후배이자 친구다. 몇 년 전 희야가 내게 전화를 걸어와서 보고 싶다고 한 게 재회의 시작이었다. 30년 만이었다. 친구는 내 책을 읽으며 자기 삶을 다시 보고 새로운 후반전을 준비 중이다. 나는 전생에 나라를 몇 개나 구했길래 이런 벗이 있단 말인가. 두 개의 촛불 말곤 모든 불을 끄고 다 함께 출간 축하 노래를 불렀다. 한마음으로 기뻐해 주는 벗들 있음이 얼마나 큰 복인지 나는 안다. 어둠 속에 홀로 빛나는 촛불, 그리고 울려퍼지는 목소리 목소리들. 내 말과 글이 그러하기를, 용기의 목소리요 희망의 작은 촛불 되길 기도하며 촛불을 껐다.



고맙게도 나를 위해 안산여노와 울림이 함께 북 콘서트 꽃까지 준비해 주었다. 행사장을 환하게 밝혀주던 꽃은 끝나고 내 가슴에 안겨 집으로 왔다. 내 책상 한켠에서 은은한 향기로 나와 함께 하고 있다. 연보라 꽃의 이름은 '꽃범의 꼬리'다. 꽃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마치 입을 벌린 모양 같고 까만 눈동자가 있는 작은 범 같기도 하다. 범띠가시내의 북콘서트 꽃이 꽃범이라니 이거야말로 짱이다! 꽃말은 '청춘', '젊은 날의 회상'이란다. 청춘이라, 나는 청춘을 그리워해 본 적이 없다. 내 청춘의 날을 회상할 땐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 투성이라서다. 분노가 쌓인 줄도 모르던 내 청춘을 어제도 나는 재해석하고 시간 속에 흘려보냈는지도 모른다.


《숙덕숙덕 사모의 그림자 탈출기》에 대해 벗들이 들려준 목소리가 아직도 내 귀에 들린다. 일상을 살아내는 평범한 사람들의 힘을 또 확인했다. 수다 속에서 삶의 통찰과 지혜와 용기를 얻고 다음 책 제목까지 얻었다. 그 주옥같은 목소리들을 옮길 시간이 부족하다. 감사 또 감사로다! 보리차, 풍물샘 문성, 사랑하는 안산여성노동자회, 내 사랑 이프, 사랑스런 함께크는여성울림, 공감해 준 독자들, 북 콘서트 준비하느라 수고한 활동가 벗들과, 모두에게 머리숙여 감사합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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